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21.01.2021

 


 

그러다 팀 내 한 직원이 자신이 아는 다른 부서의 직원이 IT부서에 있는데 프로젝트를 여러나라에 걸쳐 롤아웃하여 새로운 서비스 체제를 도입하는데 변화관리매니저로 커뮤니케이션, 트레이닝 그리고 프로젝트 마케팅적인 업무들을 담당할 사람으로 조직 내 채용에도 관심이 있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그것을 그 당시 부장에게 추천 한 줄 몰랐으나, 나중에 그녀가 직접 말해주어 알게 된 것이었다. 고마웠다.

나는 그 부서에 지원을 하였고 거의 형식적인것에 불과한 면접을 거쳐 그 부서에 들어가게되었고 그렇게 하여 나는 비록 업무의 내용은 큰 성격적 차이가 없지만 조직도 상에서는 HR에서 IT로, 내 이력서 내에서도 보면 HR 혹은 총무 적인 일들을 하던 것에서 IT 로의 업종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부서에서는 1년 반 + 3개월 노티스기간 도합 1년 9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현재 부서로 이번에는 내가 자진해서 직접 찾아서 옮긴 지금의 포지션으로 오기전까지 있으며 글로벌 프로젝트가 숨가쁘게 흘러가는 동안 열성적으로 HRD 그 부서에서 조금씩 알게된 이러닝 프로그램 짜고 사내 이러닝 페이지에 외주 러닝업체에서 받은 프로그램 업로드를 하여 유저들에게 론칭도 했고 수많은 뉴스레터들을 작성했고 커뮤니케이션 컨셉을 짜서 발표했으나 그 프로젝트가 끝나며 다른 프로젝트들도 별로 그런 규모의 체인지 매니지먼트가 요구되는 일이 없는 상태였고 일감을 주기위해 억지로 일을 만들어내는데 그 일들이란 다시금 그런 환경미화같은, 상사의 프레젠테이션 꾸며주는 것, 부서장이 매월 1회 하는 커뮤니케이션 할때 파워포인트 예쁘게 만들어주는 것, 어느 서비스팀 판촉물로 티셔츠가 필요한데 그 티셔츠 주문해주는 일을 하며 다시 내가 끔찍히도 싫어하는 일로 회귀어버리고 마는 기현상을 목격하게되었다. 이런 반복적 경험은 하나의 트라우마로 자리잡게 된다.

 그무렵 당시 HRD 그 팀에서 대학원생 신분으로 업무보조일을 해주던 남자가 석사학위를 따고나서 정규직으로 또다시 이 회사에 지원을 했고 나랑 똑같은 포지션으로 해서 그 IT 부서의 팀으로 들어오는 일이 생겼다. 처음에는 내가 그를 가르쳐주는 입장이었는데 점점 더 그는 자기도 막 인정을 받고싶어하는 액션들을 취했고 그는 현지인이었다. 그 제법 체인지매니저 다운 체인지매니지먼트를 그나마 해볼 수 있었던 프로젝트가 끝나고나가 부서에서는 자기들도 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시켜줘야 할 지 모르는 눈치였고, (그 더 자세한 내막은 아직은 써내려가기 어려울 것 같다. 다시 그때 내가 느꼈던 암담함이 떠올라 숨이 막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일밖에는 당시 구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울며겨자먹기로 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상태였고 그런데 정말이지 다른 직원들과 활달하게 어울리며 정보를 얻고 그것으로 다음 업무 (즉, 어느어느 서비스팀 무슨 로고 디자인이 필요한거 그거 내가 이번에 해줄게, 이런식. 혹인 아 그런 뉴스레터 쓸게 있어? 그럼 그거 이번에 우리에게 가져와 우리가 해줄게. 그런식..)  수주받는(?) 수준으로 일이 돌아가는 것도 싫었고 그렇게 그따위 일을 하고싶지도 않았는데 여전히 나는 영주권이 없는 상태로는 직장을 반드시 다녀야만 체류증이 연장되었기에 미칠 것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내가 못견뎌하는 것들.

 

1. 불명확함.
포지션이 명확하지 않고, 포지션을 채용 할 시 장기적 관점에서 그 직렬을 어떻게 개발할 지 계획이 없는 상태,
그리고 그러한 조직.
2. 이상한 조직구성.
직속상사는 있는데 그 상사는 직접적으로 업무와 연관이 없는 사람이었고 그 사람 밑에 있는 좀더 나이 많으면서 나랑 같은 업무를 하는 여자가 또 다른 상사같은 그런 역할, 게다가 안그래도 장기적 관점도 없는주제에 덜컥 똑같은 일 맡을 사람을 한명 더 뽑아놓고 작은 파이로 등분해서 나눠먹기식으로 일을 나누려고 하는 그런 것들에서 느껴지는 무능력함.

 

3. 이상이 심각하게 좌절되는 현실
결국 그러면 내가 잘하는 뭐 만들어주고 작문해주고 프레젠테이션 만들어주는 내가 언제나 능력을 인정받아왔던 크리에이티브한 분야의 일을 결국 남의 일 돋보이게 예쁘게 해주는 정도로 전락하는 일로만 구현이 되는 상태를 직면한다는 것. (나에게 크리에이티브한 행위는 숭고한 영역이어야하는데, "어씨"적인 일로밖에는 풀어낼수가 없는것이다)
4.뫼비우스의 띠: 싫은 업무로의 회귀
결국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뒤치닥거리, 어씨적인 그런 업무들만이 주어지면서 내가 주도적으로 컨텐츠를 짜는게 아니라 철저하게 그 컨텐츠를 주는 사람들에게 종속되어야 하는 것. 이번에도 역시 그런 일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것. 되려 자꾸만 자꾸만 그런 일로 돌아오고있는 것. 나는 그런 일만 계속 해야되는 사람인데 나만이 나를 착각하고 있는건가? 이때 사실 나는 스스로 인지왜곡이나 어떤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를 두고 아주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5. 단일민족성이 강한 곳. 
나름대로 글로벌한 편에 속하는 본사이지만 그 부서는 유독, 특히 내가 속한 직속팀은 유독 현지인들만 있는 곳이었고, 나는 한국에서 단일민족성이 강한 곳에서 나고자라는 와중에도 그게 참 갑갑하고 불편했는데 여기서조차 그것을 느끼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6. 7. 8. 9. 10.....해서 번호를 계속 붙여나갈 수도 있지만 그럴수 없다. 그러자면 기억을 너무 많이 끄집어내야하기 때문이다.

 

하여 그곳에서도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아무리 잡코칭을 받아보고 마음을 돌려보려고해도 저항감만이 더 커져서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사실, 사람들 자체는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그들을 버리듯 떠난것이다. (물론 마지막까지 인수인계도 매뉴얼도 철저히 남겨주고 마지막까지 굴욕감 다 참아내며 그들의 눈총도 바보스러울정도로 납작 기어가며 맞춰주고 받아주었고 아주 도피한 것은 아니지만서도, 엄밀히 따지자면) 나는 그들을 버렸다. 왜냐하면 내 기준에서 그들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미래가 아니라, 나의 미래, 내가 꿈꾸고싶은 미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시점에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곳에서 뿐만 아니라 나는 줄곧 그래왔던 것 같다. 

나는 버리듯이 절단하고 끊고 나오는 식으로 떠나버렸다.

더러는 정말로 다 끊고 추하게 끝난적도 있었고 대개는 표면적으로는 신사적인 체 해놓고서 다시는 찾지않는 식으로 끝냈다. 그로인해 그들을 떠나온데에 대해서는 추호의 후회도 없지만 계속해서 악업을 쌓고 있는 것 같다는 죄책감 "모 아니면 도"식의 극단적인 사고방식, 완벽주의적 성향, 시궁창같은 현실에 비해 높다란 이상에서 오는 괴리를 어쩔 줄 몰라하는 나 자신에 대한 경멸감에서 비롯된 수치심..  죄책감과 수치심의 종착점은 늘 분노였다.

결국 우여곡절끝에 지금의 부서에서 열린 포지션 공고를 내가 직접 찾아서 내가 직접 다 처리한 뒤 통보를 했을 때 그들이 내가 얼마나 미웠을지는 지금 생각해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리하여 나는 그때 그 행동들, 그 선택들로 인해 얻은것과 잃은것, 명암의 대비가 분명한 환경 속으로 나 자신을 한층 더 깊숙이 던져넣어버리고 말았다.

이 조직에서 9개월짜리 한시직으로 들어와서 바람앞의 등불같던 시간들을 지나오며, 생각보다 잡초같이 질긴 생명력으로, 생각보다 많은 기회를 어찌어찌해서 얻어가고 욕을 먹어가면서도 쟁취해 내었지만 그에따른 과보도 컸고, 또한 자꾸만 거듭할수록 이런 말단적인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내 스스로의 팔자를 꼬으고 있는 것 같은 스스로에대한 짜증, 좌절, 불만족, 불안, 그리고 앞서 이미 말했듯이 성격상의 치명적 단점이 장기적으로 발현되며 심각한 정신적 육체적 타격을 받으며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스스로를 구제하지 못한 채 바라보고만 있는 형국이었다.

이렇게 많이 자체적으로 검열 편집해서 나열한 분량과 내용임에도 그때당시의 그 암담함, 스스로에대한 실망, 내가 내린 결정들에 뒤따르는 과보,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그런 식으로밖에는 처리가 안되는 나자신에 대한 자살충동에 버금가는 자기 파괴욕구 등등의 진절머리나는 감정들이 여과없이 다시 올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죽어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옵션은 없었다. 나는 무조건 어떤 창의적인 머리를 굴려서라도 살아남아야했다. 그런데 자꾸 이렇게 짧막한 부서별 업무경험이 반복되어서는 더욱 더 망해가면 망했지 나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下편에서 계속)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20.01.2021

 


 

시간은 잘도 흘러, 팬데믹 쿼런틴 모드에 들어선지도 근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는 작년 3월 중순을 기점으로 전직원 홈오피스 체제에 들어갔으며, 상황이 조금씩 풀릴 때 마다 회사 문을 다시 열어서 사무실로 출근하고 싶은 사람들을 받곤 하였다.


역병이 창궐하는 가운데 나는 죄 받을 생각을 하나 품게 되었다.
코로나로 앞당겨진 전격적인 홈오피스 근무방식은 내게는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의 동앗줄이었다.

언제나 혼자서 일하면, 집에서 일하면, 익숙한 공간에서 홀로 집중하여 무엇인가를 창작하는 종류의 일을 할 수만 있다면 행복하겠다는 소원이 있었다. 마치 구약성경 속 천지창조 시대 노아의 대홍수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나 온 세상이 난리가 나도 나는 나만의 방주 안에서 훗날을 도모하며 바깥 출입을 못하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 없이 끝내주게 잘 살아낼 자신이 있었다.

메이저한 사람들은 이를 두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회부적응자, 히키코모리가 될 소지가 다분한 등등의 낙인을 찍으려 할 것이다. 나는 스스로 마이너이면서도 메이저가 되고싶어하는 열등감이 큰 사람이다. 내 마이너 근성을 드러내었다가 득달같이 달려드는 메이저들이 내 가슴에 부착할지도 모를 주홍글씨를 얻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까지 메이저의 삶에 편승하는 체하며 지금까지 척하는 삶을 이어오고 있었다.
이런 내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다.

 

코로나시대의 죄 받을 수혜자로서, 나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스르르 다음의 것들을 얻을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말았다.

어쩌면 이대로 계속 그토록 갈망해오던 재택근무를 이어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다양한 인간들과 대면상호작용을 하는 끔찍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면상호작용을 싫어하는 나를 싫어하는 다른 인간들로부터 나를 보호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좋지 않은 사람 어디있겠냐마는, 솔직히 같은 공간 공유하며 일할 때 무신경하고 시끄럽고 뻔뻔한
작자들을 안봐서 너무 좋고 앞으로도 안보고싶다.

이대로 영영 사무실 출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앞으로 이런식으로 다른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재택으로 먹고사는 일들이 많아질지도 모른다.

 

세상은 나에게 모든 것을 한 번에 주는 법이 절대로 없다.
나는 위의 희망들을 품으며 잔혹한 죽음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집어삼키려는 와중에 마스크 속으로 숨길 수 없는 쾌재의 미소를 지어보인 대가로 다음의 것들도 덤으로 얻고 말았다.


사무실은 확진자의 숫자에 따라 유동적으로 열리곤 했으며 그때마다 팀빌딩을 중시하는 부장은 사람들을 사무실로 다시 출근하게 하고 싶어했다.

나는 여지껏 그의 그러한 회유에도 철판 깔고 재택을 사수했다. 나는 그를 상사로서 존경하지만 사무실로 다시
출근하는 것은 사랑할 수 없었다. 그와 그 일로 은근하고도 뭉근한 냉전을 겪었다.

언제 다시 열릴지 모르는 사무실의 존재는 나에게 생각보다 큰 예기불안을 안겨주었다.

불안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증세가 심해져서 비오틴 등이 함량된 영양제를 먹고 여성탈모전용샴푸를 생애최초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효과는 변변치 않아보였다.

고용시장 및 경제가 얼어붙었기에 퇴사를 하고 싶어도 자꾸만 그 마음을 억누르는데 화가 쌓여갔다.

 

업친데 덮친격으로, 코로나로 인해 엄청나게 긴급으로 필요한 포지션이 아닌 이상은 채용도 동결되어 부서 내에서 총무적인 일을 담당할 예정이던 직책도 함께 채용이 잠정 중단이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총무, 비서 같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커리어의 사다리를 타고 겨우 프로젝트 코디네이팅을 하는 지금의 일까지 이르게 되었지만 그런 나에게 상대적으로 업무에 유사성이 많다는 이유로 그 총무가 해야할 일도 겸업처럼 주어지게 되었다.


 

야심만만하게 전세계 수많은 나라에 지역별로 구매및 소싱을 위한 전사적 관리(ERP) 소프트웨어를 론칭하는 IT프로젝트 팀의 코디네이터가 되는 것으로 시작하면 (비록 초반에는 그토록 싫어하는 어드민적인 일들을 하긴 해야하지만)그래도 이력서 상에 IT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를 담당했다는 근사한 한 줄을 적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알량한 생각에서 시작된 지금의 포지션이었다. 전략적 일보 후퇴라 생각하고 나는 초반만 잠시 그런 잡무를 해주는 시늉을 하다가 프로젝트 매니저가되거나 아니면 프로젝트 예산을 관리하는 컨트롤러가 되거나, IT 프로젝트 포트폴리오 매니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며, 차라리 론칭하는 소프트웨어같은 SAP계열 ERP 전문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그러면 이민자로서 직업시장에서 일자리를 찾기에는 그저그만인 이력이 될거라고 철썩같이 믿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프로젝트 팀원들은 나를 그저 갓 대학 졸업 후 최말단으로 들어와서 프로젝트 매니저의 어시스턴트나 해주는 정도의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을 매우 강하게 받았다. 나는 이 포지션을 시작할 무렵만해도 20대 막차를 달리는 나이였다. 나는 그간 일을 꾸준히 해온 경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포지션들과 선형(linear)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여, 내가 지난 포지션들로부터 가지고 올 수 있는 적용가능한 스킬들 (transferrable skillset)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없었던 일처럼 되어버리려는 것 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거기서부터 대략 다음과 같은 불안감이 급습하기 시작했다.


뭐지? 전략적 후퇴가 아니라 그냥 총체적 후퇴로, 과거에 그토록 벗어나려고 했던 어시스트, 어드민으로 전락한 후퇴인거였을까?

나는 그저 말단 정도로만 본다구? 지금 나이로는 만년 쥬니어레벨이 아니라 한단계 더 도약을 해야하는데 일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이게 뭐지?

기존의 직책에서 선형으로 이어지지 않는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포지션이라고 중고신입으로 까고 들어가나? 이전에 맡았던 IT 체인지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롤도, 프로젝트들 론칭할때마다 밀접하게 일하며 프로젝트로 인해 도입되는 변화들을 커뮤니케이션하고 프로젝트 마케팅하는 일도 했어서 지금 하는 포지션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깡그리 무시할 게 아닌데,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건가?


나만... 이.렇.게. 생각했던 걸까?
아무도 나따위는, 커리어적으로 좀 자리잡아보려고 분투하는 외노자, 외국 출신 직원의 몸부림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었겠지? 나는 망하는걸까?

 

단순 어드민 업무들만이 많이 주어졌고 안그래도 다시 과거에 그토록 벗어나고 싶던 어드민 & 오퍼레이션 잡무 담당자로 추락하는 것인가 불안해하고 있던 차에,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어버린 쐐기를 박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상사는 지난 2020년 3월 말 무렵 내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상사: 알다시피 올해는 채용이 동결되었고, 업무적 유사성도 있으니 네가 이 업무도 겸직을 해줘야겠어.

나: 그럼, 저는 월급을 좀 더 올려받게 된다거나 어떤 다른 혜택이 있나요? 그리고 이 일을 맡고난 이력이 나중에 제 커리어적으로 어떻게 활용이 가능할 수 있게 될까요? 이 일을 지금 이렇게 비상시로 겸직하게 되었다가 나중에 어떤 보상이 생길 수 있는 건가요?

상사: ... 그건 지금으로서는 확답할 수 없고, 지금은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다들 좀 희생이 필요해.

 


사실 부서 총무가 그 앞전 해인 2019년 가을에 사직을 하고 계속해서 길어지는 공석에 이상하게도 자꾸만 약간씩 불안했었다. 팀이벤트를 어시스트하고 부서에서 총괄하는 각종 프로젝트들의 월별 비용을 정산하는 총무적인 일을 기존의 프로젝트 팀을 위해 예산 트래킹, 인보이스 관리, 프로젝트 관련 프레젠테이션 준비 등을 하고있던 내게 엮고자 하는 상사의 시도는 그나름 꽤 타당한 솔루션이었다.


그래도 마냥 잠자코 시키는 대로 하다가 정말로 팀 어시스트겸 프로젝트 어시스트 만년 "어씨"로 남아서 인보이스 상의 금액이 안맞으면 관련 담당자 쪼으고 팔로우업하고 그런 일들을 해야하고 자율적으로 주도적으로 무엇인가를 기획하고 도입하는 일을 하고 싶었던 나의 욕구와는 정반대의 잡무들만을 퇴직하는 날까지 할 것 같았다.


하여, 나는 부서내에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을 예산 대비 월별 발생 비용 트래킹을 하는 툴을 론칭하게 되며 그것을 통해 그냥 비용트래킹이나 하고 어씨만 하는게 아니라, 부서내에 기존에 없던, 프로젝트 포트폴리오 매니지먼트를 위한 툴과 프로젝트 진행 상태 리포팅 프로세스를 도입하는 일을 하면서 그 나름 하나의 Best Practice 기획을 해 보려고, 그리하여 프로젝트 어씨가 아니라 프로젝트 거버넌스 모델을 제시하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보려고 하였다.


상사는 내가 떠나면 사람을 못구해서 망하는것을 알기에 내 내향적인 성향과 한번씩 문을 다시 여는 사무실에 끝끝내 출근 안하고 재택을 고수하려는 내가 짜증났겠지만 참아줬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그와 가진 암묵적인 거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나는 이런저런 자잘한 일들만을 하게 되며 내가 저평가 되고 있다는 생각에 휩쌓이게 되었다.

 

결국 이 우여곡절 끝에 2020년의 한 해는 저물었고, 연말에 상사는 나에게 연봉인상도 안되었고 여러가지로 희생을 하였으니 회사 내에서 퍼포먼스 좋은 직원들에게만 올해 주기로 한 특별 보너스를 주기로 했다고 하였다. 한화로 치면 170만원 정도 되는 월급 외의 금액이었다.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정말 감사하긴 했다. 그래도 이런 상사가 있어서 작년 한해 동안 무수히 치솟아 올랐던 퇴사욕구를 가까스러 누르며 오늘 까지 지내 올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돈을 던져주고 입막음을 하며 신년에도 계속해서 나를 이런 용도로 쓰겠다는 의도이지 않는가 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100일 뒤에, 내가 이 부서의 이 포지션을 맡은지 2년을 넘기게되는 5월이 될때까지 올해는 작년보다 나을 수도 있으니 조금만 더 예의주시 하며 시간을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매일 매일 마음이 널뛰기를 한다.

 

조금만 더 참아서 하던 일 하면서 지내볼까?
아니야, 직장생활은 정말 아닌것 같아. 마음 먹은 김에 이제는 정말 마음을 굳히자.



그래도 상사가 너를 인정해주려고 해.
상사로서 그는 참 매력적인 좋은 매니저야. 배울점이 많아.
동료들도 좋은 사람들이야.
단지 지금 하는 식의 일이 양에 차지 않는거야.


그런데 만일 네가 원하는 기획적인 업무를 하고 오퍼레이션에서 손을 떼게 되기만 한다면 그렇다면 행복할 자신 있어? 지금 하는 일 계속 해가면서 대체 커리어적으로 어떻게 되고싶은거야? 회사원생활 계속 하고싶은거야?
회사다니면 월급을 받고 이력서 상에 공백기 안생기는 장점은 있지만, 그거 이외에 정말로 사람들과 협업하고 그런 일들이 장기적으로 네가 원하는 일이 맞는거야?

남보기에 어떠한가를 따지기 전에, 너는 네 스스로가 어떤것 같아?

 

내 마음에서 이런 소리들이 한데 뒤섞여 소란이 일고있다.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19.01.2021

 


2021년이 밝았다.
해외 이민 생활을 시작 한지 햇수로 7년차에 접어들었다.

해가 바뀌어도,
세상은 여전히 코로나의 시대이다.

그리고
나는,
하고싶다.

.
.
.
.
.
.

퇴.사.

 

 


 

부끄러움 많은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을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돌이켜보면 나는 지금껏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서른 몇 해를 넘기며 살아오는 동안 대체로 하고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 온 것 같다. 언제나 더 많이 가졌더라면, 더 풍족한 환경이었더라면, 이러이러 했었더라면 하는 무수한 시나리오들을 차례로 나열 해 보며 현재를 축소시키는 고질적인 버릇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암만 생각해보아도, 결국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내 인생에 내 선택이 개입되지 않았던 순간은 거의 없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스스로 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살아왔었노라고 고백하며 말문을 연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껏 나 하고 싶은대로 살아오기는 했다만, 그 모든 선택들에 무조건 당당할 수만은 있는가 자문해보기로 했다. 그러자 조금씩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괜히 좀 부끄럽기도 해야 성찰적인 사람이 되는 것 마냥 스스로에게 일정량의 부끄러움을 슬쩍 강요해 보기로 하였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고 여러날이 더 지나는 동안, 암만 자문을 해 보아도, 역시 나는 부끄러운 인생을 살지는 않았다.

우선은 그걸로 되었다.

나는 나 자신을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을 것 같은 나날들을 무수히 지나왔고 자주 수치심 같은 감정들에 놀아나기도 했다만, 적어도 그 자체로 부끄러움 많은 삶은 아니었다고 확신을 갖기로 하였다.

이로써 지금껏 내가 내려왔던 모든 선택들을 징검다리 삼아 딛고 올라 선 지금의 자리에서, 앞으로 내리게 될 선택에 대한 확신에까지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국에서 살 때에도, 지금 이곳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온 곳에서도 역시 비주류이다.
그래서 이런 인생에서, 메이저한 남들이 보기에 혀를 찰 수도 있을 마이너한 선택을 내리려고 한다.


햇수로 7년에 접어드는 이민생활을 하는 동안 세상에는 크고작은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일들은 마구자비로 일어나더니 급기야는 온 세상이 창궐하는 전염병 앞에 문을 걸어잠그는 팬데믹의 시대까지 도래했다.

 때는 바야흐로, 코로나시대.
나는 맨땅에 헤딩하듯이 이민가방 두개 달랑 들고 단신 이민을 감행한 내 나름 잔뼈 굵은 이방인이다.
나는 그동안 더 낳은 일자리를 찾아 헤매이며 그래도 내가 내 자신을 부양해 온 이력이 붙은 근로자이다.

나는 자주 침울하고 예민해지는 우울불안장애를 앓고있기도 하다.
나는 문재가 제법 있는 줄로 착각하고 살았으나 알고보니 문제만 많은 꼴통이다.
나는 글을 짓는 예술가가 되고싶었지만 될 깜냥이 없어 슬픈, 한갓 예술가병 환자다.
나는 자기 손으로 생활비를 벌어내는 보통의 소시민적 삶을 유지하려는 생활인이다.

그래서 퇴사는 옵션이 되면 안되는 일이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정말로 하고싶다. 이제는 더는 안되겠다.
이직도 하고 싶지 않고, 이 주류의 삶의 방식에서 자발적으로 나가고 싶어 미칠 것만 같다.
나는 그래서 다음 할 일을 마련해 놓지 않은 채로

스스로에게 약 100일 간의 시간을 주기로 하였다.
그 시간동안 나는 퇴사를 통보할 마음의 준비를 다져보기로 하였다.

이 선택을 내리고자 하는 이유는, 남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남들 하듯이 살아보려고 했지만 그럴때마다 자꾸만 내 자신에게는 어딘지 내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것 같은 부끄러움이 고개를 드려고 하는 것 같은 패러독스를 끝내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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