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21.04.2021

 


 

[퇴사고민] | D-8 | 이 시국에 외국에서 퇴사해보려고 합니다만

[BY Birkenwald]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21.04.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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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고민] | D-8 | 이 시국에 외국에서 퇴사해보려고 합니다만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21.04.2021​이제 내가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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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노래를 부르던 4월 말까지 8일 남았다.

미쳤다는 말 밖에는 안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담담하다.

그리고 하나도 미치지 않았다.

마음이 이래도 되나 싶을만큼 덤덤해진다.

어제 저녁, 빨래를 하려고 세탁기를 설치해둔 지하 세탁실로 내려갔다 오면서 우편함을 체크했다. 두 개의 우편물이 와 있었다. 하나는 상사가 저번에 말한대로 급여인상에 관한 회사 인사부에서 온 우편이었고, 다른 하나는 혹시라도 퇴사 후 어떤 식으로든 자영업을 하게 될 것에 대비하여 시청에 1인사업자 등록을 신청한 것에 대한 등록확인증이었다.

상반되는 성격의 우편물이 들어온 것이다.

내가 떠나려고 하는 일터에서는 급여를 올려주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혹시라도 떠난 뒤에 어떻든 쓰임이 될까봐 신청해 놓은 것도 거절당하지 않고 발급이 된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런 기분이 들었다.

문은 생각보다 여러개일수있고, 문 하나가 닫히면 또 다른 문도 열릴 수 있고 그 문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할수도 있다는 것. 그 다양성에의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 내 머리로는, 내가 여지껏 경험 해 온 것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고 가늠 할 수 없는 것들이 차곡차곡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것 말이다. 하여, 무척 두렵고 불안하지만 내가 2015년도 1월 초에 이민가방과 수트케이스에 배낭을 매고 혈혈단신으로 이 땅에 도착했던 그때만큼 두렵고 불안할까 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마주하게 될 삶 앞에 당당히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떨치지 못했던 생각, 바로 "내가 또 도망치려고 하고 있는 걸까?" 에 대해서도 서서히 결말을 지어야겠다는 그 "결말"에의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내가 마주하기 싫은 불안으로부터 계속 도망쳐왔는데 도망생활중에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한국을 떠나왔듯이, 내가 부모와 형제와 거기서의 모든 생활과 친구들과 모든 것들을 다 뒤로하고 와버린것이, 여기에 와서도 이리저리 표류한것이, 이제 또 부서까지 바꿔가며 4년 반정도를 끈덕지게 버텨온 이 곳을 나가려는 생각을 품는 것이 모두 도망치는 것, 도망의 역사 - 그래, 도망이라면 도망 맞는 것 같다.

이 세상은 도망치는 행위를 싫어한다.

도망치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고 외면하고 회피하는 것이고 그것은 미성숙한 것이며 끈기없고 형편없는 것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는것이 싫어서 더욱 더 회피에 회피만을 거듭 해 온 것 같다.

내가 도망치려고 해 왔던 것은, 결국 그런 내면의 수치감을 마주하는 것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했던 것 같다. 나를 상처준 사람들,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들, 그런 일들이 일어났던 장소, 공간들, 내가 거기서 겪었던 암울했던 시간들, 기억들, 그 시간들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 그 감정의 기억들, 내가 주목받고 싶었는데 주목 못받은 것들, 내가 다 컨트롤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것들, 나를 우습게 본 사람들, 그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지 못한 무능력했던 나자신, 그렇다고 그 능력치를 막 끌어올려서 출세하고 싶었는데 그럴 노력 기울이지 않았던 스스로의 나태함, 그 숱한 자기 비하, 자괴감, 자책감, 실망감들.

이제 내가 여기서마저도 또 도망치고 나서 무언가 다른, 새로운 것을 하게 되면 거기서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을까? 보장 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지금 발 딛은 곳을 떠나서 그 미지의 영역으로 도망을 쳐보고 싶단 말이다. 이것은 심령이 불안한자의 역마살 같은 것일까? 또 그렇다 한들, 그러면 정말로 안되는 걸까?

지금 내가 이렇게 덤덤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덤덤하면 안된다 그래도 된다 이런 법규는 어디에도 없다.

내가 지금 현재 착 가라앉아서 덤덤하면 덤덤한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러는 나에게 대책없이 꼴값 떤다고 할 것이고 더러는 나를 측은하거나 이상한 눈으로 바라 볼 것이다. 더러는 날더러 앞날을 응원한다고 할 것이고 더러는 내가 뭘 하던 말던 아무런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내가 현재 어떤 마음가짐이 드는지, 어떤 상태에 놓이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주체자는 바로 나다.

 


 

근속연수 2년을 꼭 채우는 것이 나는 왜 이토록 힘들었을까, 그리고 왜 그 알량한 2년도 나는 여지껏 제대로 채운 적이 없어서 이제서야 그것을 채워볼것이라고 이토록 생색을 냈던 것일까?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닐 것들을 붙들고서 말이다.

이 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할 92일 정도 전에만 해도 나는 여전히 이런 생각을 끊을 수 없는 나 자신을 자책하고 사람들이 이런 나의 성향을 간파했을까봐 전전긍긍하고 그래서 이렇게 블로그 포스팅이라도 하면서 찌질한 속풀이를 한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지금까지 내 마음을 거쳐갔던 수많은 생각들과 감정들, 수 많은 충동들과 동기들은 다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 그런 감정들 그런 생각들이 들었기 때문에 그것들에 대한 반응으로서 내가 내렸던 모든 행동들(선택, 행위, 말들 등등)이 생겨났던 것이고 그 행동들을 바탕으로 지금껏 겪었던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일들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 이렇게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순간에 이정도로 마음을 정리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든 것들이 다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서 하나의 커다란 테피스트리를 직조해오고 있었다.

그래, 나는 자주 불안했고, 싫은 것들도 많았고 그래서 자주 도망친다.

그렇게 도망쳐온것 치고는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걸 보면 그리 나쁜 도망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나는 더러 도망도 치고 그러면서 살아 갈 것 같다.

인간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지 않나 - 그런 맥락에서 보면 내 이런 성향이 드라마틱하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더러는 날더러 포기하고 도망치는 사람이라고 비난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어떤 말을 듣더라도 내가 내 도망에 떳떳하고 내 도망으로 따르는 모든 결과들을 그 모든 값들을 다 치러내면서 내 삶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누구도 원망않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 삶도 그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두고 또 누군가는 어디서 자기합리화냐며 또 비난할지도 모른다.

비난은 내 삶이 지속되는 한 끊이지 않을것이다.

 

나는 결심하기로 했다.

나는, 앞으로, 내 삶에 어떤 상황이 닥치고 내가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되고 어떤 말들을 듣게 되더라도, 심지어 엄청난 비난을 받게된다 하더라도, 나 자신만은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나는 그 모든 상황들에서 무엇이든 한가지 이상은 배워갈것이며 나만의 인생 노하우로 적금들듯이 모아갈 것이다.

그러면 세상을 원망할 것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할 것도, 나보다 잘난 사람 앞에 주눅 들 일도,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 앞에 은근히 우쭐 할 일도, 그런 모든 적나라한 찌질함을 탑제한 나라는 인간을 경멸할 일도 없어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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