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12.03.2021


다시 찾아온 금요일이다.

어제 오후부터 저녁에는 한 차례 감정적 트리거를 당해 불안-초조-우울-비관의 사이클을 차례로 겪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저 금요일이라는 이유로 심기일전 해보려고 하고 있다.

내 5월 중 사표 후 노티스 기간 감안 8월말까지 근무하지만 8월 한 달은 남은 연차를 몰아서 사용하여

garden-leave 형식으로 7월 말까지 근무하고 나머지는 퇴사일까지 휴가처리하려는 계획.

그 시나리오가 흔들리려나 라는 불안감이 조성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번달 말, 즉 3월 말까지 올해동안의 모든 연차계획을 다 입력해서 제출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그냥 그게 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메일에서 내가 아직은 비밀로 부치고 있는 나만의 계획이 틀어질지도 모른다는 그런 이상한 불안감에 휩쌓이고 만 것이다. 그러다가 이런식으로 나올거라면 4월말이고 5월달이고 뭐 기다릴 것도 없이 내일이라도 당장 다 정리하고 나와버리고 싶다는 극단적인 감정마저 들었다. 그러다가 그간 받아온 심리상담의 효과를 보는 것인지,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고 생각해보았다.

이런 패턴들.

과거에도 있지않았던가.

뭔가, 원하는대로 마음먹었던대로 계획이 진행 될 것 같지 않아지면 발동하는 패닉적인 증상들.

이성적인 사고가 위협받고, 불안, 초조, 짜증, 우울, 분노, 비관 으로 발전하는 감정의 곡선들.

그 모든 것의 시발점은 불안. 불안과 두려움이다.

 


 

한 스타트업 기업이 디지털 관련 커리어로 직종 전환을 하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재교육을 받도록 강좌를 만들어서 이수 후 관련 기업으로 취업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SNS 광고를 통해 알게되었다. 거기서 하는 SEO 온라인 마케팅 웨비나를 들었다. 사실 말이 웨비나이지 그렇게 초반에 잠깐 온라인 마케팅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는 나중에는 자신들의 강좌를 들으라는 세일즈 콜인 것이다.

알아두면 좋은 기술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퇴사 후에 업으로 삼기에는 글쎄... 들으면서도 어딘지 설득되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퇴사를 하면 커리어가 망가지는 유형"이라는 한 포스팅을 읽은 적이 있다.

(퇴사하면 커리어가 망가지는 3가지 유형 | 직장in 생활백서 - 사람인 (saramin.co.kr))

퇴사하면 커리어가 망가지는 3가지 유형 | 직장in 생활백서 - 사람인

명확한 이유가 없는데도 충동적으로 퇴사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문제가 벌어집니다. 내 커리어가 걸린 문제인데 설마 경솔하게 선택하는 사람이 있겠느냐 싶겠지만,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그저 싫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떠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혹시라도 본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차분하게 자신을 한 번 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www.saramin.co.kr

거기에 보면 대체로 이런 유형들이 그렇다고 나오는데...

 

불안이 많고 짜증이 많은 성격

사람들을 주도하고 싶지만 막상 나서기는 싫은 성격

공상을 많이하며

막상 주변에 관심이 별로 없고

본인이 그들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성격

등등..

죄다 내 이야기 같다.

그래서 나는 무려 이 시국이라는 시국적 프레임까지 덧쓰고서 퇴사를 하면 그대로 아작이 나고 말 것인가.

어제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말이 나왔다.

결국 지금 하고 있는 것도 내가 처음에 동의하고 결정해서 시작하게 된 것이라는 것.

마치 전속 여배우와의 열애로 화제거리가 된 그 모 감독의 영화제목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때는 그런 줄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지금은 틀렸다고 말하는.


과거에 다니던 한국계 회사에서 당시 상사였던 사람이 했던 말들을 듣고 상처+짜증을 느낀 날 썼던 오래된 내 블로그 포스팅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그사람 입장에서도 이런 내가 얼마나 싫었을까. 그에 비하면 적어도 사람 불러놓고 그런식으로 인신공격하듯이 말하는 문화가 아예 없는 (뭐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다른 방법이 또 있지만) 현지 회사에서는 그나마 내가 이런 성격유형을 하고서 이만큼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이렇게 민폐를 끼칠바에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또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그래도 내가 나라까지 바꿔서 살고 있는 마당에, 이대로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말면 너무 슬프지 않겠는가. 하지만 할수만 있다면 세상에 존재하되 또 동시에 존재하지 않듯이 그렇게 살아보고싶기도 하다.

뭐든지 그러려면 뭐니뭐니해도 돈이 필요하다.

존재하지 않듯이 하면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입에 넣어줄 밥을 마련할 돈을 벌어야하기 때문이다.

 


금요일이다.

 

한 주 한 주 이렇게 흘러간다.

그렇게 내가 늘 돈 돈 하는 그놈의 그 돈, 2주 후면 이번 달의 급여가 입금된다.

스스로 설정한 100일간의 퇴사유예기간 중 절반이 훌쩍 지났고 어느덧 디데이 카운팅의 숫자는 40일대에 접어들었다.

나는 훗날,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난 뒤, 지금 이렇게 보내고 있는 이 유예기간을 어떻게 회상하고 있을까?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10.03.2021


 

 

 

간밤에 시계가 자정을 가르켰을 때, 휴대폰에 설정한 디데이 카운팅 위젯은 50일 남았다는 푸쉬 알림을 보냈다.

내가 설정한 100일 중에서, 그 절반의 기간이 지난 것이다.

2nd A. 는 2nd Anniversary 를 뜻한다.

내가 징하디 징하게 집착하는 그 업계 최소 2년 경력 채우는 그 알량하고 옹졸한 데드라인.

어제는 디데이 카운팅이고 나발이고 확 다 갈아엎듯 때려치우고 나오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누른 채로 그동안 줄곧 받아왔던 온라인 심리상담을 한 회차 신청했다.

 

 

 

 


지금까지의 여정 중에서 이 온라인 심리상담이 없었더라면 나는 어땠을까.

나는 어제 이미 발생한 일들에서 오는 부담감과 앞으로 닥칠지 어떨지도 알지 못하는 망상적인 걱정들로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였으며 가까스로 충동적 "다리 불태우기 (burning the bridge)"를 참으며 하루를 마감하고나서 기진맥진 해 진 상태였다.

이대로 다 그만둬버리고 나면 결국에는 나는 오점을 남기게 되는 걸지, 과연 그만둔다면 뭐라고 하면서 그만두고 나올 수 있을지, 거기다가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면 어떻게 되는건지 등등 나는 어제 굉장히 심한 불안상태에 빠져들어있었다.

그때 담당 상담사 선생님이 내게 해준 말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그 "오점을 남긴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동안 우리가 상담통해 만나면서 나눴던 이야기들 속에 등장했던 모든 인물들, 사건들, 장소들 다 한켠으로 밀쳐놓고. 나. 나 자신. 나는 어떤 기분이고 나는 무엇을 하고 싶고 나는 왜 그렇게 하고 싶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 자기 주도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so what? 하는 자세로 자신이 옳다고 믿고 결정 내린 일에 대해서는 뒤돌아보지말고 나아가라고.

그리고 오점을 남긴다는 핵심신념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불안한 생각들의 사이클로 반복되어 돌아오는 것. 지나가는 사람들을 랜덤으로 붙잡고 물어봐도 열의 여덟아홉은 거의 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오점을 남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심지어 열사람 중에서 열명 다 이건 실패하는 짓이라고 소리친다 해도, 내가 어떻게 생각해서 어떤 일을 겪고 나서 어떻게 내리게 된 결정이라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안다면 그들의 의견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주체성을 바탕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또한, 이런 생각을 믿음처럼 가지고 있다보면 직장을 그만두고나서도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새로운 인생의 챕터를 넘기지 못한채 계속해서 낙오자 같다는 그릇된 인지적 오류를 떠안으며 허우적거릴 거라고.


50일이 지나오는 동안에 생각보다 많은 것을 찾아내지 못한채 주기적으로 빠져드는 이 불안 사이클에 잠식당한채로 시간을 허비한 것 같다는 생각에 반성을 하게된다.

어제 유튜브에서 알고리즘을 타고 시청하게 된 이 영상에서 공감을 받았다.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하고 다른 포지션으로 이직하고 그렇게 환승에 환승을 거듭하면서 이렇게 사는 것이 맞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면서... 타잔처럼 말이다.

https://youtu.be/H7ChGtEPmC4

 


 

앞으로 남은 50일간 나는 현실적으로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누가 여기에 나에게 좀 영양가 있는 조언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회사원 생활을 하다가 다른 삶을 살면서도 그 삶에 문제가 없더라는 그런 간증을 들으면서 마음을 좀 놓아보고 싶단 말이다.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09.03.2021

 


 

영혼이 잠식된 기분이다.

나아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마음에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너무 괴롭다.

더 이상 버티기 싫은 기분이다.

그냥 이번 달 안에 사표를 내고 6월에 나오는 걸로 할까 그런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도 막상 강박적으로 내가 설정한 4월말까지 버티고 2년 채우는 그 알량한 그놈의 그 2년에 왜이렇게 목숨을 걸지?

기대연봉을 확 줄여서 여기저기 지원하고 다니면 되는걸까?

아니다. 그러면 어차피 또 새로운 곳에 가서도 불만족스러워서 얼마 못가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해본다.

뭐라고 하면서 나올까.

한국에 급히 가야한다는 "한국 귀국설"을 카드로 쓸까 이런 거지같은 생각을 하다가 이따위 시나리오나 구축해서 또 입증하려고 하는 내 자신의 비루함에 화가난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 이렇게 일하고 먹고 살고 하는 방면에 있어서는 영혼이 너덜너덜해진 기분이다.

지쳤단 말이다.

사실.. 일을 하게 되면 인간에 대한 실망감이 너무 커진다.

가장 큰 실망감을 안겨주는 인간이 있는데,

그는 바로...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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