[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18.03.2021

 


 

마음이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것인가.

어느덧 목요일이다.
오전을 보내고 아점 조로 커피 한 잔을 내리고 남은 레몬 파운드케이크를 한조각 들었다.
배를 조금 채워주고 나니 이제서야 한 숨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어제까지 해서 이번 달 프로젝트 거버넌스 리포팅은 끝이 났다.
그래도 그 리포트를 준비하기 위해 나머지 자잘한 업무들이 상호연관성을 갖는 다는 것을 매달 느끼며 일 할 수 있다는 점은 흩어진 여러 점들을 이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다. 내게 있어 점들이 이어진다는 것은 상황이 정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정돈되어가는 기분이 들면 마음이 놓여진다.

그래서일까.
어제까지가 피크였다. 어제는 화와 불만과 짜증 등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독소가 되어 온 몸 구석구석 퍼져나가서 당일날 사표를 던지고 창문을 열어 랩톱도 던져버리고 나도 같이 번지점프를 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으로 너무너무 괴로웠다.

그 모든 충동을 억누른채 리포팅 콜을 마치고 어제 늦은 오후, 저녁, 밤 그리고 오늘 오전을 보내는 동안 광란 뒤에 찾아오는 헛헛함 같은 그런 상태가 찾아왔다.

잠잠함.
그런데 모든 것이 해소되어 잠잠해진것이 아니라 그냥 일단 소강상태. 그정도.
나는 왜 그렇게 감정적으로 끄달려지고 그로인해 괴로움을 자주 겪을까?

 


 

사실 곰곰 생각해보면 볼수록 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이건 아니다 라는 소리가 커진다.
누가 볼륨 휠을 쥐고서 점점점 오른쪽으로 돌리며 음향을 키우는 것 처럼 말이다.

다음 주 화요일에 잡힌 그 면접도, 사실 자신 없다.
무엇이 자신이 없냐하면 또 거기 들어가서 나를 되게 유능하고 스마트한 지원자라고 나를 그들 앞에서 내다 파는 그 행위를 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왜 할 자신이 없냐면... 사실은... 그것은... 진심으로 사실 진심으로 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더 좋은 조건으로 일할 수도 있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왜 자꾸만 내 마음에서는 이런 신호를 보내는 것일까?

아직 내가 배가 덜 고프기 때문일까?

 


 

어제 오래된 블로그 이웃 한 분께서 내가 올리는 글에 댓글을 하나 달아주셨다.
정말 멋진 말이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가급적 불만 보다는 불안을 택하면 그래도 자유를 얻을 가능성이 생길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퇴사를 원하는 것, 이직을 하며 퇴사를 하며 또 다른 직장생활을 연장 및 연명 해 갈지 혹인 일단 그냥 아무 것 없이 빈손으로 퇴사를 할지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고 정해지지 않은 불안함은 떨칠 수가 없다. 그러나 퇴사를 하지 않고 계속해서 불만만 쌓여가는 현실을 연장 및 연명 해 나가는 것은 더욱 더 나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여, 되도록이면 불만보다는 굳이 선택하라면 불안한 쪽을 선택해서 어떻게하면 불안을 타계해 볼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훨씬 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내 인생을 설계해 나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밖에 아직 날은 찬데 해가 나서 맑다.
봄은 정말로 봄인것이 새들이 너무 티없는 소리로 지저귄다.
자연은 점점 더 초록을 더해가고 새들은 날아들어 둥지를 틀고 식구를 불려나간다.

생명력이란 그런 것일까.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내게 주어진 생명을, 내게 허락되는 매일을 살아가고싶다.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16.03.2021


 

매일 매일 지나는 동안 디데이카운팅의 숫자는 점차 줄어들어 어느덧 44일을 남겨두고 있다.
내가 그토록 목숨걸고 사수해보려고 하는 이 알량하디 알량한 유예기간 말이다.

그사이 면접 제의가 한 건 들어왔다.
내주 화요일에 있을 예정이다.

그곳은 내가 현 직장의 첫 부서에 있을 때 그 이웃 부서의 직원으로 알게 된 동료가 있는데 그녀는 현재 내가 면접을 보게 될 그 회사로 2년 전 이직을 했다. 그래서 그녀의 추천 형식으로 지원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지금 하는 일과 매칭이 가능하고 거기서 한 단계 조금 더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업무라고 판단하여 지원하였다. 또한 회사의 거리도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위치해서 도보로도 출퇴근이 가능하다.
지금 다니는 회사보다 훨씬 더 현지인들로 구성된 조금 더 경직된 조직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미 근무하고 있는 그녀의 말로는 회사가 계속 확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망이 있고 여러 변화들을 수용하는 폭이 클 수 있다는 점에서 면접은 한 번 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 잡을 갖게 된다면, 지금 팬데믹이라 홈오피스 체제에 들어가있지만, 원래는 홈오피스가 활성화 된 기업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점은 약간의 페인포인트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면접 제의를 받으면 기쁠 줄로만 알았는데 왠지 모르게 복잡해진다.
왠지 나는 다시 똑같은 체험을 반복 할 것이 자명한 곳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그래도 다른 기업 한군데는 더 체험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언젠가 회사원 생활을 그만두더라도 적어도 다른 기업 한 군데 정도는 더 체험 해 보고서 손을 털고 나오고 싶다는 그런 마음 말이다.

현직장에서 근 4년 반동안 다니면서 세 개의 서로 다른 팀을 체험했고 그 중에서 두 개의 팀은 IT 소속이었다. 개발자나 시스템 엔지니어나 아키텍트는 아니었지만 IT 도메인에서 프로젝트 와 체인지매니지먼트에 대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니 이제는 이 조직 내에서 또 다른 팀으로 가거나 혹은 같은 팀 내에서 뭔가 다른 것을 타진 해 보기 보다는 몸 담고 있는 환경에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채용공고 중에서 100프로 리모트가 가능한 잡을 하나 발견했다.
최근 성장중인 IT 스타트업 기업인데 홈페이지 제작을 용이하게 해주는 그런 컨텐츠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주력상품으로 제공하는 회사이다. 거기서 사내 직원 교육을 담당하는 아카데미 사이트의 L&D (Learning and Development) 전반을 두고 일하는 포지션인 것이다.

비록 짧긴 했지만 현직장 HR Development 팀과 그 다음 IT Change Manager 롤을 거치는 동안 회사의 러닝 매니지먼트 시스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갈 교육용 자료들을 만들고 올리고 하는 일들을 해 온 적이 있기에, 채용 공고상에 나와있는 그  3년간의 러닝 매니지먼트 근무경력은 채우지 못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조건인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경험 및 리모트 근무 경험 과 인터내셔널한 직장생활 경력은 충분히 매칭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여기에도 지원을 해 봐야겠다.
어디에 있든 100프로 리모트가 가능하다면, 해봄직 하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향후 미래의 거주지를 정하는 데 있어서도 엄청난 유동성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직장이 어디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그 인근 지역에 맞춰서 집을 찾아야 하는 각종 제한적 제약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써내려가다보니 이제 조금 더 클리어 해 진다.
이미 대충 어떨지 예측이 가능하고 좋든 싫든 구관이 명관이랬다고 뻔하고 엇비슷한 것을 택해서 더 좋아질 수도 있고 대신 나쁘다면 그 나쁘고 싫은 이유도 엇비슷할 것 같은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환경, 상이한 셋업. 규모 면에서도 조직의 역사 면에서도 젊고 어찌 보면 덜 체계적일 수도 있지만 반면에 경직성은 덜 할 수 있고 그들이 속한 산업 역시 IT를 기반으로 하는 발전 가능한 분야, 그리고 유동적이고 자유로움을 획득 할 수 있을 근무방식.

한 곳은 팬데믹이 아니라면 홈오피스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곳, 다른 한 곳은 평소부터 그토록 원하던
100프로 리모트. 물론 두군데 다 내가 면접을 본다 해서 혹은 지원을 한다 해서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일단 도전은 해 보아야겠다.

그렇게 도전을 해보다보면 그 과정 중에서 마음이 좀 더 명확해 지지 않을까?
가지치기가 되면서 점점 더 나에게 적합한 일들만이 남은 조금 더 고르기 수월한 선택지가 만들어질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정말로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궁금한데, 비관적인 마음이 아닌 얼마쯤은 희망적인 그런 긍정이 샘솟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어제까지만 해도 너무 주체 할 수 없게 슬프고 불안하여 오후 내내 입을 주먹으로 틀어막고 소리죽여 울면서 일을 했더랬다. 그런 어제를 딛고 맞이한 오늘, 긍정적인 기분을 가질 수 있어 감사하다.

오늘은 특히나 더 이 말씀을 붙들고 남은 하루를 잘 마무리 짓고 싶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필립피서 4장 6절-7절

 


인간의 이해, 지각을 뛰어넘는 보이지 않는 힘을 믿는다.
하여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굴하지 않고 청하고 믿고 그 다음 것들은 내려놓는 연습. 

우리가 그냥 팽개치듯 막무가내로 내려놓으면서 분노하고 억울해하면 그것은 포기와 다를 바가 없다지만,

내려놓는 과정에서 깨달음이 발생하고 그로 인하여 비로소 내려 놓을 여유를 얻게 된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

인격의 성숙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너희는 마치 사람이 자기 아들을 단련시키듯,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단련시킨다는 것을
마음 깊이 알아두어야 한다.

신명기 8장 5절

 


성숙을 위하여 사람은 단련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 고통 없이 결과만을 받고 싶지만 말이다.

인격의 성숙을 위하여.

회심을 하고싶다.
마음을 돌리고 고쳐먹는 것.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12.03.2021


다시 찾아온 금요일이다.

어제 오후부터 저녁에는 한 차례 감정적 트리거를 당해 불안-초조-우울-비관의 사이클을 차례로 겪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저 금요일이라는 이유로 심기일전 해보려고 하고 있다.

내 5월 중 사표 후 노티스 기간 감안 8월말까지 근무하지만 8월 한 달은 남은 연차를 몰아서 사용하여

garden-leave 형식으로 7월 말까지 근무하고 나머지는 퇴사일까지 휴가처리하려는 계획.

그 시나리오가 흔들리려나 라는 불안감이 조성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번달 말, 즉 3월 말까지 올해동안의 모든 연차계획을 다 입력해서 제출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그냥 그게 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메일에서 내가 아직은 비밀로 부치고 있는 나만의 계획이 틀어질지도 모른다는 그런 이상한 불안감에 휩쌓이고 만 것이다. 그러다가 이런식으로 나올거라면 4월말이고 5월달이고 뭐 기다릴 것도 없이 내일이라도 당장 다 정리하고 나와버리고 싶다는 극단적인 감정마저 들었다. 그러다가 그간 받아온 심리상담의 효과를 보는 것인지,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고 생각해보았다.

이런 패턴들.

과거에도 있지않았던가.

뭔가, 원하는대로 마음먹었던대로 계획이 진행 될 것 같지 않아지면 발동하는 패닉적인 증상들.

이성적인 사고가 위협받고, 불안, 초조, 짜증, 우울, 분노, 비관 으로 발전하는 감정의 곡선들.

그 모든 것의 시발점은 불안. 불안과 두려움이다.

 


 

한 스타트업 기업이 디지털 관련 커리어로 직종 전환을 하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재교육을 받도록 강좌를 만들어서 이수 후 관련 기업으로 취업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SNS 광고를 통해 알게되었다. 거기서 하는 SEO 온라인 마케팅 웨비나를 들었다. 사실 말이 웨비나이지 그렇게 초반에 잠깐 온라인 마케팅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는 나중에는 자신들의 강좌를 들으라는 세일즈 콜인 것이다.

알아두면 좋은 기술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퇴사 후에 업으로 삼기에는 글쎄... 들으면서도 어딘지 설득되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퇴사를 하면 커리어가 망가지는 유형"이라는 한 포스팅을 읽은 적이 있다.

(퇴사하면 커리어가 망가지는 3가지 유형 | 직장in 생활백서 - 사람인 (saramin.co.kr))

퇴사하면 커리어가 망가지는 3가지 유형 | 직장in 생활백서 - 사람인

명확한 이유가 없는데도 충동적으로 퇴사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문제가 벌어집니다. 내 커리어가 걸린 문제인데 설마 경솔하게 선택하는 사람이 있겠느냐 싶겠지만,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그저 싫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떠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혹시라도 본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차분하게 자신을 한 번 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www.saramin.co.kr

거기에 보면 대체로 이런 유형들이 그렇다고 나오는데...

 

불안이 많고 짜증이 많은 성격

사람들을 주도하고 싶지만 막상 나서기는 싫은 성격

공상을 많이하며

막상 주변에 관심이 별로 없고

본인이 그들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성격

등등..

죄다 내 이야기 같다.

그래서 나는 무려 이 시국이라는 시국적 프레임까지 덧쓰고서 퇴사를 하면 그대로 아작이 나고 말 것인가.

어제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말이 나왔다.

결국 지금 하고 있는 것도 내가 처음에 동의하고 결정해서 시작하게 된 것이라는 것.

마치 전속 여배우와의 열애로 화제거리가 된 그 모 감독의 영화제목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때는 그런 줄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지금은 틀렸다고 말하는.


과거에 다니던 한국계 회사에서 당시 상사였던 사람이 했던 말들을 듣고 상처+짜증을 느낀 날 썼던 오래된 내 블로그 포스팅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그사람 입장에서도 이런 내가 얼마나 싫었을까. 그에 비하면 적어도 사람 불러놓고 그런식으로 인신공격하듯이 말하는 문화가 아예 없는 (뭐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다른 방법이 또 있지만) 현지 회사에서는 그나마 내가 이런 성격유형을 하고서 이만큼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이렇게 민폐를 끼칠바에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또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그래도 내가 나라까지 바꿔서 살고 있는 마당에, 이대로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말면 너무 슬프지 않겠는가. 하지만 할수만 있다면 세상에 존재하되 또 동시에 존재하지 않듯이 그렇게 살아보고싶기도 하다.

뭐든지 그러려면 뭐니뭐니해도 돈이 필요하다.

존재하지 않듯이 하면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입에 넣어줄 밥을 마련할 돈을 벌어야하기 때문이다.

 


금요일이다.

 

한 주 한 주 이렇게 흘러간다.

그렇게 내가 늘 돈 돈 하는 그놈의 그 돈, 2주 후면 이번 달의 급여가 입금된다.

스스로 설정한 100일간의 퇴사유예기간 중 절반이 훌쩍 지났고 어느덧 디데이 카운팅의 숫자는 40일대에 접어들었다.

나는 훗날,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난 뒤, 지금 이렇게 보내고 있는 이 유예기간을 어떻게 회상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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