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03.02.2021


너는 이 땅에서 나그네살이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너에게 복을 내려주겠다.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이 모든 땅을 주고,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그 맹세를 이루어주겠다.

Sojourn in this land, and I will be with you,
and will bless you; for to you and to your descendants
I will give all these lands, and I will fulfil the oath
which I swore to Abraham your father.

창세기 26장 3절



수요일이다. 한 주의 중반부까지는 무난하게 흐르고 있다.
감사하다.

어제와 비슷한 일들을 해야하는 이유로 머리보다는 손가락이 바쁜 하루였다.
하루종일 비만 내린다.
이 나라의 2월 날씨는 대체로 이러하다. 거의 몇 주씩 연달아 늘 비소식으로만 가득하다. 그렇게 종일 질척질척 부슬부슬 그러다 보면 겨울도 끝이 나 있을까.




올해들어 내가 생각해도 참 잘 한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성경통독과정에 들어간 것이다.
성서공부는 대학시절 청년성서모임에서 주관하는 그룹성서모임 (창세기 & 탈출기, 마르코 & 요한복음)에 나갔던 것이 전부다. 사실 창세기와 탈출기는 마치고 연수도 다녀왔었고 마르코는 공부과정만 마치고 연수는 가지 않았었다. 요한복음은 공부과정도 듣지 않았다.

그 뒤로 띄엄띄엄 그냥 구절 구절들로 읽으면서 그렇게 지내왔기에 체계적이고 전체의 흐름을 잡는 성경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일종의 컴플렉스도 있었다.


미국 미네소타 출신의 마이크 슈미츠(Mike Schmitz) 신부님이 올해부터 운영하는
팟캐스트 "Bible in A Year" 를 스포티파이로 들으며 매일 매일 업데이트되는 에피소드를 들으며 그날 정해진 분량의 성서를 창세기부터 읽어가는 것이다. 그저 목소리로만 들으며 신부님과 함께 그날의 분량을 읽어나가는 컨셉이라 서로 떨어져있어도 왠지 함께 모여 읽는 것 같은 든든함이 마음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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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부터 시작하여 어느새 34일째이다.
그동안 창세기와 함께 읽기 시작한 욥기는 이미 마무리를 지었고 탈출기와 레위기를 함께 읽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언이나 시편 같은 지혜서나 시서도 곁들여 읽으며 성서가 서로 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더 느끼며 말씀을 공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 만족스럽다.

오늘 읽었던 탈출기 12장에서는 400년도 훨씬 넘게 종살이 하던 이집트땅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들이 기억하게 될 파스카 예식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돌로 된 문설주에 당시 이집트인들은 주인의 이름을 아로새겼다던데, 그 이름이 새겨진 곳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그 집은 재앙을 피해간 사건. 그것은 나중에 신약에서 대속양인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쏟은 피로 죄사함을 받게되는 인간들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 난 뒤 신부님의 설명과 여러가지 생각해 볼 점들을 들으며 나도 생각에 잠겼다.

나에게는 그동안 어떤 파스카가 있었던가.
짧지않은 세월을 홀로 해외에 나와 사는 동안 어려운 순간들, 아찔했던 순간들도 있었다만 번번이 그 시기를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던", 나만의 파스카 신비.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살아내고 있는, 즉, 그렇게 지나고 있는 이 시기는 나중에 어떤 식으로 회자되고 평가될까? 내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본래 태어난 땅을 떠나 기꺼운 마음으로 이국땅에서 나그네살이를 하고 있는 나, 그간의 행적들과 그 행적들이 바탕이 되어 마련된 현재의 삶과 이 현재의 순간들이 과거가 되어있을 먼 훗날의 나. 나는 이 시기를 넘기면서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

창세기를 읽을 때부터 팟캐스트에서 흘러나오는 영문 성경에는 "나그네살이" 하는 아브라함 일족들의 이야기와 오늘 읽은 탈출기에 이르기까지 "Sojourner" 라는 단어가 많이 나왔다. 소저너.
동사로는 sojourn. 거류하다. 체류하다. 즉, 거류민들, 체류하는 사람들. 손님처럼 머물다 가는 나그네이다. 이 단어는 이번에 이렇게 처음 접하는 단어이다.

나도 역시 나그네.
이민자로서 나그네도 맞는 말이고 우리네 인간들이 이 세상에 정말 sojourning 하고 있고 언젠가, 기독교인들이라면 믿고있는 우리 "본향으로의 회귀"를 고대하며 지상의 삶을 거쳐가듯 살아가는, 그런 의미에서의 나그네.

그러니 지금껏 겪어왔던 이런저런 일들, 아무리 큰 일같더라도 다 지나고보면 사실 그리 큰 일도 아닐, 그런 것들에 마음을 너무 많이 뺐기지 않도록 노력해보자는 생각이 든다.

이 땅에는 우리를 위한 도성이 없다는 말씀도 생각이 났다.
내가 자꾸만 직업전선에서 경험하는 반복되는 허탈감, 허무함, 가져도 가져도 자꾸만 더해지는 갈급함.
조급함들. 불안감들.


사실 땅 위에는 우리를 위한 영원한 도성이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올 도성을 찾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4절




오늘 하루, 나는 최대한 의문을 품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일과를 무사히 마치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은, 오늘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었음에 나 자신을 치하해주고싶다.
내 뜻대로 하지 않고 남을 돕듯이 일을 하면 남들은 내게 감사를 표하고, 나는 여전히 마음 속에서 여러가지 생각들로 뒤엉켜 복잡하지만, 일단 하루는 무사히 지나간다.

창밖에는 비가 너무도 많이 내리고.
나는 내가 내손으로 마련하여 기거하는 오두막에 몸을 의탁한 나그네.
이국 땅에서 오늘도 나는 이렇게 하루를 살아낸다.

사실 나의 이집트땅은 내 이런 마음가짐들 속에서 종살이하듯 괴로워하는 나날들이겠지.
여기서 출애굽하여, "내 백성을 내보내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위하여 축제를 지내게 하여라" (탈출 5:1) 하신 말씀처럼 나도 거기서 나와서 축제속에 있고싶다. 내 인생에서의 종살이는 무엇이며 내 인생에서의 파스카 신비는 어떤 것일지 오늘 저녁 내내 생각해야겠다.


모세같은 심정으로.

"가거라 모세야. 파라오여, 내 백성들을 보내주어라."

Go down Moses Louis Armstrong (best of jazz)
Best of Ja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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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At9exbq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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