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11.0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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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고민] | D-18 | 이 시국에 외국에서 퇴사해보려고 합니다만

[BY Birkenwald]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11.04.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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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고민] | D-18 | 이 시국에 외국에서 퇴사해보려고 합니다만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11.04.2021주말이 지나간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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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지나간다.

일요일 밤, 현지시각은 열시 사십오분.

지난 주 금요일 아침에 상사와 짧은 통화를 했다.

드디어 급여인상 컨펌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전하며, 상사는 힘주어 말했다.

보통 2-3프로 정도밖에 인상 안되는데

너는 특별히 6프로나 인상 될 예정이야.

 

6프로라...!

그렇구나. 기어이 연봉이 인상이 되기는 될 모양이구나.

몇년 전에 한 번 2프로인가 그렇게 물가상승률에 맞춰서 오른 것 이후로 급여가 인상 된 적은 없었다. 그마저도 세금을 어마어마하게 떼어가는 이 나라의 특성상 세후 금액으로 보자면 별로 체감도 안되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상사가 "너는 그동안 너무 연봉이 안올랐으니 특별히 올려준" 그 6프로의 인상율을 적용해보자면... 사실 그렇다해도 세후로는 한화로 치면 십몇만원 정도 더 오르는 정도이다.

그래, 그 십몇만원이 어디냐만은. 그렇게 겨우 특별히 오르는것도 직장을 이직해서 연봉을 아예 처음부터 싹 갈아엎고 확 인상해서 가지 않는 한, 같은 조직 내에서는 6프로가 한계구나 싶었다.

사실 감사했다. 그래도 나를 좋게 봐주어 연봉을 올려 줄 생각을 해 주었다는 것이 고맙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퇴사를 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졌다.

어제는 우편함을 열어봤더니 회사 인사부에서 보낸 편지가 들어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2020년도 보너스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번 달 월급날에 맞춰서 그 보너스가 들어온다. 내가 어제 때려치울까 오늘 때려치울까 하면서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 그래도 보너스받고 현재 직급 근속기간 무조건 풀로 2년 채우는 2021년 4월말까지 기다릴거라고 했던 그 시간이 다가오고 그사이 보너스도 확정이 났다. 받을 수 있는 것은 다 받아 챙겨서 나갈거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의 알량함과 옹졸함에 넌덜머리가 난다.


사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스스로와 했던 약속이 있었다.

절대로 상황이 불리하거나 안좋아졌을 때, 내가 화가 나 있을 때 나가지 않기로 말이다.

제일 이상적인 것은 박수 칠 때 나가는 것이겠지만, 박수받고 각광받는 것 까지 아니더라도 우선은 어느정도 평가도 괜찮고 인정 받았을 때 나갈 수 있는 것,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나는 부정적인 부분들에 줄곧 관심을 할애 해 왔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죄다 내가 이루고 싶었던 것들을 이뤘다.

1. 한국계 회사, 교민사회를 벗어나서 현지회사 그것도 현지 굴지의 대기업에서 정직원으로 근무한 경험

 

2. 4차 산업혁명시대에 접어든 작금, 가장 전망 좋다는 IT부서로 옮겨 올 수 있었음

 

3. 한 조직 내에서 3개의 서로 다른 팀에서 지내며 근무기간 내 조직에 대한 시각을 다양화, 다각화 할 수 있었음

 

4. 프로젝트매니지먼트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경험 할 수 있었음

 

5. 지금껏 거쳐온 일들을 통하여 내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랑 어째서 안맞고 어긋나고 힘들고 괴로웠는지가 명확해졌음

 

6. 이 세개의 팀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제일 국적 구성이 다양한 팀에서 근무 해 볼 수 있었음

 

7. 프로젝트 관련해서 팀원들과 출장도 비록 같은 나라이긴 했지만 2번이나 다녀올 수 있었음

 

8. 업무평가시 늘 개인 목표달성은 100프로를 넘기며 좋은 평가를 받았음

 

9. 작년 연말에는 연봉인상 동결로 인해 임금 인상이 안 된 대신에 열심히 일한 대가로 특별 보너스를 지급받았음

 

10. 올해에는 대부분 물가상승률에 따른 2퍼센트 정도의 연봉인상만을 받는데 특별히 더 많은 퍼센트로 드디어 급여가 올라가는 것도 경험하게 됨

 

이만하면 되었다.

정말로 분에 넘치게 많이 경험하고 많이 배울 수 있어 감사하다.

안좋았고 서러웠고 내게 불리했고 슬펐고 분노했던 부분들을 다 걷어내고 보니 내가 그동안 꽤 많이 발전 해 왔다는 것이 드러났다.


사실 어떻게하면 퇴사 이야기를 잘 하고 최대한 퇴사 사유에 대해 가타부타 왈가왈부 없이 깔끔하고 멋지게 영광스럽게 나올 수 있을까를 놓고 여전히 고민중이다.

그 가운데 많이 의지하고 배울점 많은 지인분이 내게 이런 조언을 해 주었다.

비록 나를 조금 낮추는 듯 보이더라도 그들을 높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해주고 나오면 어떨까요?

나는 어떻게하면 거짓말 안하고 최대한 솔직하게 말할까를 놓고 고민했었다. 다른 핑계 대면서 나가면 정직하지 못한거니 내가 어째서 구체적으로 어떤게 도저히 안되어서 연봉도 올려주겠다고 하는 마당에 기어이 나가겠다고 하는지에대해 또 구구절절 다 읊을 생각을 했었다. 오직 나만을 생각한것이다. 나혼자 정직하겠다고, 나혼자 정당하겠다고.

그런데 내가 그렇게 말했다 하더라도, 나의 정직함 솔직함에서 했던 진실이 정작 그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수도 있고 되려 그로인해 그들이 상처를 입거나 더 고까운 마음으로 나를 마지막까지 안좋게 기억하게 될수도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었다.

그들을 높여주는 방식으로는, 일단 그들의 입장에서 수긍하기 좋게 선한 의도를 가지고 누가 들어도 상황과 맥락을 생각 해 봤을 때 이해하기 쉬운 이유를 말해보는 게 어떻겠어요?

진실여부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그들이라면 어떤 말을 들었을때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렇게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가겠다는 나의 의사표현을 그래도 수긍할 수 있을까?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조언.

어차피 내가 생각하는 방식, 나의 성향, 특히 직장생활 조직생활 하면서 자꾸만 어긋났던 부분들을 계속 조직생활 직장생활만을 해온 사람들에게 곧이곧대로 말한다 한들 결국 더 손해보는 쪽은 내가 될수도 있다는 말.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이 그동안 잘해주었던 점들에 대해 충분히 피력해주고 감사를 표해주고 최대한 나이스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방향으로 놓고 생각해볼 것. 나를 낮춘다는 것은 저자세로 나가듯이 낮추라는 것이 아니라 내 욕망, 내가 생각하기에 옳다고 믿는 것들을 잠시 양보하고 거기서 한 발 물러나서 조금 더 서로에게 win-win 될 수 있고 여러가지 충격들을 완화 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서 최대한 지혜롭게 처신하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제일 짜증났던 것은 노티스 기간이 3개월인데 마지막 남은 한달 휴가처리 안되면 어쩌지 하면서 또 시나리오 틀어질까봐 불안해하는 마음이 가시지 않는 것이었다. 거기에 대해서도 그분이 이렇게 말해주셨다.

우리가 참 많은 것들을 컨트롤하고 싶어하죠. 특히 시간에 대해서 심해요. 그런데 우리가 당장 우리 목숨도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지 전혀 알 수 없고, 하느님께서 마음만 먹으면 한번에 모든 것을 다 끝내실 수도 있는데 계속해서 매일 매일 우리 새로운 시간을 얻어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실 굉장히 적고 우리가 손 댈 수 있는 시간도 너무 제한적이에요. 그 마지막 한 달 어떻게 될까 말까를 놓고 지금 고민하는 것도 어찌보면 굉장히 부질 없는 일일수도 있어요. 하루 하루 주어진 시간을 최선 다해서 살아가다보면 미래의 시간들에 대해서 그 시간을 주관하시는 분이 다 알아서 가장 좋은 방식으로 처리 하실거에요.

여기에서 나는 항복하고 말았다.

내가 얼마나 모든 것을 다 손아귀에 쥐고서 전전긍긍하며 내 마음대로 뜻대로 하려고 버둥거리고 있었는지가 드러났다. 어쩌면 같은 말을 해도 저렇게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너무너무 고마웠다. 나라면 누군가에게 그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에 대해서 저정도로 말 해 줄 수 없었을 것 같다.

'내가 또 지금 영역을 침해하려고 하고 있구나.'

'내가 내 직분에 충실하지 못하고 남의 직분을 넘보면서 그것을 내 것인냥 마음대로 처리하려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으로 돌아와서 최대한 충실하게 지혜롭게 주어진 시간들을 보내도록 해보자.'

이제서야 겨우 마음이 여기까지 정리가 된다.

다시 맞이할 월요일을 앞두고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한 주를 임해야 할지 그리고 그에 필요한 지혜를 구해야겠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길은 너무나도 어렵다.

한고비씩 넘겨가면서 나무에 테가 늘어나듯이 내 지혜의 테도 점점 늘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루카 복음 18장 14절>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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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고민] | D-21 | 이 시국에 외국에서 퇴사해보려고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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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08.04.2021​오늘 오후 프로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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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프로젝트 예산 스프레드 시트 업데이트 관련해서 프로젝트매니저와 통화를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던 중에 그가 물었다.

요 근래들어 너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던 거 같아.
뭐 특별히 애로사항이나 일과 관련해서 별일 없는거야?



그 말에 나는 특별한 것은 아직 없다는 식으로 애둘러말했다.
내가 지금으로부터 한 달여 뒤 퇴사를 이야기 할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오늘 그런식으로는 차마 이야기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다. 엄밀히 말해, 나는 아직까지 퇴사 유예기간을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프로젝트 롤아웃 일정들 관련해서 거기 직접 참여도 안하면서 그냥 일정만 잡아서 아웃룩 캘린더로 포워딩 해주는 것좀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그 업무가 나에게 온 이유를 이해하지만 기계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거기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이 직접 보내는 것이 컨트롤이 더 가능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업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고 그는 그러면 각 롤아웃 담당자가 직접 하게 하도록 얼라인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다.
한달여 뒤, 마침내 회사를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말을 전달 할 때, 나는 뭐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솔직 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말 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어떻게 그만둘지 뭐라고 말할지를 놓고 이토록 염려하는 걸까? 내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타인의 반응을 염려하는 것일테다. 그것이 불안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내 평판이 안좋아질까 안그래도 나간다는 마당에 마지막 남은 이미지라도 조금 쇄신해보고자 하는 저열한 욕구와 그런 어색하고 불편할 상황을 조금이라도 모면해보려는 몸짓이겠지.

 


 

결국 일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모든 일들이 아무런 잘못이 없었고 그저 그 일들에 내가 거쳐가며 불협화음이 들었던 것이 모두 나로인해 일어난 일이었다는 것이 빼도박도 못하게 명백해졌다.
한가지 과거와 차이점이 있다면, 더이상 그로 인해 나 자신을 힐난하거나 무조건적으로 자책하지 않고 되려 평온한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에고를 버리면 이 지점이 받아들여지면서 자유해짐을 느꼈다.

고맙지 않은 일이 없었으며 나의 기대하는 심리와 내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나 자신의 지난날들의 그런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내렸던 모든 선택들의 결과이다.



내가 계속 타인에게, 어떤 일에 기대하게되는 이유도 이제는 명확해졌다.
이유는 결핍 때문이다. 스스로의 마음에 발생한 동공결절로 인하여 그 부족함과 헛헛함을 매우려고 계속 헛된 것들을 붙들고 채우고 쓸어 담으려고 했다. 그리고 자주 매달렸고 전전긍긍했으며, 사람들에게, 일자리에 과도한 것들을 기대했다. 그리고 대게 그런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고 나는 매번 괴로웠고 분노했다. 
자기확신이 없으니 자꾸 눈치보며 동의를 구하게되었고, 스스로의 확신 없는 불안함을 매우기 위하여 입증하려고 했고 타인의 지지를 기대했으며 거의 열이면 열 충족되지 않은 기대로 인한 좌절감은 나의 자존감을 좀먹게했다. 관계에서도 나를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했고 그 모든 것들은 오로지 내가 스스로에게 찾아온 결핍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결핍을 매우기 위해서는 결단을 내려야한다.
결핍감을 끊겠다는 결단이 아니다. 결핍감은 끊겠다고 하여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핍을 해소하려면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떳떳하고 당당한 방식대로 계속 살아가면서 주체적이고 솔직하게 인생을 꾸려가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주변 눈치 보고, 또 그게 잘 될지 안될지 불안하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해소한답시고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막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이 거기에 동의해주는지 아닌지, 그들의 미묘한 표정변화에 끄달리고 좌절하고 모멸감을 느끼고, 실재로 그들은 나에게 그런 감정을 줄 의도를 한 것도 아닐텐데도 내가 스스로 그렇게 받아들임으로써 괴로움을 만들어갔던 것 같다.

인간에게, 그리고 그 인간들이 만들어놓고 인간들을 모아서 일을 하도록 시킨 직장에 알량한 직급에, 업무에 목을 매고 그들로부터 어떤 유의미함을 반드시 얻고야 말겠다는 그런 허황됨을 버리겠다는 바로 이 결단이 필요하다.


퇴사를 하고싶어. 할까 말까? 하고나서 뭐하지?
엉엉엉 --- 할게 없어 그래서 두려워 엉엉엉--- 나좀 안아줘 엉엉엉--- 달래줘 --- 왜 날 안달래줘? 이 나쁜.. 이런식의 패턴들. 하도 오랫동안 이렇게 살아와서 단박에 끊기조차 어렵게 질기고 질긴 내 악습.

 


 

자꾸 피하려들고 각종 핑계를 대서 결핍에 대한 자기합리화를 시키려 했던 이유도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이런 행동들을 하며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은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을 내렸을때 발생할지도 모를 껄끄럽고 불편하고 어색할지도 모를 결과라는 값을 치르지 않고 지나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나는 더 불안하고 조급하고 화나고 어색해졌고 슬퍼졌다.

칼 구스타프 융은 이렇게 말했다.

신경증은 반드시 겪어야 할 고통을 회피한 결과다.

 

또한 이렇게도 말했다.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으면, 무의식이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되는데,
우리는 이것을 두고 '운명'이라고 부른다.


내 내면에 깔려있는 결핍으로 인한 파생물들을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고 제대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나의 병든 내면은 나의 삶을 잠식해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고싶지 않다.

 

그렇다고 사람들은 아무 필요 없어, 세상적인 것들은 다 소용없으니 그들을 믿지마! 라고 돌아서 앉아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서로 너나 할 것 없이 유한하고 흠 많은 인간들에게 어떤 숭고하고 대단한 무언가를 목매고 그들의 인정과 동의를 받는 것에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래봤자 그들도 다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찬 존재들이고 그 존재들의 집합이며 그런 곳에서 그런 인간들의 머리로 만들어낸 일들에 지나지 않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폄하시키고 대충 될대로 되라 식으로 임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내 인생을 내맡겨 버리는 것도 좋지 않다.


너희는 더 이상 인간에게 의지하지 마라.
코에 숨이 붙어 있을 뿐 무슨 가치가 있느냐?

<이사야서 2장 22절>

 

 

퇴사를 결심하는 것은 사실 둘째 문제일지도 모른다.
진짜로 내려야 할 결단은 결핍과 열등감, 충족되지 않은 공허함에 무력해지더라도 반드시 거기서 벗어나겠다는 굳은 의지를 되찾는 것이다. 그래야 퇴사를 준비하는 지금에도, 퇴사를 하고 난 뒤의 시간들 속에서도, 앞으로 다른 무엇을 하며 살아가게 될 나의 미래에도 나는 그 무엇에 함부로 의지하지 않고 내 삶을 지어가며 살아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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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고민] | D-22 | 이 시국에 외국에서 퇴사해보려고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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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07.04.2021

 


역병은 지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세상은 계속 돌아간다.

재택근무도 계속된다. 그와 함께 세상이 돌아가는 기분이다.

회사에서 전직원 대상 공지메일이 내려왔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추후 공지가 있을 때 가지 계속 재택근무를 유지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제 이곳은 3차유행에 사실상 접어들었다고 봐도 무방하고 나름대로 백신 접종도 시작하고 있고 부분적 봉쇄도 하고 거리두기도 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병원 중환자실들은 만실이라고 한다.

게다가 부활절이 지나간 4월 초순인데도 갑자기 몇일 사이에 날씨가 겨울기온으로 뚝 떨어지면서 눈이 몇일간 내렸다. 어제 밤까지 제법 굵은 함박눈송이가 세찬 바람과 함께 퍼부었는데 오늘은 그 눈이 비가 되어 창문을 오래도록 때렸다. 이런 극심한 일교차로 바이러스가 더 극성을 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한편으로는 악천후로 인해 사람들이 자연히 실내에 있게 되면서 의도치 않게 거리두기를 더욱 활성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이민 나온뒤로 한번도 가지 않았던 서울을 올해에는 진짜 가 볼 수나 있을까.

 

 


늘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도 결단코 무직상태에 놓인 적은 없었던 나인데, 퇴사를 유예기간 씩이나 설정해서 고민하고 있는 그 시점은 왜 하필 이시국인가.

때는 바야흐로 코로나의 시대.

이 시대는 그동안 얼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상상만을 하던 범상치않은 것들이 평범한 일상으로 자리잡아가는 전환점이다.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지는 중이다.

이 시국: 뉴노멀

그토록 평소부터 꿈꿔오던 재택의 가능성이 점점 더 가시화되고 상용화되는 시점이기도 하며 이제 기업들은 아예 코로나와 관계없이 재택을 당연한 하나의 근무조건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커지고있다. 기존에 재택근무 조항이 없던 사업장들도 이번 계기로 사내 IT 인프라를 구축하며 원하든 원치않든 이 새로운 근무환경에 적응해 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스페인같은 나라는 내친김에 주4일 근무를 시험해보자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이제 먹고 살만해진 인간들은 돈보다도 중요한 것들, 바로, 자유가 보장되는 시간이라는 것을 더욱 확보하고자 다양한 궁리들을 하고 있다.

이 시대부터는 어쩌면 내향인들에게 재택근무 등 특정 장소에 매이지 않는 탄력적인 환경이 더 우호적으로 작용 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내가 바라는바였다. 더이상 본성을 구겨넣지 않고 한층 다양한 삶의 선택지를 가져볼 수 있을 바로 그 가능성 말이다.

코로나시대란, 이 시국이란 어찌보면 확장된 가능성의 시대이기도하다.

 


 

나는 내가 인문학을 전공해놓고도 나라는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는 인간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경멸이 공존한다는 것을 두고 오래도록 부끄러워했다. 왜 나는 인간을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걸까? 그리하여 세상을 살면서 타인들과 부대끼며 살아야하는 것에 피로를 느껴버렸다.

척 하는 삶 속의 번아웃

억지로 사랑하는 척 하지 말고, 억지로 부끄러운 것을 안 부끄러운 척 하지도 말고 그냥 이런 나의 구석도 받아들여서 살고싶다. 이 유예기간을 가지면서 틈틈이 써내려간 글들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보며 느낀점은 나의 고난은 나의 인간됨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인간이 아니었더라면 전혀 다른 삶이 펼쳐졌을텐데. 나는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사람들이 구축해놓은 모든 것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사실 어떤 노력도 기울이고 싶지 않았다. 그 뻣뻣함으로 인하여 나는 과거에도 그랬듯 자주 오해받을 것이며 또한 자주 슬플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들을 마음 속으로는 좋아하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채 하려는 나같은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많고 하기 싫은 것들이 너무 많고 싫은 사람들이 너무 많고 자꾸만 사소하게 거슬리고 그래서 늘 괴로웠던 것이다. 더욱이 기존에 해왔던 일들, 내가 내 자신을 부양해내느라 거쳤던 일들은 유난히도 사람들 사이에서 보내야 할 부분들이 많았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것을 막아낼 재간 없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자꾸만 스스로를 더 미워했다. 그러느라 주변의 관계에도 고스란히 반영이 되어 어긋남과 균열이 생겼던 것이다. 타인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들 보기에 내가 얼마나 고까웠을까.

 

자꾸만 억지로 맞추고 고치지 말고 딱 한번쯤은 나 생긴대로 하면서 살고싶다!!

여러명이 사무실 공유하고 서로 눈치봐가면서 그러지 않고, 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대 귀퉁이에서 일을 하든 점심을 만들면서 이메일을 보내든 일만 해낼 수 있다면 돈을 적게 벌더라도 그게 더 나을 것 같다. 보고싶지 않은 사람을 보며 살기위한 삶의 성숙도를 기르자 와 같은 종류의 자기개발 워크숍, 무슨 커뮤니케이션 트레이닝 다 쥐뿔 집어치우라고 하라지. 솔직히 말해서 이제 우리 알지 않아? 그런걸로는 소용없다는 것. 이제 비로소 이 시대에 싫은거 억지로 하면서 에너지 낭비 하는 대신에 잘 맞는 거 하면서 능률을 올리는 게 더욱 가능해 질 모양이라 가슴 속에서 두방망이질을 친다. 사람들이 역병으로 죽어나가는데 나는 또 그와중에 내게 유리할 수 있을 상황이 점점 만들어져가는 것 같아 희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내가 가장 경멸하는 인간은 나 자신이다.

 


얼렁뚱땅 넘어가서 흐지부지 끝내지 말고, 매듭을 짓기로 했으면 확실해지자.

내가 지냈던 시간에 대한 예의를 다하자. 고마운 시간이지 않았던가.

이런 나에게 노동의 기회를 주었고, 이런 내가 나를 자립 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이런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욱 잘

깨닫게 해 주었기에 얻어 갈 것만 채워도 이미 광주리는 한가득이다.

 

목표 시나리오: 5월 퇴사 통보, 최장 8월 말 근로계약 완전 종료

마음을 먹었다.

예상시나리오는 5월 중 퇴사 통보로 결국 기존의 생각에 큰 변함이 없을 것 같다.

현재 근로계약서에 명시된대로 퇴사 후 노티스 기간은 상호간 3개월로 3개월째 되는 달의 말일까지이다.

그러면 5월 중에 퇴사를 이야기하고 5월 31일까지 사표를 제출하면 8월 31일까지 3개월의 기간이 생긴다. 그 중에서 지금 바라는 바로는 마지막 달 한 달간은 남은 연차를 다 넣어 쓰고 오는 것이다.

만일 그냥 휴가 돈으로 처리할테니 끝까지 일하다 나가라도 배짱을 부리면 어떻게 하지에 대한 대처법도 생각해 둬야한다. 그래도 거짓말로 둘러대면서 나오고 싶지는 않다. 왠지 나는 자꾸만 지금도 머릿속으로 거짓말로 둘러댈 알리바이를 짜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해서 나오고나면 나는 조금도 발전하지 못하고 과거를 답습하는 꼴 밖에는 안 될 것 같다.

진실을 가지고 당당하게 자기 원하는바를 주장하고 관철해내는 성공경험을 가져야 내가 다음단계로 나아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상담사 선생님이 내게 해 준 말이다.

남들이 뭐라고 할지, 남들에게 뭐라고 말할지에 대해 걱정하는 것과 그런 말들은

모두 다 연기처럼 사라질 허상들일 뿐.

뭐라고 통보를 할까를 놓고 고민하고 있고 주변사람들이 뭐라고들 할까를 놓고 걱정하고 있지만, 이미 한 근로자가 퇴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와 그 주변인들간의 결론이 아닐까.

퇴사를 하면 가능한 방법을 찾아 한두달 정도 서울에 다녀오고싶다.

이 시나리오를 염두해서 생존자금의 예산도 짜보고, 추후 배워 볼 강좌에 대한 문의도 하고 자격증 같은 것도 하나 정도 공부해서 따두고 해 볼 생각이다. 이걸 바탕으로 대강의 로드맵을 짜 보는 것이다.

유일한 걱정이 있다면, 뭐든 배우라면 배우겠고 돈도 절약해가며 연명하라 하면 저축 해 둔 것과 받게 될 실업급여를 포함하여 살아가겠지만... 역시 다시 다른 생계유지를 위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나의 인간성으로 인하여 또다시 같은 종류의 고난을 겪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조금 유연해질 수 있을까?

그리고 유연해 지되, 너무 나를 구겨넣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스스로 당당하고 편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서 거기서 생계유지를 위한 활동을 해 볼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을 확보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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