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21.01.2021

 


 

그러다 팀 내 한 직원이 자신이 아는 다른 부서의 직원이 IT부서에 있는데 프로젝트를 여러나라에 걸쳐 롤아웃하여 새로운 서비스 체제를 도입하는데 변화관리매니저로 커뮤니케이션, 트레이닝 그리고 프로젝트 마케팅적인 업무들을 담당할 사람으로 조직 내 채용에도 관심이 있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그것을 그 당시 부장에게 추천 한 줄 몰랐으나, 나중에 그녀가 직접 말해주어 알게 된 것이었다. 고마웠다.

나는 그 부서에 지원을 하였고 거의 형식적인것에 불과한 면접을 거쳐 그 부서에 들어가게되었고 그렇게 하여 나는 비록 업무의 내용은 큰 성격적 차이가 없지만 조직도 상에서는 HR에서 IT로, 내 이력서 내에서도 보면 HR 혹은 총무 적인 일들을 하던 것에서 IT 로의 업종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부서에서는 1년 반 + 3개월 노티스기간 도합 1년 9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현재 부서로 이번에는 내가 자진해서 직접 찾아서 옮긴 지금의 포지션으로 오기전까지 있으며 글로벌 프로젝트가 숨가쁘게 흘러가는 동안 열성적으로 HRD 그 부서에서 조금씩 알게된 이러닝 프로그램 짜고 사내 이러닝 페이지에 외주 러닝업체에서 받은 프로그램 업로드를 하여 유저들에게 론칭도 했고 수많은 뉴스레터들을 작성했고 커뮤니케이션 컨셉을 짜서 발표했으나 그 프로젝트가 끝나며 다른 프로젝트들도 별로 그런 규모의 체인지 매니지먼트가 요구되는 일이 없는 상태였고 일감을 주기위해 억지로 일을 만들어내는데 그 일들이란 다시금 그런 환경미화같은, 상사의 프레젠테이션 꾸며주는 것, 부서장이 매월 1회 하는 커뮤니케이션 할때 파워포인트 예쁘게 만들어주는 것, 어느 서비스팀 판촉물로 티셔츠가 필요한데 그 티셔츠 주문해주는 일을 하며 다시 내가 끔찍히도 싫어하는 일로 회귀어버리고 마는 기현상을 목격하게되었다. 이런 반복적 경험은 하나의 트라우마로 자리잡게 된다.

 그무렵 당시 HRD 그 팀에서 대학원생 신분으로 업무보조일을 해주던 남자가 석사학위를 따고나서 정규직으로 또다시 이 회사에 지원을 했고 나랑 똑같은 포지션으로 해서 그 IT 부서의 팀으로 들어오는 일이 생겼다. 처음에는 내가 그를 가르쳐주는 입장이었는데 점점 더 그는 자기도 막 인정을 받고싶어하는 액션들을 취했고 그는 현지인이었다. 그 제법 체인지매니저 다운 체인지매니지먼트를 그나마 해볼 수 있었던 프로젝트가 끝나고나가 부서에서는 자기들도 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시켜줘야 할 지 모르는 눈치였고, (그 더 자세한 내막은 아직은 써내려가기 어려울 것 같다. 다시 그때 내가 느꼈던 암담함이 떠올라 숨이 막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일밖에는 당시 구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울며겨자먹기로 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상태였고 그런데 정말이지 다른 직원들과 활달하게 어울리며 정보를 얻고 그것으로 다음 업무 (즉, 어느어느 서비스팀 무슨 로고 디자인이 필요한거 그거 내가 이번에 해줄게, 이런식. 혹인 아 그런 뉴스레터 쓸게 있어? 그럼 그거 이번에 우리에게 가져와 우리가 해줄게. 그런식..)  수주받는(?) 수준으로 일이 돌아가는 것도 싫었고 그렇게 그따위 일을 하고싶지도 않았는데 여전히 나는 영주권이 없는 상태로는 직장을 반드시 다녀야만 체류증이 연장되었기에 미칠 것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내가 못견뎌하는 것들.

 

1. 불명확함.
포지션이 명확하지 않고, 포지션을 채용 할 시 장기적 관점에서 그 직렬을 어떻게 개발할 지 계획이 없는 상태,
그리고 그러한 조직.
2. 이상한 조직구성.
직속상사는 있는데 그 상사는 직접적으로 업무와 연관이 없는 사람이었고 그 사람 밑에 있는 좀더 나이 많으면서 나랑 같은 업무를 하는 여자가 또 다른 상사같은 그런 역할, 게다가 안그래도 장기적 관점도 없는주제에 덜컥 똑같은 일 맡을 사람을 한명 더 뽑아놓고 작은 파이로 등분해서 나눠먹기식으로 일을 나누려고 하는 그런 것들에서 느껴지는 무능력함.

 

3. 이상이 심각하게 좌절되는 현실
결국 그러면 내가 잘하는 뭐 만들어주고 작문해주고 프레젠테이션 만들어주는 내가 언제나 능력을 인정받아왔던 크리에이티브한 분야의 일을 결국 남의 일 돋보이게 예쁘게 해주는 정도로 전락하는 일로만 구현이 되는 상태를 직면한다는 것. (나에게 크리에이티브한 행위는 숭고한 영역이어야하는데, "어씨"적인 일로밖에는 풀어낼수가 없는것이다)
4.뫼비우스의 띠: 싫은 업무로의 회귀
결국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뒤치닥거리, 어씨적인 그런 업무들만이 주어지면서 내가 주도적으로 컨텐츠를 짜는게 아니라 철저하게 그 컨텐츠를 주는 사람들에게 종속되어야 하는 것. 이번에도 역시 그런 일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것. 되려 자꾸만 자꾸만 그런 일로 돌아오고있는 것. 나는 그런 일만 계속 해야되는 사람인데 나만이 나를 착각하고 있는건가? 이때 사실 나는 스스로 인지왜곡이나 어떤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를 두고 아주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5. 단일민족성이 강한 곳. 
나름대로 글로벌한 편에 속하는 본사이지만 그 부서는 유독, 특히 내가 속한 직속팀은 유독 현지인들만 있는 곳이었고, 나는 한국에서 단일민족성이 강한 곳에서 나고자라는 와중에도 그게 참 갑갑하고 불편했는데 여기서조차 그것을 느끼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6. 7. 8. 9. 10.....해서 번호를 계속 붙여나갈 수도 있지만 그럴수 없다. 그러자면 기억을 너무 많이 끄집어내야하기 때문이다.

 

하여 그곳에서도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아무리 잡코칭을 받아보고 마음을 돌려보려고해도 저항감만이 더 커져서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사실, 사람들 자체는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그들을 버리듯 떠난것이다. (물론 마지막까지 인수인계도 매뉴얼도 철저히 남겨주고 마지막까지 굴욕감 다 참아내며 그들의 눈총도 바보스러울정도로 납작 기어가며 맞춰주고 받아주었고 아주 도피한 것은 아니지만서도, 엄밀히 따지자면) 나는 그들을 버렸다. 왜냐하면 내 기준에서 그들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미래가 아니라, 나의 미래, 내가 꿈꾸고싶은 미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시점에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곳에서 뿐만 아니라 나는 줄곧 그래왔던 것 같다. 

나는 버리듯이 절단하고 끊고 나오는 식으로 떠나버렸다.

더러는 정말로 다 끊고 추하게 끝난적도 있었고 대개는 표면적으로는 신사적인 체 해놓고서 다시는 찾지않는 식으로 끝냈다. 그로인해 그들을 떠나온데에 대해서는 추호의 후회도 없지만 계속해서 악업을 쌓고 있는 것 같다는 죄책감 "모 아니면 도"식의 극단적인 사고방식, 완벽주의적 성향, 시궁창같은 현실에 비해 높다란 이상에서 오는 괴리를 어쩔 줄 몰라하는 나 자신에 대한 경멸감에서 비롯된 수치심..  죄책감과 수치심의 종착점은 늘 분노였다.

결국 우여곡절끝에 지금의 부서에서 열린 포지션 공고를 내가 직접 찾아서 내가 직접 다 처리한 뒤 통보를 했을 때 그들이 내가 얼마나 미웠을지는 지금 생각해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리하여 나는 그때 그 행동들, 그 선택들로 인해 얻은것과 잃은것, 명암의 대비가 분명한 환경 속으로 나 자신을 한층 더 깊숙이 던져넣어버리고 말았다.

이 조직에서 9개월짜리 한시직으로 들어와서 바람앞의 등불같던 시간들을 지나오며, 생각보다 잡초같이 질긴 생명력으로, 생각보다 많은 기회를 어찌어찌해서 얻어가고 욕을 먹어가면서도 쟁취해 내었지만 그에따른 과보도 컸고, 또한 자꾸만 거듭할수록 이런 말단적인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내 스스로의 팔자를 꼬으고 있는 것 같은 스스로에대한 짜증, 좌절, 불만족, 불안, 그리고 앞서 이미 말했듯이 성격상의 치명적 단점이 장기적으로 발현되며 심각한 정신적 육체적 타격을 받으며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스스로를 구제하지 못한 채 바라보고만 있는 형국이었다.

이렇게 많이 자체적으로 검열 편집해서 나열한 분량과 내용임에도 그때당시의 그 암담함, 스스로에대한 실망, 내가 내린 결정들에 뒤따르는 과보,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그런 식으로밖에는 처리가 안되는 나자신에 대한 자살충동에 버금가는 자기 파괴욕구 등등의 진절머리나는 감정들이 여과없이 다시 올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죽어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옵션은 없었다. 나는 무조건 어떤 창의적인 머리를 굴려서라도 살아남아야했다. 그런데 자꾸 이렇게 짧막한 부서별 업무경험이 반복되어서는 더욱 더 망해가면 망했지 나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下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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