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27.01.2021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주님에게서 상속 재산을 상으로 받는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콜로새서 3장 23-24절


 

 

나는 지금 흙 속에 몸을 숨긴 한 알의 영롱한 진주다.

이렇게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누가 봐도 한눈에 화려하고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일 필요 없다.
누가 봐도 한눈에 매혹적인 붉은 루비일 필요도 없다.
누가 봐도 한눈에 신비로운 에메랄드일 필요도 없다.
나는, 은은한 광채를 내뿜는, 조개가 눈물로 품어낸 그 한 알 진주로 충분하다.
우아하고 클래식한, 그리하여 유행을 타지 않는 한결같은 그러나 견고한.

반드시 드러날 필요 없다. 평생 숨어 살 필요도 없지만 꼭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필요 없다. 그렇게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내가 보기에, 나는 소심한 관종같다. 관심의 중심에 놓이면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아주 뒷전으로 밀려난다 싶으면 불안하고 어딘지 침울해지니 말이다.

 


일단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는 데까지 해 보는 것은 이 "흙속의 진주"같은 심정으로 참아내듯 지내면서 지금껏 해 왔듯이 버텨 볼 수도 있는 일이다. 분명 이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는 한편,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회사원 생활을 하는 것에서 내가 만족하고 이 테두리 속에서 성장하고 싶은지에 대한 판단은 내려야한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이든, 다른 어느 곳이 되었든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계속 자리보전하면서 어떻든 버티고 또 버티면 반드시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것이고 그것이 승진이 되었든 급여의 인상이 되었든 조금 더 품격 높은 혹은 복잡한 업무가 주어지는 방식이 되었든 풀려갈 것이다. 여기서 나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그렇게 그 조직 내에서 계속 발전을 정말로 해 나가고 싶은가이다. 

직장생활을 계속 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해나가고 싶은가?
직장생활을 계속 하고 싶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직장생활을 지속 했을 시 나는 무엇을 얻게될 것인가?
직장생활을 안한다면 어떤 대안을 생각하고 있는가?
그 대안을 택했을 시 나는 무엇을 얻게 될 것인가?

 

사실은 직장을 팽개치고 모든 것들로부터 손을 떼고 싶어졌던 순간들로 점철되다 시피 했던 지난 세월들 동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끝끝내 손에서 직장생활을 놓지 않게 한 원동력은 이런 것들이었다.
이민 초창기 때에는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영주권을 취득해서 1차적인 정착을 마치기 위해서. 그렇다면 영주권을 따고 난 지금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생활비는 벌어야하기 때문에. 단지 그것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반대로 물어보자.
무엇이 제일 두렵거나 염려되어 퇴사를 유보하고 게다가 이렇게 퇴사 전 일지까지 쓰기 시작한걸까?

외국에서 자리잡고 살아가는 가운데, 직장이라는 끄나풀이 사라지고나면 과연 내가 나의 이곳에서 살아감의 이유를 입증 할 수 있을까?

나와 이곳 사회를 연결해주는 끈이 여기서 내가 하고있는 노동활동이며, 그로인해 취득한 급여, 거기서 원천징수 되어가는 사회보장보험료와 엄청난 양의 세금을 마치 여기에 살아가는 대가로 지불하는 사용료 같이 여기며 살아왔다.

그 끈이 떨어지고 나면 헌 짚신짝처럼 끈떨어진 신세로 나뒹굴면 어쩌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영화 제목 같은 이런 말.
외국생활을 하면서 주로 이런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맞고 여기서는 틀린 것들.
한국에서는 안되는데 여기서는 되는 것들.

그 중 대표적으로 현재 내 상황에 가장 소용이 닫는 차이점은 바로 이것이다.

 

한국에서는 없는 것

여기서는 있는 것

자진 퇴사 시 실업수당 지급 안됨.

자진 퇴사 시 최대 3개월까지 freeze기간 있은 뒤부터
지난 12개월 이상 수령 급여액의 60-70%정도까지
실업수당 지급.

단, 꾸준히 고용노동센터와 소통해야하며 구직활동을 하고 있음을 증명해야함.

한국에서 살 당시 나는 돈이 거의 없는 상태였음.

많은 돈은 아니여도 그래도 그동안 모은 돈으로,
최악의 경우 아무 소득이 없다 해도 최장 1년까지는
버틸 수는 있을 것 같음.



일단 이렇게 마음을 먹어보려고 한다.

그 이유는 
어떤 선택을 하든 모든 것은 내 소관이라는 주체성, 능동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상황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나에게도 얼마든지 유리한 쪽으로 끌어내 볼 수 있다.
나는 절대 무능력한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1. 퇴사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2. 퇴사를 하게 되더라도 당장 굶어죽지 않는다.
3. 퇴사를 하고 안하고는 전적으로 내 의지 소관이다.
4. 퇴사를 안하고 버티는게 능사가 아니듯이, 퇴사를 했다 해서 그것이 반드시 실패인 것은 아니다.
5. 궁극적으로, 퇴사를 "스마트하게" 할 수 있도록 해보자.

 

허나.. 장기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암만 생각해도 아니올시다다.
그렇다면 결국 답은 창업인가? 프리랜서인가? 주식을 배워 투자를 해야하는가?
또 만일 창업을 한다면 뭘 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어떤 니즈들이 있고 그 니즈들과 내가 가진 능력치의 교집합 부분은 과연 있기는 한걸까?

 

자기만의 컨텐츠를 기반으로 한 지식창업.
어떤 지식?
무엇을?
어떤 컨텐츠?
나는 누구?
나만의 차별성, 고유성?
퍼스널브랜딩.

 

 


 

솔직히 내가 앞으로 92일 뒤에 5월이 되었을 때에 바로 사표를 내지 않고 회사를 더 다녀보기로 마음 먹는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주제가 바로 이 "퇴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가슴 속에서는 5월이 되면 어떤 뾰족한 솔루션이 생겨 5월에 사표를 내라면 낼수도, 한 몇달 정도 더 월급을 모을 심사로 다녀 볼 수도 있는 선택이 가능한 위치에 있고 싶다.

역시 대안적 삶에 대한 뾰족한 수가 생겨야만한다.
지금으로서는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한다 하더라도, 그로인해 급여도 높아질 수 있고 조금 더 나은 업무를 운좋게 찾게 된다 하더라도 회사생활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나를 가장 불편하고 불안하게 한 것들과 또다시 부딪히고 또다시 나는 퇴사를 생각할것만 같은 강렬한 예감만이 든다. 그래서 이직을 안한다는 전제하에 나는 무얼 할 수 있는가.. 그 답이 내려지지 않지만, 동시에 가장 시급한 문제가 갈수록 점점 더 난제가 되어간다.

 


나는 흙 속의 진주.
인내하고 헌신하지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하루 하루 살아내지만, 지금 내 머리로는 내 능력으로는 내 현실로는 스스로에게 다른 환경을 마련해 줄 재간이 없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모순이다.
순종하고 인내하고 감사해야하는데 이런 현실이 아직은..좀 많이.. 슬프다.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26.01.2021

 


 

곰곰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왜, 어찌하여 그토록이나 지금까지 해왔던 종류의 일들과 지금까지 겪어온 대부부의 일들, 그 속에서의 나의 위치에 불만을 품어왔던 것일까?


왜 나는, 마치 "나만은" 더 높이 되는 일을 해야하고, 더 우아하고 폼나는 일을 해야하고, 돋보여야하고 우월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던걸까?
한번도 그런 삶을 살아온 역사가 없건만, 어찌하여 마치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생각을 해왔던 것일까?

이 부분을 놓고 나는 꽤 오랜 시간동안 몇 년에 걸쳐 성찰해보고 고민해보았다.
그때마다 번번이 내 안의 어떤 방어기제 같은것이 진실을 마주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비교적 최근에야, 이 부분이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열등감과 우월감의 상관관계와도 같았다.

 

한국에서 보냈던 청소년기와 초기 성인기라 할 수 있는 대학시절, 그리고 대학 졸업 후 방황하며 이런 저런 일들을 전전했던 시기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 바닥을 친 자존감은 이곳으로 건너온 뒤에도 지금까지 크게 상승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자존감의 유무가 사람의 삶의 질을 이토록 좌우 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놀랍고도 놀라울 뿐이다.

[자기미움], 필로 이경희 저, 북스톤 출판

작년 초반 무렵이었을 것이다.

나는 내 안에 켜켜이 쌓여있는 열등감들과, 우월하고 돋보이고 싶은 욕망 사이의 줄다리기에 지쳐있었으며 그것을 파해치고싶은 갈증에 고조되어있었다. 그때 나는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책 제목은 [자기 미움]이었다.
내가 오래도록 품고 살았던 자책감, 수치심, 자괴감 그리고 분노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한 권을 끝까지 다 읽는동안 많은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 해 볼 수 있었다.

 

 

 

 


"사실 죄책감이나 죄책감은 겸손도 자기반성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무의식적인 심리적 우월감 혹은 안정감과 만족감을 위한 전략이다.

지만 잘못된 전략이고, 결국 자기 자신이 희생자가 된다.
얼핏 납득이 어려울 수도 있다.

타인이나 상황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고 책임을 통감하는 심리인데 왜 이기적인가?

물론 제대로 된 자기반성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책감, 죄책감은 교묘한

이기적 심리가 더해져서 만들어진다. 자신의 '다른 모습'을 꿈꾸는 것이 그래서다.

일종의 자기배신이자 자기기만이다. 일단 기준을 높게 잡고, 그것에서 자기만족을 찾는다.

'나는 이 정도 되는 사람이야. 이런 존재야. 비록 실재로는 아니더라도.'
또는 이것은 심리적으로 버티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현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가짜를 만들어 진짜 내 모습으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두 모습 모두 오류다. 즉 본인이 생각하는 '못난 현재의 모습'도 진짜가 아니며,

또한 본인이 바라는 '뛰어난 자신의 모습'도 실제가 아니다.
그러고는 '현재의 모습'이 어떤 일이나 상황에서 스스로 정한 기준에 미달할 때 과도하게

자책하며 죄책감을 갖는다. 이처럼 비실용적인 우월감 혹은 심리적인 방어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기적'이라 표현한 것이다. 비록 현실에서는 실패했다 하더라도 내면에서는

실패하지 않고, 못나지 않고, 멋지고, 능력 있고, 잘하고 있는 나를 그림으로써

심리적 우월감, 만족감, 안심을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서 실제의 나, 실제 상황과의 분리가 일어난다.

나아가 실제 나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고, 실용적인 대응과

결책을 떠올리지 못하고 실행하지 못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손해다.

자기에게 해를 끼치는 실패한 이기심. 이것이 자책감과 죄책감의 실체다." - [자기미움] 42-44쪽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사실 많이 울었더랬다.

내 스스로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던 내가 처했던, 그리고 여전히 처해있는 현실과 그 속에서의 나. 그리고 내가 되고싶어한, 내가 욕망한 기준 속에 있을 법한 상상 속의 나.
나라까지 바꿔서 살아보겠다고, 내게 어떤 유쾌함도 주지 못했던 한국을 벗어나서, 내가 내손으로 마련하고 빚어온 삶의 터전이 있는 이곳에서도 나는 여전히 "쭈굴이" 신세, "시다바리"신세, 거기다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외국인 이민자로 어찌해도 빛나고 돋보일 수 없는 그런 환경에 놓여있도록 내가 내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누구의 탓도 아니라 모든 것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들의 결과물이라는 것.
이렇게 하면 조금 더 우월해질 수 있겠지, 이렇게 하면 조금 더 발전하겠지, 이렇게하면 조금 더 스스로 긍지를 느낄 수 있겠지 하면서 살아왔지만 번번이 스스로에대한 의심과 자책감, 그리고 열등감은 곱절로 늘어갔다.

 


사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세상적인 잣대로, 세상적 수준의 - 다시말해, 인간적 이해와 지식의 차원에 입각한- 조언들과 해석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점점 더 나의 마음을 만져주는 참 조언을 찾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었다. 나는 무엇이 조금 잘 되려고 할때는 우쭐거리며 자기영광만을 찾으려고 했으며, 조금 잘 안된다 싶으면 우울의 나락으로 빠지며 세상을 증오하고 내 자신을 죽일듯 미워했다. 

나는 그럴수록 더욱 더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것들에 집착했다. 내 고민을 아무에게나 토로하고 징징대고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을 성급히 내리고 더욱 더 스스로를 우울의 수렁으로 밀어넣었다. 더 나은 직장을 가지면 지금의 고민에서 해결될거야, 더 나은 자격을 가지면 나아질거야 그래서 자격증 취득하는 것에 목을 매기도 했고, 이것만 하면 나아질거야, 이렇게 하면 될거야 저렇게 하면 될거야..

그와중에 나는 기도도 잘 하지 않았고 그나마 아침에 눈뜨면 성호긋고 늘 바치던 주님의 기도도 그냥 아무 영혼없는 웅얼거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종교활동이 금지되며 더욱 더 성당에 나가는 생활, 성경을 읽는 생활에서도 멀어졌다. 

 

그러던 차에 올 신년 초, 나는 한 유튜버를 알게되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굴지의 대기업 CHRO자리에까지 고속승진하며 커리어의 최정점을 찍고 지금은 퇴사하여 구직난을 겪고 있는 수많은 청년들과 직장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여러가지 활동을 하는 유튜버 "퇴사한 이형" 이준희 대표님이었다.

그분의 채널이 제공하는 진솔하면서도 탄탄한 경험에 입각한 조언들에 감탄하며 그의 영상들을 보다가 아래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사실 그는 크리스천이며 한 기독교방송에 출현하여 간증 형식으로 직장생활에 대처하는 올바른 크리스천의 자세에 대해 피력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믿음으로 고속 승진 할 수 있을까요? | 면접왕 이형 이준희 대표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요 직장 생활 꿀팁 좀 알려주세요""믿음으로 고속 승진 할 수 있을까요?"신앙인으로써 직장 생활 하는 방법 취업전문가 이준희 대표가 속 시원히 답변해드립니다. -이준희 대표前 대기업 최연소 최고인사책임자(CHO) 現 '면접왕 이형' 유튜브 채널 운영 -면접...

youtu.be/lwwQTu1tVVs

 

 

 


크리스천이 세상사람들과 구별되는 것이 거룩함이다.
어떻게 거룩함을 드러낼 것인가?
결국 세상사람들이 하지 않으려는 값 지불을 함으로서 거룩함을 실천할 수 있다.
다른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하면 되는 것 같다.
일이, 직무가, 직장이 우리가 부르심 받게 된 것이라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 근사한 일일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때도 있다.
근사한 일일때는 이게 정말로 나를 위한 부르심인 것 같다고 여겨 헌신, 순종, 감사하지만
그렇지 않아보이는 단순반복적이고 남들만을 위한 일일 때에는 전혀 그 반대의 길로 가게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것이 비성경적이라고 본다.

그 작은 일에 충성될 때 하느님은 더 큰 일을 맡기시는데 그 충성을 다하지 않고
큰 일만을 바라는 것은 값지불이나 성경적인 차원에서의 올바른 직업관은 아닌 것 같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기꺼이 하면서 내가 반짝반짝 빛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내가 인내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세상사람들도 그것을 높이 사 줄 것이다.

내가 인내하고 남들이 안하는 값을 지불을 하는 과정에서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직장은 그것을 알아보게 된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늘 반짝반짝한 상태로 있기 보다는 흙속에 숨어있는 진주같은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과정을 통해서 성장하게 되고,
꼭 세상적 고속승진이 아니라 해도 그 과정에서 내가 받은 은혜로, 인내로 살아간다면
영적으로는 큰 승진이 있지 않을까?

열등감을 상쇄하기 위해 가상의, 환상속의 이미지로 빚어낸 우월감을 덧입혀가며 살아오고 있었던 나.
나는 열등감도 우월감도 모두가 마음에서 만들어낸 것들이지 실재하지 않은 것임을 머리로는 조금씩 이해하겠지만 여전히 마음으로부터 전적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상태다. 이것이 내가 넘어서야 할 부분 같다. 이것이 해결 되어야 내가 지금껏 해온 모든 고민들을 해결 할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퇴사를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아니 직장에서 하는 일이 이것은 어떻고 저것은 어떻고, 원래는 내가 원하기에는 이것은 이렇게 되어야하고 저것은 저렇게 되어야하고, 그렇게 되어야"만" 하고 그런 모든 강박적 관념들. 그런것들 이면에 첨예하게 대립중인 열등감-우월감의 싸움.

그것이 진짜 문제였던게 아닐까.

 


 

저 영상의 말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전신갑주처럼 주신 무기가 있다.
감사, 순종, 헌신
이것이야말로 세상사람들과 구별되는 거룩함이다.
그 중에서 '헌신'이 모든것의 결론 같다.

 

개신교 가톨릭 종파를 초월해서, 종교인과 비종교인을 떠나서, 누구든지 위의 말을 한번쯤 곱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한계가 많은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그래도 우리가 가진 무기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 뒤집어 엎고 싶을때라도 순종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갖는 것. 사실 그 마음을 가지면 많은 것들이 수월해질텐데 그 마음을 가지지 않으려고 저항하면 할수록 갈등만이 생겨나고 힘들어졌으며 이기적인 자세만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렇다고 모든 비합리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순종하고 헌신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지금 자신이 발 딛고 선 곳에서 그 상황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순명하면서 인내하고 헌신하며 지내다보면 더 나은 상황이 반드시 오리라는 믿음을 갖도록 해 보자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것을 참 못했다. 

여전히 내 마음은 갈대와도 같이 흔들린다.
조금 더 순종하고 인내하면 되는걸까?
두려운 마음,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볼까?
그러면 나 내 안의 열등감도 우월감도 다 부질없음을 완전히 깨우치고 거듭 날 수 있을까?

 

 

오늘은 그 어느 날 보다도 기도가 필요한 날이다.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24.01.2021

 


 

주말은 매번 순식간에 사라진다.
오죽하면 "순.삭" 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순간삭제되는 주말.

나의 고질적인 병폐라면, 주말이든 휴가든 쉬는 날이 오면 낮과 밤의 사이클이 뒤바뀐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데, 아마도 쉬는 날, 그 자유가 보장된 날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 설레어서 생기는 일종의 각성작용이 아닐까 싶다.

이번 주말 동안은 사실 금요일 저녁부터 해서 웹툰 보기에 푹 빠져 지냈다.
작년 하반기 무렵부터 몇몇 웹툰들과 만화를 온라인으로 보면서 흥미를 갖게 되었더랬다. 과연 21세기는 컨텐츠의 시대답게 각양각색의 웹툰들이 수많은 독자들의 제각기 다른 구미를 만족시킬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도 저 웹툰 작가들처럼, 저 웹소설 작가들처럼, 저 웹드라마 작가들처럼.. 저렇게 확실한 자기만의 컨텐츠를 생산해 낼 수 있다면..!

어느정도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경제적으로 곤궁해진다 하더라도, 자신만의 창작열을 불태울 무언가가 있다면 정말 큰 삶의 위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웹툰은 정말 신의 손 금손들만의 영역 같다. 나도 그림그리기를 좋아하지만 순수하게 "좋아"만 해서 퀄리티가 정말 초등학생 수준이다. 그래서 슬픈 똥손이다.

내가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그걸 그림을 곁들인 웹툰으로 지어낸다면 그 시각적 효과를 등에 업고 전달력을 높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역시 글도 못쓰는데 거기다 더 안되는 그림까지 더한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오늘 하루종일 든 생각은 다음과 같다.

1. 나도 나만의 컨텐츠를 제작하는 사람이고 싶다.

2. 꾸준히 소설쓰기를 위한 소재의 "줄거리화"에 힘을 써야겠다.

3. 현재의 풀타임 회사일과 같이 에너지소모가 큰 일이 아닌, 생계유지가 되는 일을 찾는다면 그걸로 생활을 책임지는 한편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하면서 살고싶다.

4.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놓을줄도 알아야한다. 시간과 자율성을 얻는 대신, 직장생활이 주는 대외적 안정성을 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5. 그럼 대안적인 일은 무엇이 있을 수 있나 열심히 찾아보자.


대안만 마련할 수 있다면, 뾰족한 수만 하나 생긴다면 어쩌면 정말 다음 달에라도 당장 나는 사표를 낼 기세가 등등하다.

더 이상은 자꾸 핑계되면서 아닌 길을 억지로 걸어가면서 온갖 유세 떨고 가식 떠는 짓을 그만 할 수는 없을까?!

 


 

추신:

푹 빠져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현재까지 연재 중인 에피소드까지 정주행을 달린 웹툰 들 중 2편을 뽑아보았다.

1. 고래별: 1920년대 일제강점기 군산과 경성을 배경으로,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를 모티브로 한 취향저격 최애 순정 시대물 웹툰. 고증이 잘 된 시대물인데다가, 내용전개도 상당히 문학적이다. 게다가 매회 삽입된 고퀄리티의 몽환적 인어공주 일러스트를 보는 재미는 덤.

고래별

1926년 일제 식민 지배 하의 조선. 17세 소녀 수아는 군산 일대 친일파 대지주의 집에서 몸종으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수아는 부상을 입은 채 해변가에 쓰러져 있는 독립운동가 의현을 발견하고, 그를 보호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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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일도 출근: 현실적인 직딩생활의 묘사와 까칠 도도하지만 츤데레 돋는 옆자리 직장상사와의 "어른들의 로맨스"로 마음을 선덕선덕하게 하는 순정 오피스 웹툰. 남주 얼굴이 내취향이라 살다보니 만화 속 2D남에게 까지 매력을 느낄 수 있음을 체험하게 됨. 

내일도 출근!

회사 최악의 까칠남 VS 결혼은 싫다며 도망간 전남친. 둘 중 누구를 선택해야지?!

webtoo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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