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07.02.2021


 

밤새 부슬부슬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들렸더랬다.
간밤에도 어김없이 겨울비가 내렸나 하고 창문을 열었더니 세상에 모두 하얗게 눈으로 뒤덮여있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한 눈.
이 지역은 눈이 쌓일정도로 내리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이번에 내린 눈은 종류가 달라보였다.

 

 

거실 창문 블라인드 너머로 보이는 눈덮인 앞집

 

 

간밤에 주차된 차들 위에도 눈이 소복히 쌓여있다.

 

 

 

제설장비 아무것도 없이 층계참을 쓰는데 사용하는 고무빗자루를 들고 나가 현관에 쌓인 부분이라도 대충 정리를 좀 했다. 고작 그거 조금 하는데도 온 등허리 삭신이 쑤시는데 서울에서 지역공무원으로 일하며 몇날 몇일간 제설작업에 동원되었다던 오빠 생각이 났다.
오빠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무리 해도 그따위 빗자루로는 어림도 없어서 포기하고 들어왔다.
재간이 없다.

내일되면 좀 녹아있길 바라며.

 

 


 

하는 것 없이 지나가버린 주말.
새로운 한 주는 어떻게 펼쳐질까?
이제 이 눈이 녹고 겨울도 지나가면, 새 봄이 오면 그때의 내 마음가짐에도 어떤 변화가 오려나.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05.02.2021


 

이렇게 또 한 주가 지나간다.
금요일 저녁.
메신저 프로그램에서 로그아웃을 하고 회사 VPN도 껐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어제 오늘 하기로 했던 예산 트래킹 스프레드시트 리뷰는 무사히 끝났다.
이런 저런 헤드카운트 변경사항 등을 입력하면 그대로 매달 사용해도 괜찮을 것 같다.
프로젝트 매니저가 몇 군데 기입 할 사항들을 기입 하고 마무리 짓겠다고 하였다.
그럼 괜찮다 이제는.

오늘은 미주지역 미니프로젝트 롤아웃을 위해 고용된 컨설턴트와 미주지역 세션 스케줄 관련하여 잠시 콜을 가졌다. 서로 모니터를 셰어하면서 일정과 시간 등을 재입력하는 동안 말이 없어진 틈을 타 내가 먼저 그에게 평소에는 스페인과 영국을 (그는 아일랜드계 영국인으로 스페인에 집이 있고 현재는 런던에서 체류중) 오가며 지내냐고 물으면서 약간의 사담을 하게되었다.

호주, 미국, 일본 등지에서도 직장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제법 인터내셔널한 사람이었다.
내가 한국출신이라고 하자 그는 언제나 한국에 가보고 싶었노라고 하였다.
인터내셔널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중요한 일이다.
단일민족, 단일언어 등 무언가 단일화, 획일화 된 것들은 가슴 속에서 이상하리만치 열망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이것도 나의 호불호 강한 성격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거 아니면 저거. 모 아니면 도.

 


한국에 있을 때 부터 좋아하던 가톨릭 서적 전문 출판사 "바오로딸 서점"의 SNS 계정을 팔로우 중이다.
오늘자로 내 피드에 아래의 포스팅이 올라왔다. 

 

 

출판 되는 책에서 발췌한 구문을 담고있었다.
송봉모라는 저자 역시 사제이다.
송봉모 토마스 신부님.

나는 이 신부님의 유튜브 강론 영상 등을 과거에 몇 개 본 적이 있다.

그 중에서 인상깊었던 것이 바로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 시리즈였다. 내맡기지 못하고 내 뜻대로 해내려고 하면서 고난에 빠지게 되는 세상의 많은 이들 가운데 나도 포함되어있다.

내맡김.
내려놓음.
내려놓고나서 그 내린 것들을 내어드림.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내 잣대로 내 알량한 계산에서 하는 행위들 모두를 내려놓고 모든 것을 매 순간 하느님께 맡기는 것. 그리하여 무거운 짐진 자들의 짐을 나눠 지신다는 하느님께 순명하고 순종하고 내 앞에 마련된 길을 걸어가는 일.

정말로 말처럼 쉽지 않은 이 일이 나는 여전히 버겁다.



내가 퇴사를 할지 말지 고민하는 것도, 아무리 말씀을 읽고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하면서도 매일 그래도 일을 그만두고, 적어도 이런 종류의 일들에서 제발 좀 언젠가는 해방되어서 머리도 식히고 쉬고도 싶고 다른 대안도 마련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이런 저런 되도않는 계획들을 또 찾아보려고 아등바등 거리는 것도 모두. 모든 것을 내맡기지 못해서겠지. 내맡긴다는 것은 왜 이렇게 힘든걸까?

완전히 하느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완전히 믿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그 "혹시" 하는 마음. 그리고 얼른 눈 앞에서 확인하고 싶은 조급함. 아아... 이 마음을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사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고 하느님 뜻을 기다리는 것 까지는 하겠는데 그 기다리는 과정 중에서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면 된다는데, 그러자면 계속해서 하던 일을 하면서 버텨야한다는 것이지 않는가? 그게 하기 싫은 것이다.
하던 일 계속 하면서 버티는 것.

안버티고 쉬면서, 아니면 다르 거 하면서 기다리면 안될까?

나 정말 좀 쉬고싶은데 그러면 안되는걸까?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04.02.2021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

 

- 에페소서 3장 19-20절 -


 

대체로 고요한 하루다.


프로젝트매니저가 예산관리 스프레드시트에 대해 물었고 내일 오후에 함께 리뷰 하자고 제안하였다.
도저히 오늘은 정신 맑게 차리고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갈수록 야행성이 강해져서 밤 늦도록 깨어있고 자연히 그 다음날에는 오전 나절을 헤롱거린다.

느즈막히 점심을 챙겨먹으면서 든 생각이다.
줄곧 해왔던 생각이지만 조금 더 선명해졌다고 해야할까?
지금껏 내가 내려왔던 모든 선택들, 내가 맺어왔던 인간관계 방식, 나의 태도, 나의 행동 모두.
내 선택이 개입되지 않은 것 없었으며 모든 것은 내가 해온 행위들의 결과라는 것.

내가 현재의 팀 내에서 업무를 하며 했던 방식들도.
내가 이전 팀을 떠난것도.
내가 그 이전 팀의 여자들을 거의 경멸하다시피 했던 것도.
내가 그 이전 직장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던 것도.
그 이전의 그 이전의 그 이전의 그 이전의 모든 인간관계들..
그 사이 사이 맺었던 스쳐지나갔던 사람들.
관계가 멀어진 사람들.
혹은 내가 알아서 떨어져나온 사람들.
장소들
일들.
모두.

결국 모든 것들은 나로부터 시작되어 나로부터 끝나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는 과거에 잘 되지 않았던 방식은 지양하고 괜찮았던 방식이 있었다면 조금 더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

매달리듯이 굴었던 적도 많았고, 속내를 오픈하면 다 친해질 줄 알고 상대의 의중도 묻지 않은채로 마구 달려들어 다 까뒤집어 보인 적도 많았고, 혼자 상상하고 투사하여 대책없이 밀어붙인 적도 많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인정 한 번 받아보려고 되도 않은 허세를 부렸던 적도 많았고, 상대를 위해주는 척 하면서 결국은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고싶어서 은연중에 드러냈던 이기심도 컸다.

순간의 알량한 잔꾀같은 머리를 굴려서 어떻게 한 번 타진해 보려고 했던 일들, 얄팍한 정보만을 믿고 첨벙 뛰어들었던 일들 모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모든 것들이 다 선명해지는데 얼굴이 화끈거리고 대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을 정도다. 앞으로는 조금이라도 달라진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러면 과거에 있었던 그 모든 일들은 다 상쇄 될 수 있는걸까?

과거를 지울 수 없다면, 최소 과거를 인정하고 그 과거를 살 당시의 나를 용서할 수는 있겠는가?

 

그런 과거의 모든 기억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서 퇴사를 해왔던 걸까?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걸까?
하지만 음식물을 집어넣고 꾸역꾸역 저작작용을 하는 동안에도 내 마음은 꽤 완고했다.
나는 정말로 여름까지 하여 일을 정리하고 싶은 강렬한 마음에 사로잡혀있다.

아무리 매일매일 다르게 생각해보려고 해도 결국 같은지점으로 돌아오고 있을 뿐이다.

 


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하고

너의 예지에는 의지하지 마라.

어떠한 길을 걷든 그분을 알아 모셔라.

그분께서는 네 앞길을 곧게 해 주시리라.

 

- 잠언 3장 5-6절 -

 


 

더이상 내 알량한 믿음에 의거하여, 내 일천한 지식을 내세우며 그것을 밑천삼아 살면 안 될 것 같다. 그동안 그렇게 스스로의 한미한 일개 허영심을 바탕으로 내렸던 많은 선택들은 결과적으로 나에게 괴로움을 안겨주었다. 이런 일들을 하면 나는 좀 더 자신감이 생기겠지, 이런 일들이 비전이 좋다니, 이런게 좋다니, 이런 사람하고 친구하면 내가 더 가치있어지겠지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그때마다 별로 안좋은 결과들만이 자꾸만 생겨난 까닭은 순수한 마음으로 그것들 (그게 사람이 되었건 일이 되었건) 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혹은 이롭게 만들 것 만을 소망하며 했던 일이기에 잘 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졌고, 억지로 상황을 바꿔보려고 무리수를 두는 일들이 생겼고,인간관계적으로도 상대의 입장을 진정으로 헤아리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옳았다고 자기합리화만을 한 뒤 일방적으로 몰아쳤던 게 크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스스로의 과오만이 자꾸만 떠오른다.
눈을 감고 마음을 달래줘야한다. 아직 더 몇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아직 이번 주는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아직 하루 더 보내야한단 말이다.
흔들리는 마음으로는 주말이 오기 전까지 버텨 낼 수 없을 것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결국 마음을 곧게 지키는 일이다.
사실 이게 모든 일들을 겪어내면서도 쓰러지지 않을 수 있는 힘일테다.

 


내가 힘써야 할 것들:


내 의지, 명철, 예지, 지각에 기대지 않는 것.
인간적이고 유한한 세상의 것에 목매달지 않는 것.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변치 않을 것에 믿음을 두는 것.
내 마음을 그 무엇보다 우선하여 지켜내는 것.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거기에서 생명의 샘이 흘러나온다.

 

- 잠언 4장 23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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