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31.05.2021

 


http://naver.me/GmFmqah4

 

[퇴사고민] | EPILOGUE 2 | 이 시국에 외국에서 퇴사해보려고 합니다만

[BY Birkenwald]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31.05.2021...

m.post.naver.com

https://blog.naver.com/whiska/222378218477

 

[퇴사고민] | EPILOGUE 2 | 이 시국에 외국에서 퇴사해보려고 합니다만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31.05.2021 사람은 가고, 또 오...

blog.naver.com

 


사람은 가고, 또 오고


5월 마지막 날이다.

예정대로 2월에 사직 발표를 했던 CIO가 떠났다.

그는 북유럽 모 나라를 베이스로 하고 있는 한 기업의 IT 임원으로 간다고 하였다. 그의 후임으로는 그룹 내 다른 계열사의 임원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 내정하여 가을부터 이 회사로 옮겨와 근무를 할 예정이란다. 이 사람은 여성으로서 회사 역사상 최초로 여성 CIO가 될 것이다. 그러면 이미 작년 겨울 새로 부임한 여성 CHRO와 함께 이 회사에도 경영진에 여성 임원이 두명이나 생기게 된다. 회사로서도 분명 이건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 몇달 사이에는 현재의 CFO가 CIO를 겸직한다고 한다.

갈 사람들은 가고 올 사람들은 오는 법.

어느새 유월에 접어드는 시간이 왔다. 절기상으로는 늦봄과 초여름이 초록 나뭇잎들 사이에 뒤섞여 걸려있다.

이렇게 한 해의 절반에 다다른 것이다.

유월까지 근속 기간을 끌고온 것은 일단 참 잘한 것 같다.

그만두더라도 매해 6월을 넘긴 상태라면, 한 해의 후반기까지 근무를 하는 것이 되므로 잔여 휴가들을 모두 클레임 해서 쓸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이 점은 퇴사를 본격적으로 고민하던 올해 초부터 현지 노동법을 참조 해서 알게 되었다. 6월 1일 이전에 마지막 근무일이 생성된다면 휴가일수를 개월수로 등분 한 뒤 또 얼마를 곱하는 등의 계산을 거쳐서 최종 일수로 따지자면 얼마 안 남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퇴사 후 통상적으로 3개월을 갖는 노티스 기간은 기간대로 다 갖고, 마지막에 조금 일찍 나갈 수 있는 기회도 없이 빠듯하게 일을 모두 다 해 주고 나와야 하는 것이다.

하여 일단 이렇게 근로기준법적으로 보장이 가능해지는 이 점은 중요하다. 현시점에서는 이렇게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들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적합한 시점에 내 손에 쥔 퇴사자유이용권을 발동시켜, 사직의사를 표하고 마지막 근무일자를 정하고 남은 휴가들도 클리어하고 오는 것이다.



베테랑 같은 배짱을 탑재해야 할 때




5월의 급여도 들어왔고 거의 월급의 대부분을 저축계좌로 이체시켰다.

이번달은 이렇게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저축을 하고 다음 달은 급여의 절반 정도를 이체할 예정이다. 그러는 사이 벌써 꽤 모였다. 이게 중요하다. 내 생존을 위한 종잣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너무 이 종잣돈을 까먹으며 손가락 빨고 살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하기는 해야한다.

선뜻 퇴사를 내지르지 못하고 망설였던 원인들 중에서 한 가지 두려웠던 점을 꼽자면, 실직자로의 신분 전환 후의 상황들에 대한 우려되는 마음이다.

고용센터에 실직자로 등록이 되고 나서 실업수당을 받게 되기까지 거쳐야 할 행정적인 절차들, 그리고 실업수당을 수령하기 시작하면 내가 그동안 원천징수당하며 납부했던 사회보장보험인 고용보험을 통해서 이전 급여 기준으로 얼마 정도를 받게 될 터인데, 그 돈을 받는 대가로 고용센터에서 추천해주는 아무개 스러운 일자리에도 면접을 보러 가야하고 대개 그 일자리 라는 것이 대졸자들에게는 턱없이 모자라는 일자리라는 것이 대다수의 평이다. 하기사, 고용센터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실직자를 다시 구직시장에 던져서 재취업을 해서 실업상태를 벗어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의무이다보니 일면 이해도 간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반복될 시 나는 그것들을 잘 핸들링할 멘탈적 준비가 되어있는가?

그런데 막상 아직 닥치지 않은 일들은 미리서 걱정하지 말자.

내 지난 햇수로 7년간의 이민자로서의 이력. 이것이야말로 아무도 내게서 가져갈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다. 시간이 가지는 힘이 생각보다 참 크다는 것을 지난 세월동안 절감했다.

만일 한 직장인이 있다고 했을 때, 그가 한 업계에서 논스톱으로 7년 정도 몸담고 있다면, 물론 그사이 업장이나 직책은 바뀌었을 지언정 그 업계를 꾸준히 유지해왔다면 시니어급 경력직으로 쳐주지 않는가?

하물며 혈혈단신 가진 것도 없이 덜렁 어떤 회사일지도 자세히 모르는 영세한 첫 직장의 채용확정만을 믿은채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행기에 오른 그 당시의 나. 그 제로베이스 상태에서 도중에 힘들다고 다 접고 귀국하지 않았고, 생각보다 살면서 나만의 생활시스템도 갖춰갈 수 있었다.

나, 이만하면 제법 베테랑 소리 들을 만 하지 않은가? 나 정말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자부심 가져도 되지 않을까?

그동안은 줄곧 피고용인 상태로, 회사원 신분으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다른 신분으로 다른 각도에서 이 나라, 이 사회를 더 깊이 체험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 마저도 배움의 기회로 삼아 볼 수도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실재로 실직자로 등록 된 후 보내게 될 시간들의 실상이 많은 실업수당 수령자들의 후기 포럼에 나온 것 대로 정말로 그런지 확인 해 볼 수도 있고 또 나만의 방법을 찾아서 이 기간을 레버리지해서 활용 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용센터에서 정히 이상한 일자리들만 계속 들이밀어서 그거 거절해서 실업수당이 끊기게 되더라도 당장은 그래도 1년 정도는 자력으로 먹고 살, 좀 더 허리띠 조르면 1년 이상도 먹고 살 저축도 마련 해 놨다. 굶어죽지 않는다.

그런 배짱을 좀 가져야겠다.


빅 픽처: 놀라운 은혜




어제 저녁, 한숨 돌리면서 곰곰 지난 시간들을 되짚어보았다.

그런데 그동안 보일 듯 보이지 않을 듯 희뿌연 안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 있는 기분을 들게 하던 내 삶의 의문점들에 대해서 깨우침 같은 것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광야.

빅 픽처.

이제서야 이 모든것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나 혼자만의 "뇌피셜"인지, 아니면 [아Q정전]의 주인공 아큐처럼 스스로 정신승리 하기 위한 자기 합리화의 산물인 건지 정말로 하느님이 내게 주신 생각인지 아직은 확고한 구분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면 이미 나의 미래는, 기업에서의 회사원 생활에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이미 앞서 지나온 직장들에서 상급자들에게 드문드문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조직생활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 우리와 맞지 않는다는 말,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서로 안맞는 사람들끼리 지내기에 그들도 참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을 겪은 목적이 분명해지고있다.

이건 분명 가슴 뛰는 일이다. 희열이 감지된다.

내가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누가 들어도 좋을 직장에 턱 하고 취직해서 아무 고난 겪지않고 승승장구 했다면 나는 이민을 나올 생각이라도 냈을까? 기껏해야 일년에 몇차례 해외여행정도 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 그런 환경들에 놓이면서 더욱 더 이민에 대한 열망과 확신을 굳히게 되었고 이땅에 도달했다.

여기 와서도 처음부터 첫 직장부터 너무 이상적이고 아름다워서 내가 만족해버렸다면 나는 더 나은 직장으로 가기위해 나의 능력을 개발하고 새로운 것들을 배워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고 내가 지난 세월동안 끊임없이 부딪히고 깨지면서 좌절하면서 겪은 고통의 경험들 속에서 지금 이정도까지 체득할 수 있었던 나 자신에 대한 이해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거쳐온 직장들, 특히 지금 이 회사로 온 것, 그 첫 부서에서 임시직 9개월 뒤에 무리없이 연장이 되고 그곳 사람들하고도 너무나도 잘 맞았더라면 나는 IT부서라는 분야에 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여기 와서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을 하나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IT부서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비테크적인 일들에 노출하게 되면서 불만을 쌓아갔는데 그 불만족의 경험을 통하여 왜 구체적으로 나의 어떤 부분이 불만을 야기하는지를 알게했고, IT 중에서도 테크니컬한 분야를 배워보면 어떨까에 대한 생각도 갖게되었다. 문과출신으로 그냥 그대로 평탄하게 살았더라면 상상도 못했을 영역적 기지개를 펴게 된 것이다. 생각의 기지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여러 직장과 부서를 관통하며 계속해서 주어졌던 어드민 업무, 말단업무, 거기서 느꼈던 좌절감이 모두 이제 이해가 된다. 사실, 나는 계속 거기서 더 좀 다른 업무를 맡아서 회사원으로 좀더 품격있는 업무를 맡을래 기획하는 일을 할래 했었지만 사실 내 장기적인 미래는 직장생활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여기서 쉽게 쉽게 내가 우러러 보는 다른 업무들이 주어졌더라면, 내가 생각하기에 "있어보이는" 그런 일들을 턱턱 맡았더라면, 나는 계속 직장생활의 익숙함과 편안함에 길들여져서는 내게 어쩌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안맞았을지도 모를 옷을 계속 내 옷이라고 믿으면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일체 배제시킨채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왜 그런 일들이 자꾸만 반복되어 주어졌고 왜 자꾸만 그 사이사이 뭔가를 제작하고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만들기나 프로젝트 로고제작 등) 그런 일들이 곁가지로 주어지며 타인과 구별되는 두각을 나타낼 기회들이 생겼는가?

그게 바로 하느님이 주시고자 했던 메시지 같다는 생각이든다.

어드민적인 일은 모든 비즈니스의 기본이 되는 일이다.

어드민이라는 것도 참 여러가지 자잘한 업무들이 있겠지마는, 그 중에서도 단적인 예를 들자면 견적을 묻고 받고 주문을 내리고 물건을 수령하고 어레인지하고 팔로우업하고 그리고 인보이스가 오면 회계처리를 하고. 필요한 니즈에 따라 재고를 파악해서 주문하고. 이런 것들이 상거래의 기본이면서도 고객관리, 즉 CS 업무이기도 했다.

이 일을 반복적으로 주어지게 하면서 물론 나는 그 속에서 계속 왜 자꾸 이런 일을 시키냐고 심통냈지만 내가 나중에 나만의 일을 하게 되었을 시, 이제는 고객 입장이 아닌 사업자의 입장에서 이런 일들을 처리해야 할 수도 있기에 미리 단련 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로고나 그런 것들을 제작하는 제작자가 되는건 누군가의 고용살이로 하기보다는 내 일을 위해 내가 그런 것들을 디자인 할 필요가 있을 때 너는 그런 걸 충분히 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런 업무를 통해서 사람들을 상대하며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이민자로서 이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성향들도 파악해보라는 의미로 녹록치만은 않을거다, 그래도 대충 이런이런 사람들이 있을것이니 예비해두거라 라는 의미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람을 보는 통찰력을 길러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이민자로 초기 정착할 당시 가장 힘없고 연약할 때, 재정적으로도 가진게 너무나도 없어 힘들 때, 직장생활 이라는 사회적으로보다 재정적으로보나 제일 안정적으로 취할 수 있는 삶의 방편을 허락하시어 비자 연장도 계속 무리없이 되게 하시고 틈틈이 저축도 하게 하시고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게 해주시고 영주권도 취득하게 해주셨다.

흡사 이집트에서 해방시킨 이스라엘 사람들을 금방 갈 수 있을 수월한 길 대신, 장장 40년이 걸리는 광야의 길로 돌아가게 하신 "신의 한 수"와도 같다. 그곳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입성하기까지 하느님은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그들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서 그들의 주린 배를 해결해주시고 무더운 뙤약볕 광야의 낮동안에는 구름기둥으로 한밤의 급격히 떨어지는 사막의 기온으로 떨 때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지켜주셨다. 그리하여 그들이 파라오의 국경수비대에 의해 공격받지 않게 하시고 또 그 국경수비대를 어찌어찌 물리쳤다 하더라도 온갖 철기로 무장한 당시 필리스티아(블레셋)인들의 땅에서 그들에게 공격을 받아 아무런 전투경험이 없이 그저 노예생활로 지친 이스라엘인들이 무너지거나 다시 이집트로 이송되는 일을 막았다. 그러느라 이미 빅픽처에 예견되어 광야길로 돌아가게 한 것이다. 그리고 광야에서 그들을 멘탈적으로 단련시키기도 했다. 그들은 광야에서도 여러번 일탈을 하고 여러번 하느님을 실망시켰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하느님은 단 한순간도 그들을 팽개치지 않으셨다.

나도 그 당시의 이스라엘 무리들과 다를바 없다.

조금만 어려워지면 차라리 안할걸 그랬다며 불평하고, 허영과 허상에 사로잡혀서 본질에서 멀어지기도 했다. 자주 교만해졌고 우월감을 느끼려고 안달할수록 고개를 드는 그 이면의 추한 열등감에 부들거렸고 자주 수치심을 느꼈으며 완고해졌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세상적으로 보았을 때 실패스럽고 고통스러웠던 사건들 모두는 이런 나의 성향을 이미 처음부터 다 알고 계시는 분께서 마련한 일이라고 밖에는 이제는 정말 달리 설명 할 수가 없다. 이런 일들이라도 없었다면 나는 아주 교만하고 안하무인의 사람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런 일을 겪으면서도 중간중간 솟아오르는 교만과 완고함의 죄성이 나를 놀래키는데 이마저도 없었더라면 난 오죽했을까? 아마도 이렇게까지 생각을 해 볼 겨를도 없이 삶에서 세상에서 승승장구하느라 나머지는 안중에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 됨을, 이런 깨달음을 이렇게 이런 체험을 통해 느끼게 하시기 위해서 모두 다 그걸 위해 마련된 일. 그리고 이걸 깨닫기 시작한 지금부터 앞으로의 삶에서는 과거의 나와는 달라진 모습으로 더욱 더 복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축복을 예비하고 계신 것이라는 믿음이 드디어 내 가슴 속에 싹트기 시작했다.

지금껏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 또한 탈출-광야-고난-단련 의 수순대로 진행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서야 이 관점에서 사건들이 퍼즐조각 맞춰가듯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어제 저녁에 이 생각이 스르륵 하고 내게 찾아 올 당시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내 뜻 vs 더 높은 뜻



내 관점에서는 '이민자니까 이정도면 나쁘지 않아, 이민자니까 이런 이런 일들을 택해서 가지면 그저그만일거야' 라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왜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이거대로 안되는거야, 난 이민자인데 이렇게이렇게 내 생각대로 되어야 얼추 여기서 괜찮게 해서 살텐데' 라며 조급해하고 실망해하고 불안해했다.


하지만 하느님 관점에서는 내가 이민자이니 처음에 가장 연약할 시기에는 이렇게 지내면서 그 중에서 나중에도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필수적으로 쓰일 업무들을 반복적으로 맞게 하고 그리고 내 관점에서 있어보이는 일들은 사실 내 옷이 아니기에 내가 입게 될 다른 옷을, 내 이민자라는 특수성이 빛을 발할 수 있을 다른 옷을 이미 짓고 계셨던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이민자로 살아가는 것, 이 시국에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기위해 생업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내 관점과 하느님의 관점이 이토록이나 달랐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내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고 이민생활에도 이력이 붙은 이 즈음, 신분적으로도 영주권이라는 안정성을 확보해두고 금전적으로도 과거에 비해 그래도 생활비도 저축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동안 도합 몇년간의 현지의 직장생활 이력도 갖게 하시고 이력서상으로도 나쁘지 않게끔 다 만들어주셨던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또 직장이나 조직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더라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이제는 적극적으로 이 사회에서 내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부분들은 주장해가면서, 내가 영특하게 취해 볼 수 있는 혜택들도 찾아가면서, 내게 더 많은 선택지를 주시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니 하느님 믿고 함께 동행하면 퇴사를 하게 되더라도 또 퇴사를 했다가 다른 직장으로 가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면 다른 일을 하게 되고 다른 공부를 하게 되더라도 두렵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그러니 이제는 남은 기간 최종 결정을 내릴 때 까지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심정으로 일에 임해야겠다.

그러는 사이, 위에 언급한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액션들을 실행해보고 뭐라도 작게라도 시작해보자.

내가 지금껏 이렇게도 살아왔는데 앞으로 여기서 더 못되라는 법 있겠는가?

크게 보고 길게보고 넓게보면서 함께 손 잡고 이 길을 동행해보고자 한다.

 


내가 살고 싶은 삶 구체화 시키기



당장 취해 볼 수 있는 액션플랜으로서는 우선, 6월 중순부터 다음학기 등록을 받기 시작하는 대학에 문의메일을 보내서 궁금한 점들을 클리어 해 보는 것이다.

작년에 지원한 모 종합대학의 석사과정에 너무 실망한 나머지 그 대안으로 찾은 좀더 실용성에 중점을 둔 IT 자격증 과정을 제공하는 대학을 찾게 되었다. 작년에 그 석사과정에서 그렇게 허울 좋아보이는 것만을 선택하고서 뜨악- 했던 경험을 통해 성찰 해 본 결과 대략 이런 마음가짐이 작용했던 것 같다. 이제 영주권도 받았겠다, 이 여세를 몰아서 "영주권 찍었으니, 대학원 고!" 이런 마인드로 또 무언가 붙들 것을 만드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런 타이틀, 나 대학원 석사공부도 하는 사람이라는 식의 그런 "감투"를 바꿔쓰려고 하는 습성을 이번에는 버리고자 한다.

만일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한 두 과목정도 이수 한 뒤에 괜찮을 것 같다고 여겨지면 그때 또 다음 과목을 이수하고 그런 식으로 차근차근히 진행 해 보려고 한다. 이 이수 학점을 나중에 석사과정으로 연장하게 될 시에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하니 잘 맞고 계속 이 공부를 진행해 가면서 뭔가 확고한 연구주제와 목적의식이 생기면 그때에야 비로소 석사 프로그램을 시작 할 것이다.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작년에는 어딘지 주객전도된 상태로 접근을 했던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 외에 나를 위한 공부도 한가지 계속 알아볼것인데, 이건 어느정도 갈무리가 잡히면 포스팅 하려고 한다.

다른 액션플랜으로는 내가 살고싶은 삶을 이미 살고있는 사람들을 실재로 만날 수 없다면 그들의 책, 블로그,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과 경로를 통해 접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가능하다면 연락을 취해서 이메일이나 줌 화상통화 등을 통해서 소통해서 조언도 구해보고 경험도 들어보자.

이와 관련해서 현재, 최근에 발견한 한 유튜버가 있고 그분이 쓴 책도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해서 문의 이메일을 드려보고자 한다. 실재로도 컨설팅도 병행하고 있다고 하니 초기 상담 정도는 해 봄 직 할 것 같다. 물론 그런 것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한 번 쯤은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전자책으로 책을 많이 구매해서 관련된 주제, 궁금한 주제들을 읽어보고 고민도 해볼 것.

수익성과 이어지도록 설계를 잘 해야하기 때문에 컨텐츠를 제작하되 그것으로 경제적 이득도 노려 볼 수 있는 일들을 위주로 찾아보고 작게나마 시도를 해 보아야 겠다.

컨텐츠 소비자이기도 하면서도 생산자가 되기도 할 수 있다면 삶이 좀더 풍요로워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그때 유동적으로 컨텐츠의 바다에서 파도를 가르며 적극적으로 살아가기!

내가 살고싶은 삶에 대해서 되도록 많은 구체화를 시켜야 하겠다.

우선, 나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생계수단을 가지면서 살고싶다.

그러면 이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더 구체화 시켜보는 것이다.

아직 저 문장 자체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조금 더 세분화, 구체화 시켜야 한다.

장점과 단점은 한끗차이이다.

그래서 나는 장점이 뭐고 단점이 뭐냐 보다는 스스로의 기질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예민함. 나의 소심함. 불안 잘 느끼는 성격으로 브랜딩하며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살 것인가 아니면 그 속에서 장점의 씨앗을 발견하여 그 씨앗을 심고 거기에 물을 주고 길러서 꽃을 피울 것인가. 그 모든 선택의 키는 내게 있다.

가급적 그 기질을 가지고 그것이 장점으로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서 그쪽으로 나아가도록 하자. 그러다보면 강점이 더욱 강화되고 그로인한 성공경험을 할 확률이 높아지고 그로인해 삶의 자신감도 생기고 심적으로도 여유로워지면 기질상 발생할 수 있는 단점이 큰폭으로 보완 될 것이다. 계속 단점이 부각되고 단점을 죄악시 여기고 수치스러워하는 방식으로 살게되면 나 자신이 첫째로 너무 괴롭고, 그로인해서 나와 관계맺게 되는 주위 환경, 사람들, 즉 나와 세상과의 관계도 위태로워진다.


열린 결말을 위하여


‘외국까지 나왔는데 이민자는 이러이러해야지, 이민자 치고는 썩 나쁘지 않을거야’ 이런식으로 내가 너무 내 스스로에게 많은 제약을 걸어둔게 아닐까? 이민자라는 타이틀을 덜어내고 나라는 사람을 놓고 봤을 때 내가 이 땅까지 찾아 들게 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동안 이만큼 살아 낼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어쩌면 내가 이 땅과 궁합이 나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한데말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 땅에서 내가 이런 독특한 이주민이라는 이력을 가진 내가 또 다른 방법으로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지 그 희망적인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긍정적인 마음과 자신감을 가지고 지내봐야겠다.

또 나는 사람 대하는게 싫어, 나는 집에있는 게 좋아, 나는 예민해서 이렇고 저렇고 어떻고 저떻고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스스로가 만든 틀에 스스로를 올무를 씌워서 가두는 형국이 된다. 나만의 잣대가 무조건 맞다는 생각을 지양하고 열린 결말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도록 해야겠다.

성격적으로 다소 강박적인 구석이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두면 다시 옛 버릇으로 돌아 가기 쉬우니 의식적으로 자꾸만 새로운 관점들도 있을 수 있고 다양한 결말이 가능하다는 방향으로 생각을 돌리고자 해야겠다.

그러나 현실도 간과 할 수 없으니, 도저히 정 안되어서 나중에 다시 어디 다른 곳에 고용살이 하러 재취업을 해야 하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경제력을 확보할 옵션들을 찾고 작은 시도나마 해 나가야겠다.

이제서야 퇴사에 대해서 막연하게 가졌던 생각들, 그리고 퇴사 후의 삶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조금씩 놓여 날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이 느껴진다. 이것은 정말로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이 모든 것들이 내 뇌피셜일지도 내 자기합리화 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것 마저도 모두 다 놀라운 은혜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나중에 이 모든 생각들이 하나의 간증이 될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다.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 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 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 사십년 동안 너희 몸에 걸친 옷이 해진 적이 없고,
너희 발이 부르튼 적이 없다.​
너희는 마치 사람이 자기 아들을 단련시키듯,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단련시킨다는 것을
마음 깊이 알아 두어야 한다.​

<신명기 8장 1절 - 5절>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28.04.2021

 

http://naver.me/FLB18sNA

 

[퇴사고민] | D-2 | 이 시국에 외국에서 퇴사해보려고 합니다만

[BY Birkenwald]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28.04.2021...

m.post.naver.com

https://blog.naver.com/whiska/222327022929

 

[퇴사고민] | D-2 | 이 시국에 외국에서 퇴사해보려고 합니다만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28.04.2021 4월의 마지막 주간...

blog.naver.com


4월의 마지막 주간이다.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이번 주의 첫 3일간은 정말 들어오는 이메일도 거의 없고 미팅도 없고 그래서 굉장히 나태한채로 보냈다. 막상 4월이 간다고 생각하니 시원섭섭한 기분... 조금 더 솔직하자면 사실 어딘지 굉장히 허무하기도 하다.

5월에는 공휴일도 두개 있고 그중 하나는 하루 연차를 붙여서 긴 주말로 보내려고 한다.

그렇게 휴가 낀 긴 주말을 보내고 온 5월 중순 어느날, 나는 기어이 퇴사 의사를 밝힐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포스팅 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했던 1월 중순 무렵부터 오늘까지, 3개월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생각만큼 매일매일 쓰지 못했고 양질의 텍스트를 생산해내지도 못했다. 그래도 이렇게 포스팅을 할 수 있어서, 그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면 갈수록 이 생각에 더욱 무게가 실려간다. 이로써, 나는 1월부터 4월까지를 사는 동안 어떤 일들을 겪었고, 그때마다 어떤 심정인지를 기록 할 수 있었고, 언제든지 다시 그 기억을 소환해 낼 수 있게 되었고, 성찰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대안적인 계획을 마련해내지 못했다. 사람들은 모두들 그렇게 조언했다. 뭐든 할 것을 정해놓고 나가라고 말이다. 그 할 것을 지금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상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이 퇴사유예기간을 제대로 보내는 것에 실패 한 것이 되는 걸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 가닥잡히지 않았다 뿐이지 마음가짐은 차분해진 상태다.

차이점이 있다면 과거에는 온 동네방네 떠벌리며 마음은 차분하다고 입으로는 말하고 있으면서도 내심은 불안한 심리를 타파해 볼 심산으로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차분한 상태인지를 설명하려 들었을테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특히 올해는 기존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싶다.

말로만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떠벌리고, 주변 사람들을 붙들고 결코 실행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말로만 매꾸려고 하고 있는 찌질한 모습을 공연하든 전시하듯 하지 않는 것이다. 가급적이면 스스로의 고민과 사색 끝에 결론을 내렸으면, 그것을 이행해 낼 것.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이행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할 결과에 대해서도 스스로 책임을 지고 회피하지 않는 것이다. 누구에게 기대어 물타기 하듯이 지나가려는 꼼수도 쓰지 말 것이며, 주체적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며 책임지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겪어내는 것이다. 아주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말이다.


 

지난 달 중순~말엽으로 넘어갈 즈음 기존에 해왔던 일들을 바탕으로 지원 해 봄직하다고 생각해서 지원해 놓은 기업에서 서류탈락 통보 메일을 받았다.

어쩐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가지만 소식이 없길래 탈락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확답을 받고싶었다. 오늘 오전 휴대폰 진동이 한 번 묵직하게 울렸고, 이메일이 들어왔으며 내용을 확인했고 그것으로 깔끔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퇴사유예기간이라고 설정한 4월 말까지의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그 사이 시도했던 것들 중에 내 몫이 되지 않을 예정이었던 것들이 모조리 정리 된 기분이다. 홀가분하다. 괜히 미련을 가지고 기존에 해왔던 일들의 연장선상이 될 것이 자명한 일들을 다시 이어서 하면서 언젠가 꼭 같은 지점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또 그만두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악순환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다.

남은 이틀, 내일과 모레를 잘 보내고 4월을 마무리 한 후 5월이 오면 마음 가짐을 다시 잘 잡아봐야겠다.

심리상담사 선생님도 미션으로 내 준 과제이다:

 

충분히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마침표를 찍자.
콤마를 찍으면서 뒤에 부연설명을 하거나 이중 삼중의 생각이 일어나는 일을 방지하자.
마침표를 제대로 찍을 수 없을 것 같으면, 다시 콤마를 찍으며 군말이 생겨날 것 같으면 확실해질때까지 결정을 유보할 것.
이미 결정이 내려지고 난 뒤라면, 번복이나 후회 또는 미련 등을 갖지 않고 그래도 앞만 보고 새로이 도래할 내일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나갈 것.

 

이미 결정 난 일에 대해서는 더이상 마음쓰지 않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리고 그 결정을 바탕으로 앞으로 다가올 나날들에 필요한 일들을 준비해 나가는 심정으로 지내고 싶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가끔 성찰을 하고 과거의 일을 잠시 참조했다가 다시 현재로 자연스럽게 돌아올 수 있는 수준으로 해야한다. 과거의 망령에 붙들려 살다가는 이도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확신이 없고 자주 불안한 사람으로 성장한 이면에는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겠지만, 앞으로는 변화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일상 속에서 크고작은 결정들을 내리는 순간들마다 의식적으로 마음 먹은 것은 스스로 결정 내리고 그것을 실행하고 앞을 보고 두렵더라도 꿋꿋하게 걸어나가는 연습을 계속해서 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위안이 필요한 날에는.. 종종 셀프케어 시간을 갖기도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맛있는 디저트류를 구워본다던지, 거품입욕제를 풀은 욕조에 들어앉아서 목욕을 한다던지...

 

몇일 전 다 잘 밤에 만들었던 에그타르트. 포르투갈 리스본에 여행 갔을 때 오리지널 "파스테이스 데 나타 (pasteis de nata)"를 먹어본 뒤 그 맛을 잊지 못해 어떻게든 가능한 재료로 구현해 본다고 몇 번 시도는 해봤더랬다.

 

반죽은 슈퍼마켓에서 파는 패스츄리 생지를 사서 해결했다. 머핀틀에 맞춘 크기로 자른 뒤 계란 노른자 4개넣고 생크림과 우유 적당량을 넣고 바닐라액스트렉트와 설탕 조금 넣은 필링 채워 구워보았다. 점박이 무늬도 잘 그을려 나와주었고 한 김 식혀 베어무니 바사삭 하면서도 필링은 부드러웠다.

얼마 전 아마존에서 주문한 욕조 거치대를 장착한 모습.

저 가운데 있는 회색 부분을 펼치면 아이패드나 책도 올려서 볼 수 있고 물컵이나 향초 같은 것을 얹을 수 있는 홈이 따로 마련 되어 있고 너비 조절도 된다.

지금은 이렇게 쓰고 이다음에 언젠가 조금 더 넓은 욕조를 갖게되면 거기에 딱 맞게 사용 할 수 있을 것 같다.

 

 

 


 

달다구리와 거품목욕도 심신의 긴장을 풀어주지만 역시 말씀만한것이 없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는 구절처럼 말씀 섭취를 하면서 현실에서의 중압감, 불안감,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해야겠다. 이것 역시 과거와는 달라진 부분이다. 올해부터는 매일 매일 말씀을 자주 읽도록 하고 그리고 읽는데서 그치지 않고 삶 속에 적용해보도록 해야겠다.

애용하고 있는 모바일 앱 "가톨릭성경" 은 형광펜 기능을 사용 할 때 색상을 다양하게 설정 할 수 있어서 더욱 좋은 것 같다.

 

 

야고보서 4장 13절부터 17절까지 말씀을 읽고 많은 생각에 잠겼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구구절절 내 얘기 아닌 것이 없을 정도로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지만 이 대목은 정말로 딱 나를 겨냥한 이야기 같았다.

오늘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도 모자랄 판에, 내일 일에 대해 걱정하고 지금으로부터 일년 뒤에 뭘 하고 삼년 뒤에 뭘 할지를 점치듯이 궁리하며 다 사라져버릴 허상을 붙들어매고 있는 판국이다.

이것이야말로 엄청난 교만한 허세인가.

 

 

 

 

 

 

쓸데없는 것들을 붙드는 대신에 나처럼 소심한 쫄보는 붙들어 매려거든 특히 시편 56장 12절의 말씀을 붙드는 것을 택해야 할 것 같다.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너나 나나 다 고맛고맛한 인간들일 따름인데 무엇이 그리 두렵고 눈치보이고 설설 기면서 그렇게 살아왔는가 싶다.

 

쫄아들고 겁먹고 소심해지는 순간이 오는 것은 다 내가 사람을 의지하고 아무 실체 없고 실속 없는 것들을 의지하고 섬겨온 까닭일 것이다.

 

의지처를 제대로 분명히 바르게 세우면 한갓 사람이, 세상이 나에게 무엇을 어떻게 할 수는 없음도 명확 해 질 것이다.

 

 

 


이제 스스로 설정한 시간은 점점 끝을 향해 지나가고 앞으로 한 달 정도 더 마음을 정리해서 최종 결정을 볼 일만을 남겨두고 있다.

주체적이고 성숙한 어른답게 스스로 내린 결정을 존중해주고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함에 두려워하며 삶을 좀먹지 말고 어깨 펴고 당당히 앞날을 내다보며 살아가자.

 

http://naver.me/5uxv0ImL

 

[퇴사고민] | D-6 | 이 시국에 외국에서 퇴사해보려고 합니다만

[BY Birkenwald]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23.04.2021 ...

m.post.naver.com

 

https://blog.naver.com/whiska/222320778524

 

[퇴사고민] | D-6 | 이 시국에 외국에서 퇴사해보려고 합니다만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23.04.2021​종종 헤드헌터들...

blog.naver.com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23.04.2021


 

종종 헤드헌터들에게 메시지가 온다.

그럴때마다 일순간 잠시 두근거리다가 그들이 보내온 내용을 읽어보면, 나와 해당사항 없는 포지션들인 경우가 많아서 다시 설렘이 사라져버리곤 한다.

몇번은 그런식으로 연락 온 헤드헌터들과 통화를 해본 적도 있었고, 그들이 소개해 준 포지션에 실재로 지원을 해서 해당 회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잘 안되었다. 그냥 내가 그 포지션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었고, 또 그럼과 동시에 그 포지션이 나에게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새로 지원을 해보려고 채용공고들을 두루 살펴보아도 아무리 아무리 제일 마지막 페이지까지 찾아보아도, 그럴듯하고 좋아보이는 자리들은 많고 많지만 지원하고 싶은 일자리는 하나도 없다는 것만을 확인했다. 언제나 자기비난만을 해왔던 과거의 나는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자책을 해왔다.

이건 다 네가 아직 배가 덜고파서 그래.

네가 아직 덜 아쉬워봐서 그래.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넌 왜이렇게 현실감각이 없냐.

네가 지원하고 싶은게 없는게 아니라 저사람들이 너를 뽑기

싫어하는거라는 걸 모르냐?

넌 정말 노답이야. 노답인생.

넌 정말 꼴통이야.

이 등신.

저능아.

네가 이러니까 맨날 직장생활을 못하지.

너같은거 뽑는 직장이 불쌍한거야.

그동안 너때문에 네 동료들과 상사들이 얼마나 싫었겠냐?

넌 쓸모없어.

방구석에서 백수로 늙든 말든 너 알아서 해.

무책임한 인간 같으니라구.

...

...

...

기타등등...

기타등등...

 

그런데 자책을 멈추고 판단중지를 연습해보려고 노력중인 요즘은 좀 다르게 생각해보고싶다.

 

그동안 이런 일들의 이런 점들이 계속 안맞았는데 그 이유는 뭐였을까?

그 이유를 찾았다면, 그게 이 일들을 하면서 개선이 가능한 일일까?

아니라면, 어떤 일들을 하면 그런 점들을 보완 할 수 있을까?

그런 일들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뭐가 있을까?

그 중에서 지금부터라도 시작 해 볼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그래도 안맞으면 어쩌지?

그래도 그럼 그거 선택지에서 지우거나 아니면 잠시 보류해 두고, 계속 다른 것들도 찾아나서보자.

모든 것은 과정 중에 있는 것이니 설령 그게 생각과 다르게 나오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그걸 통해서 뭔가

하나 더 배웠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나아가자.

그리고 계속해서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되물어보기로 했다.

예전에는 내가 저런 자책들을 타인에게까지 죄다 쏟아내면서 자기 학대를 온 동네방네 공연하고 전시했었고 그때마다 타인들이 어쩔줄 몰라하며 나에게 해주었던 말들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들의 말은 가슴에 하나도 와닿지않았다. 특히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고 스스로에게 친절해지라는 말. 그런 말은 씨알조차 먹히지 않았다.

그랬었던 내가 이제는 달라지기로 결심한 만큼, 진정으로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온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되묻고 싶어졌다. 이제서야 비로소.. 진짜 회심이 이루어졌다. 마음을 돌려세우고, 내게 묻는다.

 

그렇게 안맞아하고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이정도라도 유지해 온 것만으로도 스스로 자부심 가져 볼 수는 없는걸까?

그때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라서 그런 일을 그렇게 했었던 것이지 않을까?

지금 알게 된 것들은 그때는 몰랐으니까, 대신 그때 그런 일들을 겪어와서 지금 이렇게 생각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다행스럽지 않아?

 


 

그 일환으로 나는 내가 지금 내 선에서 해 볼 수 있는 것 하나를 작게나마 찾아서 해보기로 하였다.

대단한 것은 아니라지만, 직장을 그만두려고 설정한 퇴사 유예기간도 이제 거의 다 만료되어가는 시점에서, 그래도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것 하나를 실행해보고자 하였다.

어찌어찌하다보니 IT부서로 오게되었고 그 중에서도 IT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를 경험 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고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존에 잘 알려진 클래식한 Waterfall 모델의 프로젝트 프로세스는 이미 몇년 전 교육을 받고 자격증도 하나 가지고 있고 실제로 워터폴 모델의 프로젝트들로 일 해 보았다. 하지만 정말 테크니컬한 IT분야에서는 클래식한 모델 보다는 보다 빠르고 언제나 변화하고 시간이 지남에따라 점점 확장되고 수정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애자일(agile)한 프로세스로 일을 하고 있다.

하여 생각해 낸 것은 Agile Product Development 를 매니징하는 프레임워크인 스크럼 (Scrum) 프로세스를 공부해보고 하는김에 자격증까지 하나를 따보기로 하였다. 스크럼 자격증은 이미 여러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Professional Scrum Master I (PSM I) 이라는 자격증을 목표로 일주일 남짓 인텐시브하게 준비를 해보기로 했다.

바이블이라고 불리우는 <Scrum Guide> 라는 14페이지 정도되는 개념서를 보고 또 무료로 구할 수 있는 스크럼 설명서 같은 리소스들도 구해서 읽고 기출문제들도 계속해서 풀어나갔다. 그리고 감을 찾기 위해 화요일 저녁에 응시한 첫 시험에서 합격 커트라인 85% 중 83.5%, 즉 1문제를 더 틀리는 바람에 패스하지 못하였다. 생각보다 편하게 응시할 수 있고 아주 난이도가 어려운 시험이 아니라 해서 잔꾀를 써서 문제만 달달 외우는 식으로 공부했던 것이 결정적인 실패 요인이었다.

그래서 이틀간 좀더 튜토리얼 영상도 보고 개념서를 한번 더 정독하고 약한 문제들 위주로 보는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 그 결과 다시 응시했을 때 90% 로 합격할 수 있었다. 여전히 만점은 받지 못하였지만 지난 번 시험때 약했던 부분들은 큰폭으로 보완 된 것이 보였다.

내가 스크럼마스터로 일을 할 것도 아니고 프로덕트 오너가 될 것도 아니라지만, 추후 IT 테크 분야로 관련 기술을 배워서 진출 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이고, 사람일은 어찌 될지 모르니 배워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이런 작은 성취경험 하나하나가 쌓여서 자기 비난을 그만두고 조금 더 생산적이고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운전대를 돌려서 방향을 틀어가는게 중요하다.

클래식한 워터폴 모델과 애자일한 스크럼 방식의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두개 다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는 all-rounded project management knowledge 를 가졌다고 스스로를 마케팅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스크럼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되면서, 이 프로세스가 (물론 현실에서는 교과서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들도 많을 것이다) 생각을 명료하고 간단하게 해서 최대의 가치를 창출하도록 설계되었고, 팀원간의 수평적이고 원활한 피드백을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모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점이 중요하다. 막상 내가 추후에 조금 더 테크니컬한 일을 하게 된다고 할 시에 그 분야가 대체로 어떤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하는지를 미리 아는 것은 도움이 되는 일이다. 제아무리 각종 신기술들을 배우고 마스터해서 취업을 했다고 한들, 막상 마주한 현실 속에서 해당 분야의 사람들이 어떤 멘탈리티로 일하고 어떤 프로세스로 일하는지에 대한 사전 이해 없이 덤벼들었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앞으로도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면서 잘 되지 않고 생각보다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고 이게 맞나 틀리나 자꾸 의심이 드는 순간이 찾아 올 것이다. 그때마다 다시 과거의 자책하고 비난하면서 이도저도 안되는 어둠의 수렁으로 빠지지 않고 다시 솟아오르도록 늘 깨어있으면서 의식적으로 삶을 살아가야겠다.

벌써 이 다음으로는 어떤 것들을 찾아서 해볼지 검색도 해 볼 수 있게 되었고 계획도 그에 맞춰서 조금씩 구체화 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이 페이스대로라면 이번달이 지나고 언제 퇴사를 통보하고 인수인계 기간을 거치더라도 그와 평행선상에서 나는 나대로 내선에서 준비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준비하며 이 시간을 생산적으로 사용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희망을 갖고싶다.

의식적으로 깨어있기.

요즘 하도 화두가 되고 있다는 그 "마인드풀니스", "알아차리기", "끌어당김" 이런 모든 것들이 결국 의식적으로 깨어있으면서 무의식의 악습에 끄달려가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이끌어가라는 말이라는게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내일 또 이런 마음가짐이 무너지고 힘들어진다 하더라도 내일 모레 다시 일어서면서 그렇게 살아가고싶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