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05.03.2021


금요일이다.

문득, 이 세상의 많고 많은 직종들 중에서 회사원이라는 노동의 방식에 대해 생각이 한층 더 많아지는 아침을 보냈다. 이 세상에는 수 없이 많은 회사들이 있다. 그 회사들에는 그곳에 고용된 훨씬 더 많은 수의 임직원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을 고용한 기업에서 일하며 거기서 지시받은 일들을 해내고, 스스로 도맡아 어떤 프로젝트들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결국 최종적으로는 일의 결과물은 기업에게로 돌아간다. 그 기업이  가지고 있는 각종 인프라를 동원하여 그들이 열심히 일궈낸 일의 결과물을 구현해내는 일은 아무래도 개인이 하기에는 여전히 많이 어렵기 때문이다.

회사원의 숙명이랄까.
하기사 공장의 블루칼라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하루종일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앞에 서서 작업을 해서 물품들을 생산해내지만 결국 그 완성품들은 그들을 고용한 회사의 몫이다. 회사는 그것들을 판매하고 거기서 얻은 수익 중 일부를 그것들을 생산 해 낸 사람들의 인건비로, 그들의 임금으로 지불 될 것이다. 

이 지점이 나는 이상하게도 조금 슬프다.
그래서 뭐 그게 나쁘다 어떻다가 아니라, 그냥 조금 슬프다.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고 세경을 지급받는다는 것에서 조금 더 체계화되고 조금 더 세련되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갈등론자적인 입장인걸까.

일을 해 주고도 그 일의 완성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점이 슬펐던 것 같다.
그래놓고 그렇게 여기저기에서 남의 일들을 완성시켜주고 그것을 경력으로 쓰면서 어디어디 전문가, 무슨무슨 전문가. 결국 남의 일 완성시켜주기 전문가가 되어서는 더이상 고용을 당할 수 없게 되거나 고용한 회사가 망하면 더는 완성시켜 줄 일감을 주던 그 "남"이 없어져서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마는.

그렇다고 스스로 자기 일을 하자니, 리스크는 너무나도 크다.
은근히 이런 생각마저 든다.
일감을 주면 군말 않고 해 주지는 않을 망정 배은망덕하게시리 회사에서 독립 해 나와서 독자적으로 뭘 하겠다고 나오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 앞에 놓인 미래를 어렵고 위험하게 꼬아놓아야 그들이 다시 그거 무서운 줄을 알고 회사로 기어들어와 머리를 조아리게 될 것이므로 일부로 그렇게 어려운 생태계를 구축 해 놓은 걸까 라는 생각 말이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오늘 오후에는 상사와 이번 년도 업무 목표 설정하는 것을 최종 확정하는 콜이 있다.
이미 상사가 혼자 다 기입 해 놓은 그 템플릿에는 작년도와 토씨하나 안틀리고 똑같은 업무에 한가지로 전혀 안내키는 일이 하나 들어가 있다. 이 조직에서, 이 포지션에서 나의 존재적 한계를 엿보았다.

일단 군말 없이 그러마 하고서 4월이 지나고 5월이 오면 정말로 미련 없이 사표를 내고...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될까.

정말로,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올해 하반기 부터 나는 정말 어떤 모습으로 살 수 있을까.

 


 

퇴사를 한다면, 만일 다른 데로 이직 하지 않고 그냥 그만 두게 될 때에 과연 뭐라고 말하면서 퇴사를 하는게 좋을지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 씩이나 펼쳐가며 우울해했다.
그때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해 준 분이 있는데, 이 말이 너무나도 힘이 되었다.

"머리카락 하나 다침없이 잘 통과하시리라 믿습니다."

어떤 일이 닥칠지라도 머리카락 하나 다침 없이 지나갈 것이라고 믿고싶다.
이 말을 복음서에서 다시 찾았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루카 21:18-19

 

 

어떤 일이 어떻게 펼쳐진다 하더라도 나는 안전할 것이며, 나는 그 어떤 다침 없이 인생의 갖은 시기들을 통과 해 나갈 것이다. 다만 나는 매 순간 인내로써 그 시간을 견뎌 낼 것이며 그리하여 그 견딤 끝에 삶에서 승리하고 싶다. 

삶의 승리는 더 많은 돈을 얻고 더 높은 지위를 얻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갖은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한결같이 살아내는 일을 성취 해 내는 것이다.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30.01.2021


어제자 요약정리를 하려고 하였으나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욱 더 머리만 아파온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머지 날들을 다 채우지 못한채로 그냥 결론을 짓고 다 날려버릴것만 같다.


내가 현실적으로 취해 볼 수 있는 액션들은 뭐가 있을까?
이런 식의 업무가 싫다면 조금 더 내가 원하는 업무들을 타진해 볼 만한 스킬들을 갖기 위해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가?
만일, 그 업무들을 막상 했을 때 그것도 내 길이 아닌 것 같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도 못쓰고 있는 소설을 퇴사를 하고나면 쓸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가?
소설을 제대로 한 번 써보기 위해 나는 뭘 해 볼 수 있을까?

생계유지 수단으로 삼을 만한 다른 대안은 있는가?
어디까지가 내 심리적 마지노선인가?
무엇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고 무엇부터는 도저히 안 되는가?

리모트 가능한 잡이 있었으면 좋겠다.
파트타임도 괜찮다. 월 한화로 최소 100만원가량이라도 벌 수 있다면. 임시방편으로 일단은.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27.01.2021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주님에게서 상속 재산을 상으로 받는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콜로새서 3장 23-24절


 

 

나는 지금 흙 속에 몸을 숨긴 한 알의 영롱한 진주다.

이렇게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누가 봐도 한눈에 화려하고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일 필요 없다.
누가 봐도 한눈에 매혹적인 붉은 루비일 필요도 없다.
누가 봐도 한눈에 신비로운 에메랄드일 필요도 없다.
나는, 은은한 광채를 내뿜는, 조개가 눈물로 품어낸 그 한 알 진주로 충분하다.
우아하고 클래식한, 그리하여 유행을 타지 않는 한결같은 그러나 견고한.

반드시 드러날 필요 없다. 평생 숨어 살 필요도 없지만 꼭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필요 없다. 그렇게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내가 보기에, 나는 소심한 관종같다. 관심의 중심에 놓이면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아주 뒷전으로 밀려난다 싶으면 불안하고 어딘지 침울해지니 말이다.

 


일단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는 데까지 해 보는 것은 이 "흙속의 진주"같은 심정으로 참아내듯 지내면서 지금껏 해 왔듯이 버텨 볼 수도 있는 일이다. 분명 이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는 한편,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회사원 생활을 하는 것에서 내가 만족하고 이 테두리 속에서 성장하고 싶은지에 대한 판단은 내려야한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이든, 다른 어느 곳이 되었든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계속 자리보전하면서 어떻든 버티고 또 버티면 반드시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것이고 그것이 승진이 되었든 급여의 인상이 되었든 조금 더 품격 높은 혹은 복잡한 업무가 주어지는 방식이 되었든 풀려갈 것이다. 여기서 나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그렇게 그 조직 내에서 계속 발전을 정말로 해 나가고 싶은가이다. 

직장생활을 계속 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해나가고 싶은가?
직장생활을 계속 하고 싶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직장생활을 지속 했을 시 나는 무엇을 얻게될 것인가?
직장생활을 안한다면 어떤 대안을 생각하고 있는가?
그 대안을 택했을 시 나는 무엇을 얻게 될 것인가?

 

사실은 직장을 팽개치고 모든 것들로부터 손을 떼고 싶어졌던 순간들로 점철되다 시피 했던 지난 세월들 동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끝끝내 손에서 직장생활을 놓지 않게 한 원동력은 이런 것들이었다.
이민 초창기 때에는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영주권을 취득해서 1차적인 정착을 마치기 위해서. 그렇다면 영주권을 따고 난 지금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생활비는 벌어야하기 때문에. 단지 그것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반대로 물어보자.
무엇이 제일 두렵거나 염려되어 퇴사를 유보하고 게다가 이렇게 퇴사 전 일지까지 쓰기 시작한걸까?

외국에서 자리잡고 살아가는 가운데, 직장이라는 끄나풀이 사라지고나면 과연 내가 나의 이곳에서 살아감의 이유를 입증 할 수 있을까?

나와 이곳 사회를 연결해주는 끈이 여기서 내가 하고있는 노동활동이며, 그로인해 취득한 급여, 거기서 원천징수 되어가는 사회보장보험료와 엄청난 양의 세금을 마치 여기에 살아가는 대가로 지불하는 사용료 같이 여기며 살아왔다.

그 끈이 떨어지고 나면 헌 짚신짝처럼 끈떨어진 신세로 나뒹굴면 어쩌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영화 제목 같은 이런 말.
외국생활을 하면서 주로 이런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맞고 여기서는 틀린 것들.
한국에서는 안되는데 여기서는 되는 것들.

그 중 대표적으로 현재 내 상황에 가장 소용이 닫는 차이점은 바로 이것이다.

 

한국에서는 없는 것

여기서는 있는 것

자진 퇴사 시 실업수당 지급 안됨.

자진 퇴사 시 최대 3개월까지 freeze기간 있은 뒤부터
지난 12개월 이상 수령 급여액의 60-70%정도까지
실업수당 지급.

단, 꾸준히 고용노동센터와 소통해야하며 구직활동을 하고 있음을 증명해야함.

한국에서 살 당시 나는 돈이 거의 없는 상태였음.

많은 돈은 아니여도 그래도 그동안 모은 돈으로,
최악의 경우 아무 소득이 없다 해도 최장 1년까지는
버틸 수는 있을 것 같음.



일단 이렇게 마음을 먹어보려고 한다.

그 이유는 
어떤 선택을 하든 모든 것은 내 소관이라는 주체성, 능동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상황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나에게도 얼마든지 유리한 쪽으로 끌어내 볼 수 있다.
나는 절대 무능력한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1. 퇴사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2. 퇴사를 하게 되더라도 당장 굶어죽지 않는다.
3. 퇴사를 하고 안하고는 전적으로 내 의지 소관이다.
4. 퇴사를 안하고 버티는게 능사가 아니듯이, 퇴사를 했다 해서 그것이 반드시 실패인 것은 아니다.
5. 궁극적으로, 퇴사를 "스마트하게" 할 수 있도록 해보자.

 

허나.. 장기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암만 생각해도 아니올시다다.
그렇다면 결국 답은 창업인가? 프리랜서인가? 주식을 배워 투자를 해야하는가?
또 만일 창업을 한다면 뭘 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어떤 니즈들이 있고 그 니즈들과 내가 가진 능력치의 교집합 부분은 과연 있기는 한걸까?

 

자기만의 컨텐츠를 기반으로 한 지식창업.
어떤 지식?
무엇을?
어떤 컨텐츠?
나는 누구?
나만의 차별성, 고유성?
퍼스널브랜딩.

 

 


 

솔직히 내가 앞으로 92일 뒤에 5월이 되었을 때에 바로 사표를 내지 않고 회사를 더 다녀보기로 마음 먹는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주제가 바로 이 "퇴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가슴 속에서는 5월이 되면 어떤 뾰족한 솔루션이 생겨 5월에 사표를 내라면 낼수도, 한 몇달 정도 더 월급을 모을 심사로 다녀 볼 수도 있는 선택이 가능한 위치에 있고 싶다.

역시 대안적 삶에 대한 뾰족한 수가 생겨야만한다.
지금으로서는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한다 하더라도, 그로인해 급여도 높아질 수 있고 조금 더 나은 업무를 운좋게 찾게 된다 하더라도 회사생활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나를 가장 불편하고 불안하게 한 것들과 또다시 부딪히고 또다시 나는 퇴사를 생각할것만 같은 강렬한 예감만이 든다. 그래서 이직을 안한다는 전제하에 나는 무얼 할 수 있는가.. 그 답이 내려지지 않지만, 동시에 가장 시급한 문제가 갈수록 점점 더 난제가 되어간다.

 


나는 흙 속의 진주.
인내하고 헌신하지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하루 하루 살아내지만, 지금 내 머리로는 내 능력으로는 내 현실로는 스스로에게 다른 환경을 마련해 줄 재간이 없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모순이다.
순종하고 인내하고 감사해야하는데 이런 현실이 아직은..좀 많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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