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02.03.2021

 


 

어느덧 20여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연재를 하지 못한 이유는 매일 이 내용을 쓰느라 내가 얼마나 퇴사라는 주제에 잠식당해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의 의도는 매일 100일동안 카운트다운을 하며 그날 하루를 살아내는 생각 변화의 추이를 지켜 보기 위해서였다. 상상과 실재는 다르다 하던데 과연 그러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

2년 전, 지금 부서로 옮기기 전에 연락이 와서 지역의 한 중소기업과 전화면접까지 주선해준 일이 있었던 리쿠르팅 에이전시에서 다시 연락이 와서 한 기업의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매칭 가능한 포지션을 소개해주었다. 그래서 이력서를 보내주었고 그 기업의 인사담당자가 그것을 해당 포지션 공고를 낸 부서로 보냈다고 하였으나 거기에서 거절을 당해서 결국 그 이후의 인터뷰 절차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 일이 상사와 작년도 업무평가를 하던 날 하루 전에 있었기 때문에 헤드헌터의 연락을 받아서 다른 기업에 지원을 준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좀 든든했던 상태로 상사와의 대담에 임할 수 있었다. 평가는 잘 받았다. 사실 응당 그래야했다. 나는 작년 한 해 정말로 그만 둘 위기를 숱하게 넘기고 참아가며 입에 칼을 차고 버텨내면서도 해야 할 일들을 충실히 해 냈기 때문이다.

혹시 다른 쪽으로 성장하고 싶은 건 없는지를 물어봐주길래 너무 고마운 나머지 나름대로 바람을 이야기 할 수도 있어서 생각보다 괜찮은 대화였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상사는 급여를 올려주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왠지 내가 그만둘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까.

그러면서 올해 업무 목표 세우는 것은 이번 주 금요일에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이미 자신이 다 미리 기입한 목표설정 템플릿을 먼저 보내주었는데 작년도에 하던 것과 꼭 같은 일에 한가지 더 추가로 내키지 않은 일이 들어가 있었다.

급여가 오를 수도 있다는 점, 어쩌면 다른 포지션을 맡아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 등등 그 모든 것들을 다 덮어버릴만큼.. 사실 그 템플릿을 보면서 느낀 것은, 더는 여기서 어떤 기대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이걸 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만 더 하면 이러이러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그런 기대를 버리고 나의 카운트다운은 계속된다.


 

그 사이에 지원서를 여러군데 돌렸고 두군데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고 나머지는 함흥차사 감감 무소식이다.

지금 다니는 직장 통해 알게 된 분이 있는데, 그분이 지금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한 상태이다.
그분이 다니는 그 회사에서 나온 여러개의 채용공고들 중에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 1대1 매칭이 가능하고 거기서 조금 더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포지션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분과 연락을 하여 먼저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보내고 그분이 회사 리쿠르팅 부서로 포워딩을 시켜주었고 그와 맞물러서 나는 온라인 지원도 마친 상태다. 이 회사로 잘 풀리면 참 좋을 것 같은 것이, 이미 아는 사람이 한 명 있고 (같은 부서가 아니라 할지라도), 게다가 집과의 거리도 매우 가까워서 심지어 도보로도 갈 수 있다.  또한 업무 내용적으로도 기존의 경험들을 다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시작하면서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온 이 포스팅 내용에 갈수록 더욱 더 공감하게 된다.

근 1년동안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 자가격리모드를 경험하는 동안 인생은 짧고, 직장은 한시적인 것들이며, 건강이 곧 자산이고, 저축은 항상 해야하며.. 우리 이 유혹많고 위기 많은 삶을 지탱해 나가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2월 초에 개설한 저축 전용 계좌에 벌써 꽤 돈을 모아놓게 되었다. 큰 액수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개설하자마자 가지고 있던 여윳돈을 조금 넣어두었고 2월달 월급은 거의 고스란히 다 넣었다. 이번달도 월급이 들어오면 월급의 절반 정도는 이 저축계좌로 이체를 시켜두려고 한다. 그리고 4월에 대망의 보너스가 나오면 보너스도 손 안대고 여기에 분리해서 묶어두고싶다.
예전에는 불안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주로 소비를 하면서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별 값어치도 없을 것들을 사느라 바빴지만 그 일순간을 넘기면 불안과 스트레스는 어김없이 더 커져만갔다. 앞으로는 불안해질때마다 되려 돈을 더 모음으로써 나중에 그 돈을 불안한 상황을 견디게 해주는 든든하고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고 싶다.


 

그 외에도 한가지 강렬히 느낀점이 있는데, 왜 여태껏 일을 해오면서 결정적으로 2-3프로 부족한, 어색한, 불편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던 걸까.. 왜 자꾸 행동적으로 그렇게 어딘지 가로막히는 느낌이 들었던 걸까..


그 이유는, 생각보다 참 간단했다.


내 마음이 그 행위를, 그 일을 전심으로 원하지 않았고 내 마음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살기 위해서 했다. 내 나름 열심을 다해서 해 냈다. 그러느라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래도 안죽고 살아냈다.
하지만 가급적 앞으로는 좀 그렇게 안 살았으면 한다.
아직까지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다들 참으면서 살아가겠지? 그러니 나도 국으로 가만히 앉아서 참으면 되는걸까?
참아야지만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는 걸까?
정말이지 이제는 하기 싫은 일은 제발 좀 안하고싶다. 그렇게 안해도 살아가는데 삶이 돌아가는데 지장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제 4월 말까지 58일 남았다.

올해는 부활도 빠르다. 부활절이 4월 첫주니까 딱 한달이 지나면 부활절.
그때까지 내 마음도 수난의 기간을 거쳐 모든 불순물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부활에 이를 수 있을까?

 

https://youtu.be/N9k94hTbmEo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07.02.2021


 

밤새 부슬부슬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들렸더랬다.
간밤에도 어김없이 겨울비가 내렸나 하고 창문을 열었더니 세상에 모두 하얗게 눈으로 뒤덮여있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한 눈.
이 지역은 눈이 쌓일정도로 내리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이번에 내린 눈은 종류가 달라보였다.

 

 

거실 창문 블라인드 너머로 보이는 눈덮인 앞집

 

 

간밤에 주차된 차들 위에도 눈이 소복히 쌓여있다.

 

 

 

제설장비 아무것도 없이 층계참을 쓰는데 사용하는 고무빗자루를 들고 나가 현관에 쌓인 부분이라도 대충 정리를 좀 했다. 고작 그거 조금 하는데도 온 등허리 삭신이 쑤시는데 서울에서 지역공무원으로 일하며 몇날 몇일간 제설작업에 동원되었다던 오빠 생각이 났다.
오빠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무리 해도 그따위 빗자루로는 어림도 없어서 포기하고 들어왔다.
재간이 없다.

내일되면 좀 녹아있길 바라며.

 

 


 

하는 것 없이 지나가버린 주말.
새로운 한 주는 어떻게 펼쳐질까?
이제 이 눈이 녹고 겨울도 지나가면, 새 봄이 오면 그때의 내 마음가짐에도 어떤 변화가 오려나.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05.02.2021


 

이렇게 또 한 주가 지나간다.
금요일 저녁.
메신저 프로그램에서 로그아웃을 하고 회사 VPN도 껐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어제 오늘 하기로 했던 예산 트래킹 스프레드시트 리뷰는 무사히 끝났다.
이런 저런 헤드카운트 변경사항 등을 입력하면 그대로 매달 사용해도 괜찮을 것 같다.
프로젝트 매니저가 몇 군데 기입 할 사항들을 기입 하고 마무리 짓겠다고 하였다.
그럼 괜찮다 이제는.

오늘은 미주지역 미니프로젝트 롤아웃을 위해 고용된 컨설턴트와 미주지역 세션 스케줄 관련하여 잠시 콜을 가졌다. 서로 모니터를 셰어하면서 일정과 시간 등을 재입력하는 동안 말이 없어진 틈을 타 내가 먼저 그에게 평소에는 스페인과 영국을 (그는 아일랜드계 영국인으로 스페인에 집이 있고 현재는 런던에서 체류중) 오가며 지내냐고 물으면서 약간의 사담을 하게되었다.

호주, 미국, 일본 등지에서도 직장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제법 인터내셔널한 사람이었다.
내가 한국출신이라고 하자 그는 언제나 한국에 가보고 싶었노라고 하였다.
인터내셔널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중요한 일이다.
단일민족, 단일언어 등 무언가 단일화, 획일화 된 것들은 가슴 속에서 이상하리만치 열망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이것도 나의 호불호 강한 성격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거 아니면 저거. 모 아니면 도.

 


한국에 있을 때 부터 좋아하던 가톨릭 서적 전문 출판사 "바오로딸 서점"의 SNS 계정을 팔로우 중이다.
오늘자로 내 피드에 아래의 포스팅이 올라왔다. 

 

 

출판 되는 책에서 발췌한 구문을 담고있었다.
송봉모라는 저자 역시 사제이다.
송봉모 토마스 신부님.

나는 이 신부님의 유튜브 강론 영상 등을 과거에 몇 개 본 적이 있다.

그 중에서 인상깊었던 것이 바로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 시리즈였다. 내맡기지 못하고 내 뜻대로 해내려고 하면서 고난에 빠지게 되는 세상의 많은 이들 가운데 나도 포함되어있다.

내맡김.
내려놓음.
내려놓고나서 그 내린 것들을 내어드림.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내 잣대로 내 알량한 계산에서 하는 행위들 모두를 내려놓고 모든 것을 매 순간 하느님께 맡기는 것. 그리하여 무거운 짐진 자들의 짐을 나눠 지신다는 하느님께 순명하고 순종하고 내 앞에 마련된 길을 걸어가는 일.

정말로 말처럼 쉽지 않은 이 일이 나는 여전히 버겁다.



내가 퇴사를 할지 말지 고민하는 것도, 아무리 말씀을 읽고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하면서도 매일 그래도 일을 그만두고, 적어도 이런 종류의 일들에서 제발 좀 언젠가는 해방되어서 머리도 식히고 쉬고도 싶고 다른 대안도 마련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이런 저런 되도않는 계획들을 또 찾아보려고 아등바등 거리는 것도 모두. 모든 것을 내맡기지 못해서겠지. 내맡긴다는 것은 왜 이렇게 힘든걸까?

완전히 하느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완전히 믿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그 "혹시" 하는 마음. 그리고 얼른 눈 앞에서 확인하고 싶은 조급함. 아아... 이 마음을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사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고 하느님 뜻을 기다리는 것 까지는 하겠는데 그 기다리는 과정 중에서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면 된다는데, 그러자면 계속해서 하던 일을 하면서 버텨야한다는 것이지 않는가? 그게 하기 싫은 것이다.
하던 일 계속 하면서 버티는 것.

안버티고 쉬면서, 아니면 다르 거 하면서 기다리면 안될까?

나 정말 좀 쉬고싶은데 그러면 안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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