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08.03.2021

 


월요일이다.

주말은 언제나 순간삭제되고 월요일로 타임슬립을 하는 것 같다.


지난 금요일 오후의 업무 목표 설정은 아주 간략하고 형식적으로 끝났다.
급여 인상에 대해서는 인사부로 이미 결제를 올려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어쩌면 돈을 좀 더 받으면서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해서 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든 생각이다.
돈을 더 올려준다고 해도 그냥 그 돈을 안받고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해서 하기 싫다는 것.

이 마음에 솔직해지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것은 양심과 관련된 일이기도 하다.

이런식으로 돈에 길들여지고 돈에 취하면 나중에 더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서 제 때에 끊고 나오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도 들었다.

내가 그간 하고싶다고 생각했던 무슨 하드스킬을 바탕으로 하는 일, 무슨 기획을 하는 일.. 따위.. 전부 다 생각해 봤는데 지금 하는 일이든 그런식의 일이든 모든 것들 다 사실은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다.
속마음은 그게 아니니까.
사실은.
진짜 좋아하는 건 아닌데 먹고살기 위해 이정도면 그래도 다른 거 보다 나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찾아가며 일을 해 온 것이지만 사실 막상 무슨 기획하는 일 무슨 다른 일을 했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회사생활이라는 것에 내가 만족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전히 나는 대안은 없는데, 희안한것은 마음은 편안하다.
그동안 그토록이나 외면하고 왜곡해오고 있던 것을 비로소 인정하는 데서 오는 안도감 같은 걸까?

속마음은, 본심은, 정말 다 아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더 장기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란말이다.

받아들이고,
내려놓자.

우선 그러는데서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05.03.2021


금요일이다.

문득, 이 세상의 많고 많은 직종들 중에서 회사원이라는 노동의 방식에 대해 생각이 한층 더 많아지는 아침을 보냈다. 이 세상에는 수 없이 많은 회사들이 있다. 그 회사들에는 그곳에 고용된 훨씬 더 많은 수의 임직원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을 고용한 기업에서 일하며 거기서 지시받은 일들을 해내고, 스스로 도맡아 어떤 프로젝트들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결국 최종적으로는 일의 결과물은 기업에게로 돌아간다. 그 기업이  가지고 있는 각종 인프라를 동원하여 그들이 열심히 일궈낸 일의 결과물을 구현해내는 일은 아무래도 개인이 하기에는 여전히 많이 어렵기 때문이다.

회사원의 숙명이랄까.
하기사 공장의 블루칼라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하루종일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앞에 서서 작업을 해서 물품들을 생산해내지만 결국 그 완성품들은 그들을 고용한 회사의 몫이다. 회사는 그것들을 판매하고 거기서 얻은 수익 중 일부를 그것들을 생산 해 낸 사람들의 인건비로, 그들의 임금으로 지불 될 것이다. 

이 지점이 나는 이상하게도 조금 슬프다.
그래서 뭐 그게 나쁘다 어떻다가 아니라, 그냥 조금 슬프다.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고 세경을 지급받는다는 것에서 조금 더 체계화되고 조금 더 세련되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갈등론자적인 입장인걸까.

일을 해 주고도 그 일의 완성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점이 슬펐던 것 같다.
그래놓고 그렇게 여기저기에서 남의 일들을 완성시켜주고 그것을 경력으로 쓰면서 어디어디 전문가, 무슨무슨 전문가. 결국 남의 일 완성시켜주기 전문가가 되어서는 더이상 고용을 당할 수 없게 되거나 고용한 회사가 망하면 더는 완성시켜 줄 일감을 주던 그 "남"이 없어져서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마는.

그렇다고 스스로 자기 일을 하자니, 리스크는 너무나도 크다.
은근히 이런 생각마저 든다.
일감을 주면 군말 않고 해 주지는 않을 망정 배은망덕하게시리 회사에서 독립 해 나와서 독자적으로 뭘 하겠다고 나오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 앞에 놓인 미래를 어렵고 위험하게 꼬아놓아야 그들이 다시 그거 무서운 줄을 알고 회사로 기어들어와 머리를 조아리게 될 것이므로 일부로 그렇게 어려운 생태계를 구축 해 놓은 걸까 라는 생각 말이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오늘 오후에는 상사와 이번 년도 업무 목표 설정하는 것을 최종 확정하는 콜이 있다.
이미 상사가 혼자 다 기입 해 놓은 그 템플릿에는 작년도와 토씨하나 안틀리고 똑같은 업무에 한가지로 전혀 안내키는 일이 하나 들어가 있다. 이 조직에서, 이 포지션에서 나의 존재적 한계를 엿보았다.

일단 군말 없이 그러마 하고서 4월이 지나고 5월이 오면 정말로 미련 없이 사표를 내고...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될까.

정말로,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올해 하반기 부터 나는 정말 어떤 모습으로 살 수 있을까.

 


 

퇴사를 한다면, 만일 다른 데로 이직 하지 않고 그냥 그만 두게 될 때에 과연 뭐라고 말하면서 퇴사를 하는게 좋을지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 씩이나 펼쳐가며 우울해했다.
그때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해 준 분이 있는데, 이 말이 너무나도 힘이 되었다.

"머리카락 하나 다침없이 잘 통과하시리라 믿습니다."

어떤 일이 닥칠지라도 머리카락 하나 다침 없이 지나갈 것이라고 믿고싶다.
이 말을 복음서에서 다시 찾았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루카 21:18-19

 

 

어떤 일이 어떻게 펼쳐진다 하더라도 나는 안전할 것이며, 나는 그 어떤 다침 없이 인생의 갖은 시기들을 통과 해 나갈 것이다. 다만 나는 매 순간 인내로써 그 시간을 견뎌 낼 것이며 그리하여 그 견딤 끝에 삶에서 승리하고 싶다. 

삶의 승리는 더 많은 돈을 얻고 더 높은 지위를 얻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갖은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한결같이 살아내는 일을 성취 해 내는 것이다.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07.02.2021


 

밤새 부슬부슬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들렸더랬다.
간밤에도 어김없이 겨울비가 내렸나 하고 창문을 열었더니 세상에 모두 하얗게 눈으로 뒤덮여있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한 눈.
이 지역은 눈이 쌓일정도로 내리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이번에 내린 눈은 종류가 달라보였다.

 

 

거실 창문 블라인드 너머로 보이는 눈덮인 앞집

 

 

간밤에 주차된 차들 위에도 눈이 소복히 쌓여있다.

 

 

 

제설장비 아무것도 없이 층계참을 쓰는데 사용하는 고무빗자루를 들고 나가 현관에 쌓인 부분이라도 대충 정리를 좀 했다. 고작 그거 조금 하는데도 온 등허리 삭신이 쑤시는데 서울에서 지역공무원으로 일하며 몇날 몇일간 제설작업에 동원되었다던 오빠 생각이 났다.
오빠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무리 해도 그따위 빗자루로는 어림도 없어서 포기하고 들어왔다.
재간이 없다.

내일되면 좀 녹아있길 바라며.

 

 


 

하는 것 없이 지나가버린 주말.
새로운 한 주는 어떻게 펼쳐질까?
이제 이 눈이 녹고 겨울도 지나가면, 새 봄이 오면 그때의 내 마음가짐에도 어떤 변화가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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