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28.0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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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고민] | D-2 | 이 시국에 외국에서 퇴사해보려고 합니다만

[BY Birkenwald]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28.0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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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고민] | D-2 | 이 시국에 외국에서 퇴사해보려고 합니다만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28.04.2021 4월의 마지막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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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마지막 주간이다.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이번 주의 첫 3일간은 정말 들어오는 이메일도 거의 없고 미팅도 없고 그래서 굉장히 나태한채로 보냈다. 막상 4월이 간다고 생각하니 시원섭섭한 기분... 조금 더 솔직하자면 사실 어딘지 굉장히 허무하기도 하다.

5월에는 공휴일도 두개 있고 그중 하나는 하루 연차를 붙여서 긴 주말로 보내려고 한다.

그렇게 휴가 낀 긴 주말을 보내고 온 5월 중순 어느날, 나는 기어이 퇴사 의사를 밝힐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포스팅 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했던 1월 중순 무렵부터 오늘까지, 3개월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생각만큼 매일매일 쓰지 못했고 양질의 텍스트를 생산해내지도 못했다. 그래도 이렇게 포스팅을 할 수 있어서, 그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면 갈수록 이 생각에 더욱 무게가 실려간다. 이로써, 나는 1월부터 4월까지를 사는 동안 어떤 일들을 겪었고, 그때마다 어떤 심정인지를 기록 할 수 있었고, 언제든지 다시 그 기억을 소환해 낼 수 있게 되었고, 성찰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대안적인 계획을 마련해내지 못했다. 사람들은 모두들 그렇게 조언했다. 뭐든 할 것을 정해놓고 나가라고 말이다. 그 할 것을 지금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상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이 퇴사유예기간을 제대로 보내는 것에 실패 한 것이 되는 걸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 가닥잡히지 않았다 뿐이지 마음가짐은 차분해진 상태다.

차이점이 있다면 과거에는 온 동네방네 떠벌리며 마음은 차분하다고 입으로는 말하고 있으면서도 내심은 불안한 심리를 타파해 볼 심산으로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차분한 상태인지를 설명하려 들었을테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특히 올해는 기존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싶다.

말로만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떠벌리고, 주변 사람들을 붙들고 결코 실행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말로만 매꾸려고 하고 있는 찌질한 모습을 공연하든 전시하듯 하지 않는 것이다. 가급적이면 스스로의 고민과 사색 끝에 결론을 내렸으면, 그것을 이행해 낼 것.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이행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할 결과에 대해서도 스스로 책임을 지고 회피하지 않는 것이다. 누구에게 기대어 물타기 하듯이 지나가려는 꼼수도 쓰지 말 것이며, 주체적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며 책임지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겪어내는 것이다. 아주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말이다.


 

지난 달 중순~말엽으로 넘어갈 즈음 기존에 해왔던 일들을 바탕으로 지원 해 봄직하다고 생각해서 지원해 놓은 기업에서 서류탈락 통보 메일을 받았다.

어쩐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가지만 소식이 없길래 탈락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확답을 받고싶었다. 오늘 오전 휴대폰 진동이 한 번 묵직하게 울렸고, 이메일이 들어왔으며 내용을 확인했고 그것으로 깔끔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퇴사유예기간이라고 설정한 4월 말까지의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그 사이 시도했던 것들 중에 내 몫이 되지 않을 예정이었던 것들이 모조리 정리 된 기분이다. 홀가분하다. 괜히 미련을 가지고 기존에 해왔던 일들의 연장선상이 될 것이 자명한 일들을 다시 이어서 하면서 언젠가 꼭 같은 지점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또 그만두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악순환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다.

남은 이틀, 내일과 모레를 잘 보내고 4월을 마무리 한 후 5월이 오면 마음 가짐을 다시 잘 잡아봐야겠다.

심리상담사 선생님도 미션으로 내 준 과제이다:

 

충분히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마침표를 찍자.
콤마를 찍으면서 뒤에 부연설명을 하거나 이중 삼중의 생각이 일어나는 일을 방지하자.
마침표를 제대로 찍을 수 없을 것 같으면, 다시 콤마를 찍으며 군말이 생겨날 것 같으면 확실해질때까지 결정을 유보할 것.
이미 결정이 내려지고 난 뒤라면, 번복이나 후회 또는 미련 등을 갖지 않고 그래도 앞만 보고 새로이 도래할 내일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나갈 것.

 

이미 결정 난 일에 대해서는 더이상 마음쓰지 않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리고 그 결정을 바탕으로 앞으로 다가올 나날들에 필요한 일들을 준비해 나가는 심정으로 지내고 싶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가끔 성찰을 하고 과거의 일을 잠시 참조했다가 다시 현재로 자연스럽게 돌아올 수 있는 수준으로 해야한다. 과거의 망령에 붙들려 살다가는 이도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확신이 없고 자주 불안한 사람으로 성장한 이면에는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겠지만, 앞으로는 변화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일상 속에서 크고작은 결정들을 내리는 순간들마다 의식적으로 마음 먹은 것은 스스로 결정 내리고 그것을 실행하고 앞을 보고 두렵더라도 꿋꿋하게 걸어나가는 연습을 계속해서 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위안이 필요한 날에는.. 종종 셀프케어 시간을 갖기도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맛있는 디저트류를 구워본다던지, 거품입욕제를 풀은 욕조에 들어앉아서 목욕을 한다던지...

 

몇일 전 다 잘 밤에 만들었던 에그타르트. 포르투갈 리스본에 여행 갔을 때 오리지널 "파스테이스 데 나타 (pasteis de nata)"를 먹어본 뒤 그 맛을 잊지 못해 어떻게든 가능한 재료로 구현해 본다고 몇 번 시도는 해봤더랬다.

 

반죽은 슈퍼마켓에서 파는 패스츄리 생지를 사서 해결했다. 머핀틀에 맞춘 크기로 자른 뒤 계란 노른자 4개넣고 생크림과 우유 적당량을 넣고 바닐라액스트렉트와 설탕 조금 넣은 필링 채워 구워보았다. 점박이 무늬도 잘 그을려 나와주었고 한 김 식혀 베어무니 바사삭 하면서도 필링은 부드러웠다.

얼마 전 아마존에서 주문한 욕조 거치대를 장착한 모습.

저 가운데 있는 회색 부분을 펼치면 아이패드나 책도 올려서 볼 수 있고 물컵이나 향초 같은 것을 얹을 수 있는 홈이 따로 마련 되어 있고 너비 조절도 된다.

지금은 이렇게 쓰고 이다음에 언젠가 조금 더 넓은 욕조를 갖게되면 거기에 딱 맞게 사용 할 수 있을 것 같다.

 

 

 


 

달다구리와 거품목욕도 심신의 긴장을 풀어주지만 역시 말씀만한것이 없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는 구절처럼 말씀 섭취를 하면서 현실에서의 중압감, 불안감,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해야겠다. 이것 역시 과거와는 달라진 부분이다. 올해부터는 매일 매일 말씀을 자주 읽도록 하고 그리고 읽는데서 그치지 않고 삶 속에 적용해보도록 해야겠다.

애용하고 있는 모바일 앱 "가톨릭성경" 은 형광펜 기능을 사용 할 때 색상을 다양하게 설정 할 수 있어서 더욱 좋은 것 같다.

 

 

야고보서 4장 13절부터 17절까지 말씀을 읽고 많은 생각에 잠겼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구구절절 내 얘기 아닌 것이 없을 정도로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지만 이 대목은 정말로 딱 나를 겨냥한 이야기 같았다.

오늘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도 모자랄 판에, 내일 일에 대해 걱정하고 지금으로부터 일년 뒤에 뭘 하고 삼년 뒤에 뭘 할지를 점치듯이 궁리하며 다 사라져버릴 허상을 붙들어매고 있는 판국이다.

이것이야말로 엄청난 교만한 허세인가.

 

 

 

 

 

 

쓸데없는 것들을 붙드는 대신에 나처럼 소심한 쫄보는 붙들어 매려거든 특히 시편 56장 12절의 말씀을 붙드는 것을 택해야 할 것 같다.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너나 나나 다 고맛고맛한 인간들일 따름인데 무엇이 그리 두렵고 눈치보이고 설설 기면서 그렇게 살아왔는가 싶다.

 

쫄아들고 겁먹고 소심해지는 순간이 오는 것은 다 내가 사람을 의지하고 아무 실체 없고 실속 없는 것들을 의지하고 섬겨온 까닭일 것이다.

 

의지처를 제대로 분명히 바르게 세우면 한갓 사람이, 세상이 나에게 무엇을 어떻게 할 수는 없음도 명확 해 질 것이다.

 

 

 


이제 스스로 설정한 시간은 점점 끝을 향해 지나가고 앞으로 한 달 정도 더 마음을 정리해서 최종 결정을 볼 일만을 남겨두고 있다.

주체적이고 성숙한 어른답게 스스로 내린 결정을 존중해주고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함에 두려워하며 삶을 좀먹지 말고 어깨 펴고 당당히 앞날을 내다보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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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23.04.2021​종종 헤드헌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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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23.04.2021


 

종종 헤드헌터들에게 메시지가 온다.

그럴때마다 일순간 잠시 두근거리다가 그들이 보내온 내용을 읽어보면, 나와 해당사항 없는 포지션들인 경우가 많아서 다시 설렘이 사라져버리곤 한다.

몇번은 그런식으로 연락 온 헤드헌터들과 통화를 해본 적도 있었고, 그들이 소개해 준 포지션에 실재로 지원을 해서 해당 회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잘 안되었다. 그냥 내가 그 포지션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었고, 또 그럼과 동시에 그 포지션이 나에게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새로 지원을 해보려고 채용공고들을 두루 살펴보아도 아무리 아무리 제일 마지막 페이지까지 찾아보아도, 그럴듯하고 좋아보이는 자리들은 많고 많지만 지원하고 싶은 일자리는 하나도 없다는 것만을 확인했다. 언제나 자기비난만을 해왔던 과거의 나는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자책을 해왔다.

이건 다 네가 아직 배가 덜고파서 그래.

네가 아직 덜 아쉬워봐서 그래.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넌 왜이렇게 현실감각이 없냐.

네가 지원하고 싶은게 없는게 아니라 저사람들이 너를 뽑기

싫어하는거라는 걸 모르냐?

넌 정말 노답이야. 노답인생.

넌 정말 꼴통이야.

이 등신.

저능아.

네가 이러니까 맨날 직장생활을 못하지.

너같은거 뽑는 직장이 불쌍한거야.

그동안 너때문에 네 동료들과 상사들이 얼마나 싫었겠냐?

넌 쓸모없어.

방구석에서 백수로 늙든 말든 너 알아서 해.

무책임한 인간 같으니라구.

...

...

...

기타등등...

기타등등...

 

그런데 자책을 멈추고 판단중지를 연습해보려고 노력중인 요즘은 좀 다르게 생각해보고싶다.

 

그동안 이런 일들의 이런 점들이 계속 안맞았는데 그 이유는 뭐였을까?

그 이유를 찾았다면, 그게 이 일들을 하면서 개선이 가능한 일일까?

아니라면, 어떤 일들을 하면 그런 점들을 보완 할 수 있을까?

그런 일들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뭐가 있을까?

그 중에서 지금부터라도 시작 해 볼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그래도 안맞으면 어쩌지?

그래도 그럼 그거 선택지에서 지우거나 아니면 잠시 보류해 두고, 계속 다른 것들도 찾아나서보자.

모든 것은 과정 중에 있는 것이니 설령 그게 생각과 다르게 나오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그걸 통해서 뭔가

하나 더 배웠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나아가자.

그리고 계속해서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되물어보기로 했다.

예전에는 내가 저런 자책들을 타인에게까지 죄다 쏟아내면서 자기 학대를 온 동네방네 공연하고 전시했었고 그때마다 타인들이 어쩔줄 몰라하며 나에게 해주었던 말들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들의 말은 가슴에 하나도 와닿지않았다. 특히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고 스스로에게 친절해지라는 말. 그런 말은 씨알조차 먹히지 않았다.

그랬었던 내가 이제는 달라지기로 결심한 만큼, 진정으로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온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되묻고 싶어졌다. 이제서야 비로소.. 진짜 회심이 이루어졌다. 마음을 돌려세우고, 내게 묻는다.

 

그렇게 안맞아하고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이정도라도 유지해 온 것만으로도 스스로 자부심 가져 볼 수는 없는걸까?

그때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라서 그런 일을 그렇게 했었던 것이지 않을까?

지금 알게 된 것들은 그때는 몰랐으니까, 대신 그때 그런 일들을 겪어와서 지금 이렇게 생각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다행스럽지 않아?

 


 

그 일환으로 나는 내가 지금 내 선에서 해 볼 수 있는 것 하나를 작게나마 찾아서 해보기로 하였다.

대단한 것은 아니라지만, 직장을 그만두려고 설정한 퇴사 유예기간도 이제 거의 다 만료되어가는 시점에서, 그래도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것 하나를 실행해보고자 하였다.

어찌어찌하다보니 IT부서로 오게되었고 그 중에서도 IT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를 경험 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고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존에 잘 알려진 클래식한 Waterfall 모델의 프로젝트 프로세스는 이미 몇년 전 교육을 받고 자격증도 하나 가지고 있고 실제로 워터폴 모델의 프로젝트들로 일 해 보았다. 하지만 정말 테크니컬한 IT분야에서는 클래식한 모델 보다는 보다 빠르고 언제나 변화하고 시간이 지남에따라 점점 확장되고 수정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애자일(agile)한 프로세스로 일을 하고 있다.

하여 생각해 낸 것은 Agile Product Development 를 매니징하는 프레임워크인 스크럼 (Scrum) 프로세스를 공부해보고 하는김에 자격증까지 하나를 따보기로 하였다. 스크럼 자격증은 이미 여러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Professional Scrum Master I (PSM I) 이라는 자격증을 목표로 일주일 남짓 인텐시브하게 준비를 해보기로 했다.

바이블이라고 불리우는 <Scrum Guide> 라는 14페이지 정도되는 개념서를 보고 또 무료로 구할 수 있는 스크럼 설명서 같은 리소스들도 구해서 읽고 기출문제들도 계속해서 풀어나갔다. 그리고 감을 찾기 위해 화요일 저녁에 응시한 첫 시험에서 합격 커트라인 85% 중 83.5%, 즉 1문제를 더 틀리는 바람에 패스하지 못하였다. 생각보다 편하게 응시할 수 있고 아주 난이도가 어려운 시험이 아니라 해서 잔꾀를 써서 문제만 달달 외우는 식으로 공부했던 것이 결정적인 실패 요인이었다.

그래서 이틀간 좀더 튜토리얼 영상도 보고 개념서를 한번 더 정독하고 약한 문제들 위주로 보는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 그 결과 다시 응시했을 때 90% 로 합격할 수 있었다. 여전히 만점은 받지 못하였지만 지난 번 시험때 약했던 부분들은 큰폭으로 보완 된 것이 보였다.

내가 스크럼마스터로 일을 할 것도 아니고 프로덕트 오너가 될 것도 아니라지만, 추후 IT 테크 분야로 관련 기술을 배워서 진출 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이고, 사람일은 어찌 될지 모르니 배워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이런 작은 성취경험 하나하나가 쌓여서 자기 비난을 그만두고 조금 더 생산적이고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운전대를 돌려서 방향을 틀어가는게 중요하다.

클래식한 워터폴 모델과 애자일한 스크럼 방식의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두개 다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는 all-rounded project management knowledge 를 가졌다고 스스로를 마케팅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스크럼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되면서, 이 프로세스가 (물론 현실에서는 교과서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들도 많을 것이다) 생각을 명료하고 간단하게 해서 최대의 가치를 창출하도록 설계되었고, 팀원간의 수평적이고 원활한 피드백을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모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점이 중요하다. 막상 내가 추후에 조금 더 테크니컬한 일을 하게 된다고 할 시에 그 분야가 대체로 어떤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하는지를 미리 아는 것은 도움이 되는 일이다. 제아무리 각종 신기술들을 배우고 마스터해서 취업을 했다고 한들, 막상 마주한 현실 속에서 해당 분야의 사람들이 어떤 멘탈리티로 일하고 어떤 프로세스로 일하는지에 대한 사전 이해 없이 덤벼들었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앞으로도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면서 잘 되지 않고 생각보다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고 이게 맞나 틀리나 자꾸 의심이 드는 순간이 찾아 올 것이다. 그때마다 다시 과거의 자책하고 비난하면서 이도저도 안되는 어둠의 수렁으로 빠지지 않고 다시 솟아오르도록 늘 깨어있으면서 의식적으로 삶을 살아가야겠다.

벌써 이 다음으로는 어떤 것들을 찾아서 해볼지 검색도 해 볼 수 있게 되었고 계획도 그에 맞춰서 조금씩 구체화 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이 페이스대로라면 이번달이 지나고 언제 퇴사를 통보하고 인수인계 기간을 거치더라도 그와 평행선상에서 나는 나대로 내선에서 준비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준비하며 이 시간을 생산적으로 사용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희망을 갖고싶다.

의식적으로 깨어있기.

요즘 하도 화두가 되고 있다는 그 "마인드풀니스", "알아차리기", "끌어당김" 이런 모든 것들이 결국 의식적으로 깨어있으면서 무의식의 악습에 끄달려가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이끌어가라는 말이라는게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내일 또 이런 마음가짐이 무너지고 힘들어진다 하더라도 내일 모레 다시 일어서면서 그렇게 살아가고싶다.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21.04.2021

 


 

[퇴사고민] | D-8 | 이 시국에 외국에서 퇴사해보려고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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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21.04.2021​이제 내가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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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노래를 부르던 4월 말까지 8일 남았다.

미쳤다는 말 밖에는 안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담담하다.

그리고 하나도 미치지 않았다.

마음이 이래도 되나 싶을만큼 덤덤해진다.

어제 저녁, 빨래를 하려고 세탁기를 설치해둔 지하 세탁실로 내려갔다 오면서 우편함을 체크했다. 두 개의 우편물이 와 있었다. 하나는 상사가 저번에 말한대로 급여인상에 관한 회사 인사부에서 온 우편이었고, 다른 하나는 혹시라도 퇴사 후 어떤 식으로든 자영업을 하게 될 것에 대비하여 시청에 1인사업자 등록을 신청한 것에 대한 등록확인증이었다.

상반되는 성격의 우편물이 들어온 것이다.

내가 떠나려고 하는 일터에서는 급여를 올려주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혹시라도 떠난 뒤에 어떻든 쓰임이 될까봐 신청해 놓은 것도 거절당하지 않고 발급이 된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런 기분이 들었다.

문은 생각보다 여러개일수있고, 문 하나가 닫히면 또 다른 문도 열릴 수 있고 그 문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할수도 있다는 것. 그 다양성에의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 내 머리로는, 내가 여지껏 경험 해 온 것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고 가늠 할 수 없는 것들이 차곡차곡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것 말이다. 하여, 무척 두렵고 불안하지만 내가 2015년도 1월 초에 이민가방과 수트케이스에 배낭을 매고 혈혈단신으로 이 땅에 도착했던 그때만큼 두렵고 불안할까 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마주하게 될 삶 앞에 당당히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떨치지 못했던 생각, 바로 "내가 또 도망치려고 하고 있는 걸까?" 에 대해서도 서서히 결말을 지어야겠다는 그 "결말"에의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내가 마주하기 싫은 불안으로부터 계속 도망쳐왔는데 도망생활중에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한국을 떠나왔듯이, 내가 부모와 형제와 거기서의 모든 생활과 친구들과 모든 것들을 다 뒤로하고 와버린것이, 여기에 와서도 이리저리 표류한것이, 이제 또 부서까지 바꿔가며 4년 반정도를 끈덕지게 버텨온 이 곳을 나가려는 생각을 품는 것이 모두 도망치는 것, 도망의 역사 - 그래, 도망이라면 도망 맞는 것 같다.

이 세상은 도망치는 행위를 싫어한다.

도망치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고 외면하고 회피하는 것이고 그것은 미성숙한 것이며 끈기없고 형편없는 것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는것이 싫어서 더욱 더 회피에 회피만을 거듭 해 온 것 같다.

내가 도망치려고 해 왔던 것은, 결국 그런 내면의 수치감을 마주하는 것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했던 것 같다. 나를 상처준 사람들,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들, 그런 일들이 일어났던 장소, 공간들, 내가 거기서 겪었던 암울했던 시간들, 기억들, 그 시간들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 그 감정의 기억들, 내가 주목받고 싶었는데 주목 못받은 것들, 내가 다 컨트롤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것들, 나를 우습게 본 사람들, 그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지 못한 무능력했던 나자신, 그렇다고 그 능력치를 막 끌어올려서 출세하고 싶었는데 그럴 노력 기울이지 않았던 스스로의 나태함, 그 숱한 자기 비하, 자괴감, 자책감, 실망감들.

이제 내가 여기서마저도 또 도망치고 나서 무언가 다른, 새로운 것을 하게 되면 거기서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을까? 보장 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지금 발 딛은 곳을 떠나서 그 미지의 영역으로 도망을 쳐보고 싶단 말이다. 이것은 심령이 불안한자의 역마살 같은 것일까? 또 그렇다 한들, 그러면 정말로 안되는 걸까?

지금 내가 이렇게 덤덤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덤덤하면 안된다 그래도 된다 이런 법규는 어디에도 없다.

내가 지금 현재 착 가라앉아서 덤덤하면 덤덤한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러는 나에게 대책없이 꼴값 떤다고 할 것이고 더러는 나를 측은하거나 이상한 눈으로 바라 볼 것이다. 더러는 날더러 앞날을 응원한다고 할 것이고 더러는 내가 뭘 하던 말던 아무런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내가 현재 어떤 마음가짐이 드는지, 어떤 상태에 놓이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주체자는 바로 나다.

 


 

근속연수 2년을 꼭 채우는 것이 나는 왜 이토록 힘들었을까, 그리고 왜 그 알량한 2년도 나는 여지껏 제대로 채운 적이 없어서 이제서야 그것을 채워볼것이라고 이토록 생색을 냈던 것일까?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닐 것들을 붙들고서 말이다.

이 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할 92일 정도 전에만 해도 나는 여전히 이런 생각을 끊을 수 없는 나 자신을 자책하고 사람들이 이런 나의 성향을 간파했을까봐 전전긍긍하고 그래서 이렇게 블로그 포스팅이라도 하면서 찌질한 속풀이를 한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지금까지 내 마음을 거쳐갔던 수많은 생각들과 감정들, 수 많은 충동들과 동기들은 다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 그런 감정들 그런 생각들이 들었기 때문에 그것들에 대한 반응으로서 내가 내렸던 모든 행동들(선택, 행위, 말들 등등)이 생겨났던 것이고 그 행동들을 바탕으로 지금껏 겪었던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일들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 이렇게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순간에 이정도로 마음을 정리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든 것들이 다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서 하나의 커다란 테피스트리를 직조해오고 있었다.

그래, 나는 자주 불안했고, 싫은 것들도 많았고 그래서 자주 도망친다.

그렇게 도망쳐온것 치고는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걸 보면 그리 나쁜 도망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나는 더러 도망도 치고 그러면서 살아 갈 것 같다.

인간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지 않나 - 그런 맥락에서 보면 내 이런 성향이 드라마틱하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더러는 날더러 포기하고 도망치는 사람이라고 비난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어떤 말을 듣더라도 내가 내 도망에 떳떳하고 내 도망으로 따르는 모든 결과들을 그 모든 값들을 다 치러내면서 내 삶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누구도 원망않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 삶도 그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두고 또 누군가는 어디서 자기합리화냐며 또 비난할지도 모른다.

비난은 내 삶이 지속되는 한 끊이지 않을것이다.

 

나는 결심하기로 했다.

나는, 앞으로, 내 삶에 어떤 상황이 닥치고 내가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되고 어떤 말들을 듣게 되더라도, 심지어 엄청난 비난을 받게된다 하더라도, 나 자신만은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나는 그 모든 상황들에서 무엇이든 한가지 이상은 배워갈것이며 나만의 인생 노하우로 적금들듯이 모아갈 것이다.

그러면 세상을 원망할 것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할 것도, 나보다 잘난 사람 앞에 주눅 들 일도,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 앞에 은근히 우쭐 할 일도, 그런 모든 적나라한 찌질함을 탑제한 나라는 인간을 경멸할 일도 없어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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