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25.01.2021

 



월요일이다.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이쯤되고보면, 불면증은 이미 내 삶 속에 고착화 되었기 때문에 놀라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다.
그래도 잠을 통 이루지 못하고 맞이하는 날, 특히 그 날이 월요일인 경우라면 괜시리 짜증이 솟구친다.

월요일치고는 조용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방금 전 또 치닥거리를 내포하고 있는 메일이 하나 들어왔다.
왠지 불안이 엄습한다.
외주 컨설턴트가 현재 개인 피씨로 이 프로젝트 관련 업무를 하는데 VPN을 설치해야하는데 어디에 들어가야하는지 모르겠단다. 그런데 말이지, 왜인지 말이지.. 이 컨설턴트에게 회사 랩톱을 발송해주는 일을 덤으로 하게 될지도 모를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다.

대체로 이런것이다.
거의 2년동안 이 프로젝트에 있는 동안에 나는 뭘 배웠지?
프로젝트팀 컨설턴트들에게 랩톱 어레인지해주고 회사 메일 계정 터주는거 어시스트 해주는거?
그걸 과연 이력서에 한줄로 적을수나 있을까?

이게 다 내가 기술이 없고 필살기가 없고 다 내가 무식하고 못나서 그런거라는 식으로 번번이 귀결되었고 그럴때마다 과연 나는 이 나라에서, 아니 그게 어느 나라가 되었건 가서 뭔가 비전있고 경쟁력있는 사람으로 직업활동을 해 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만이 든다.

오늘은 월요일부터, 그냥 마음 먹었던 것처럼 4월달에 보너스 받고 5월에 사표써서 노티스기간 3개월 채워주고 못해도 여름을 기점으로 나가는 시나리오로 굳혀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이 시국에 잡이 있음에 감사해야하지만 차라리 이 돈 안받는대신 이 일 안하고 당분간 가진 돈 쓰면서, 실업급여 신청해서 연명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게 사람이 한번 쪼달리는 마인드를 가지기 시작하면 영원히 쪼달릴 것만 같다.

 

그래도 내게 있는 유일한 희망이자 안도가 있다면 그것은 내가 작년부로 영주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직업선택에 있어서 아주 유동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내 손에 쥐고있는 유일한 패다.

대안적인 일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뭐 더러 검색해보니 나오기는 한다만 하나같이 어딘지 참 허접스럽다. 그래서 사기는 아닐까 싶어 선뜻 시작을 못하겠다.

그러다보니 더욱 더 마음이 졸아들게된다.
호기롭게 사표를 냈다가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될때까지도 손가락만 빨면서 앉아있게되면 어쩌나.



1. 온라인 서베이: 건당 아주 아주 소액의 돈이나 무슨 쿠폰 같은 것을 지급하는 온라인 서베이 업체들이 많긴 하다. 나도 몇 개 들어가서 해봤는데 솔직히 말해서 어느 세월에 단돈 한화로 1000원이라도 모아보겠나 싶더라. 계속 똑같은 질문, 유사한 질문들의 반복이다. 아닌가? 내가 별로 좋은 서베이 사이트를 못찾아서 그런가? 아무튼, 찾는다 할지라도 왠지 이런거는 입에 풀칠도 못할 시간낭비같다.

2. 기타 경력직 remote 포지션들: again! 경력직이다. 즉, 자기 분야의 기술이 뚜렷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 나같은 커리어 거지는 이런 금싸라기 일을 할 수 없다. 왜냐고? 그동안 내세울만한 기술을 못익히고 잡무나 뭐 좀 나름대로 주도적으로 해본 일들도 이런 포지션들이 원하는 강력한 hard skill을 바탕으로 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눈물만이 앞을 가린다.

3. 주식투자: 우선 주식거래 계좌 신청을 해 놓기는 했다만 한국에서도 안해본 주식거래를 여기서 주기적으로 어느정도 금액을 투자해 가며 할 자신이 없다. 이건 내가 너무 경험이 없기에 일단은 보류다.

4. 건물 세 주고 임대료 받기: 내 집도 살 돈이 없어서 세를 사는 주제에 무슨 언감생심 임대료를 받을 건물을 소유하겠는가.

5. 데이터 앤트리: 이런게 꽤 괜찮다고는 들었다. 물론 한달치 생활비를 고스란히 다 벌기는 무리겠다만, 그래도 어느정도 용돈은 할 수 있다던데 문제는 꽤 괜찮다고 알려지다보니 은근 경쟁이 있는지, 서로 알음알음으로만 소개해서 연결해주는지 도통 공고를 찾을수가 없다.

그밖에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광고 수익을 얻어라는 등,  틈새를 공략한 주재를 정해서 돈벌기용 블로그 활동을 해서 수익을 얻는 방법이 있다는 등 패시브 인컴 모델 이 인기를 얻고는 있지만, 틈새라는 것이 대체 뭐가 될만한지도 기준이 모호한 상태이다.

 



이러다보니 뚜렷한 대안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말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넓은 세상에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온라인 집약적인 시대에 접어들었다고들 하는데 이토록이나 생계유지 수단이 한정적이라니.

과연 나는 대안을 못찾아서 울며 겨자먹기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아스라히 소멸할 것인가?

무슨 세상이 이렇게 단일 가능성만이 존재하는가?
생존을 위해서는 좀더 다양한 가능성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단말이다.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23.01.2021

 


 

직장생활을 하면서 5일간의 평일이 지난 뒤 어김없이 주말이 찾아와 줄 것을 머리로는 알며서도 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함을 자주 느꼈다.

드디어, 다시 찾아온 토요일이다.
주말만을 붙들며 살아가고 있을 직장인들이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을까?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열과 성을 다하여 악착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주의자다. 지난 5일동안 내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시켜버려서 최소 2일은 오롯이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이쯤 되면 도무지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일상에 대체로 부정적인가?
내게 있어 노동의 의미는 무엇인가?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며 평범하게,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 진정 난 몰랐다. 한편으로는 참 모순적인 것이, 평범한 소시민으로 그 주류의 대다수가 살아가는 방식대로 나도 따라붙여가며 살아가고 싶어하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평범함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의 모든 우울과 내 내면의 모든 비극적인 감정들은 이 패러독스에서 출발하는 것 같을 정도다.

노동하는 삶, 누구나 다 하는 노동 나라고 왜 예외를 두겠는가?
너만 일하는 것이 힘드니? 나도 힘들다. 너만 그런 것 아냐. 어른이되면 자기 생활은 스스로 책임 질 줄 알아야지. 왜 그렇게 매사에 부정적이야? 생각을 바꿔봐. 태도를 바꿔봐. 네가 상황을 바꿀 수 없으면 그 상황에 대처하는 마음가짐을 바꿔봐.

솔직히 이런 말들은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았다.
외국에 사는 외국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가졌을 것 같은가? 천만에. 토씨하나 안틀리고 똑같은 말을 그저 다른 언어로 읊어줄 뿐이다.

그럴때마다 나는 좌절감이 들었다. 단순히 좌절감만이 들었을 뿐만아니라, 결국 모든 것은 다 내 마음가짐 탓이라고 모든 것은 다 내 탓이고, 그래서 나만 하나 변하거나 못변하겠으면 나만 하나 입닫고 국으로 가만히 있으면 온세상이 평화로워 질것이라는, 그래서 유난떨지말아야 한다는 그런 생각들을 하면 할수록 미치게 외롭고 서러웠다.

 

나도 많은 다른 밀레니얼들과 다르지 않게, 삶에서 아주 사소한 것들에서까지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를 발견하고 싶어 안달난 사람이다. 의미를 못찾겠으면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서라도 붙이라고들 하는 마당에 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 여전히 희뿌연 안개 속을 거니는 기분이다.

 


나는 왜 일을 하며, 지금 왜 하필 나는 이런 일을 하고있는가?

 


 

나는 한국사회에서 대두되고 있는 그 "수저계급론"에 입각하여 보자면 흙수저 출신이다.
내가 최근에 알게 된 한 유튜버가 있는데 그분의 흙수저 정의 영상을 보면 또 아주 흙수저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안도감과 또 퍽 우습게도 불안감(?) 마저 든다. 안도감이라면, 그래도 아주 흙수저는 아니라면 한 플라스틱 수저쯤은 되려나 하는 기대이며, 불안감이라면 어쩌면 흙수저 그룹에라도 못들면 어쩌나 하는, 다시말해 어느 쪽이 되었든 좋을 건 없다.

사실 그래서 나는 자주 화가나기도 했다. 부모님에게 화가나는 건 아닌데 생각보다 그냥 그 상황이 싫었던 것 같다. 나이를 먹어가면 먹어갈수록 자본주의사회에서 어느정도 종잣돈을 안고 출발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생각보다 참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본주의사회에서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것은 시간적, 심리적 여유와 맞바꿀 수 있는 여유가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돈 그 자체보다도 바로 그 시간적 심리적 여유,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장소에 원하는 사람들을 골라서 만날 수 있는 (물론 아주 극단적으로 이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많은 선택권의 자유가 주어지는 것은 맞지않는가) 그 자유가 너무 갖고싶다.

그런데 나는 현재 그걸 가질 여건이 안된다. 그래서 나는 일을 해야한다. 자아실현이나 그런 부차적인 것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우선 일은 생계유지를 위해 해야하는 것이다. 사실 일을 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서 출발한다는 생각보다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이 현실앞에서 나는 매우 자주 슬픔을 느꼈다.
그런데 그렇게 유지해야 할 생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선택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자꾸만 날더러 그 상황에 나를 끼워맞춰야만이 그 수단을 그나마 연명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현실을 살고있는 것이다.

나라를 바꿔서 어디를 가든 이 명제만은 변하지 않았다.
외국인 신분으로 산다면 더더욱 더 경제적 자립이 가능한지의 여부는 중요해진다.


 

작년 여름 코로나로 관청들의 업무마저 마비가 되던 시절, 내 마음속 최후의 마지노선이던 여름까지 영주권을 받지 못할까봐 마음 졸이던 모든 나날들을 뚫고 극적으로 나는 영주권을 취득하게 되었다. 막상 그 자그마한 플라스틱 카드를 수령하고 돌아오는 날 나는 생각보다 별다른 기분이 들지 않음에 놀랐다. 그 영주권이 있는 한, 앞으로 생업 선택의 폭은 넓어질 수 있다. 우선 이것으로 나는 매우 안도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론적으로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은 맞지만 질적으로, 내용적인 측면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거르고 걸러내고 나면 남는 것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민 초창기 시절에는 하던 일이 나를 물먹이고 온 세상이 작당모의를 해서 나를 엿먹이려고 하는 것 같을 때, 이놈의 영주권만 따봐라 그 바로 다음날에 사표를 던지고야 말거라며 배짱을 부렸더랬다. 그런데 막상 꿈에 그리던 영주권을 손에 넣고 나서도 사실 나는 별로 큰 선택지나 솔루션이 없다는 사실에 슬그마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 어느때보다도 직장을 때려 칠 위기가 빈번했던 작년 한해동안 영주권을 받고 나서도 막상 그만두지 못한채 올해로 넘어오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나에게 일의 의미는 결국 일차적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 대가로 해야하는 일인것이다. 한국에서 흙수저였건 그보다 한계단 위 플라스틱 수저였건 한번 그 수저를 물고 살면 어느 나라에 가서 살건 그 수저는 따라온다. 나는 이나라에서는 더욱이 내가 내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기에 입에 문 그 수저라도 잘 간수하며 내 입안으로 들어갈 밥은 내가 벌어 먹여넣어주며 나 자신을 부양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냥 아무일이나 하기에는 내 성격의 지랄맞음이 어디 저제상 수준의 지랄맞음이 아니던가?

모든 삶의 애로사항들은 다 내 성격에서 기인되는건가. 성격은 바코드같은걸까. 사주팔자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내 똥고집으로 그 성격을 바꾸려고도 안하는 것을 보면 정말 두손두발 다 들어버리게 된다.

 

이 일은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입맛대로 맞는거 없다는 거 잘 알지만 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에서 도리질을 친단말이다.

내 외국인 이민자로서의 특수성.
완벽하지 못한 현지언어.
그리고 이 지랄맞은 성격의 쓰리콤보로 나는 그래도 곧죽어도 어느 랜덤으로 걸려들지 모를 아무개 현지인들과 부대끼며 내 자존심을 무너뜨려가며 살고싶지 않다. 그렇다고 한국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으래도 큰 틀에서의 차이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언어 정도는 잘 통하겠지만.

그럼 생계도 유지할 수있으면서 일도 심적으로 덜 끄달릴 수 있으면서 보수도 아주 박하지 않으면서 가급적이면 집에서 혼자 재택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구할수만 있다면 어쩌면 나는 이 100일이 다 지나기도 전에 사표를 제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흙수저이기만 한 것은 어쩌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흙수저라도 자기에게 많은 재화나 좋은 위치를 가져다 줄 확실한 기술이 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질것이다. 그러나 이 수저를 물고 있는 상황 위에 한가지의 상황이 더 얹힌 것이다. 이 세상적 잣대로 봤을때, 특히 전세계적으로 이런 경향이 심화되는 가운데, 나는 소위말하는 "문송한" 사람이다. 문과 나와서 죄송한 사람.

나는 단 한번도 내 문과 전공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공부하는 동안 사랑했던 그 문과의 자질들이 직업시장에 들어가면 그런 공부를 한 사람들이 가지게끔 매칭된 직업군들은 놀라울 정도로 나의 개인 성향과는 정 반대되는 자리에 있었다.
나는 공상을 하고 글을쓰고 특히 문학적 글들을 좋아했는데, 글을 좋아하거나 잘 쓰거나 하는 사람이 주로 담당한다는 기업내의 커뮤니케이션 부서 등등은 늘 남을 위해 그 일을 해야했고 나의 글이 아닌 남의 생각을 돋보이게 써주는 일이었다. 그것에 보람을 느끼고 행복해하는 사람들도 물론 많지만, 글쎄 나는 내가 내 글을 내 이야기를 쓸 때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학생시절때에는 몰랐던 것이다. 그저 취업만 시켜주면 나는 뭐든 할 자세가 되어있다고 생각했으나 일을 하면 할수록, 나는 내 개인의 아이디어대로 누구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필요 없이 그걸 바탕으로 혼자 고민하고 썼다가 지웠다가 통째로 갈아엎더라도 결제를 올릴 일도 없는 그런 모든 창작의 과정에 내 손길이 어느 한군데 안미친 곳이 없는 그런 일을 해야 행복한데, 그런 일을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것. 나의 창작물이 나의 것이 되지 않는다는데서 오는 좌절감이 가장 근원적인 업무불만족이었던 것이다.

아니, 그런 일 하라면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면 내게 있어 일의 목적이 되는 "생계유지"라는 측면이 심각하게 손상 될 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다시 되돌이표로 돌아가서, 나는 흙수저나 플라스틱수저 그 중간 어디쯤이라 내가 내 생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공장이 문을 닫게 되는 상황이라서. 그래서 찬물 더운물 가리는, 골라잡는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흙수저에 문과출신.
그런데 나는 어찌하다보니 소프트웨어 개발자 같은 테크니컬한 IT인력은 아니라지만 IT부서 짬밥 도합 근 4년차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결정적인 한방이 되어줄 하드코어한 IT적 기술은 없는 상태다. 그 원천기술, 필살기가 있어야 프리랜서 프로그래머가 되든 데이터 분석가가 되든 뭔가 더 혼자서 몰두해서 조용히 코드짜고 분석하는 종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문과의 특성, 글과 말 즉 커뮤니케이션이 중시되는 직종의 일들은 대부분 진입장벽이 낮은 신입 말단적인 일들이면서 상당히 반복적인 오퍼레이션 어드민적인 일들, 다시말해 내가 지금까지 요리조리 피해가면 갈수록 끈덕지게 따라붙는 일들이었다. 대신 내 내향적이고 몰두하기 좋아하는 엉덩이 무거운 성격에 더 적합한 직종으로는 차라리 IT 전문인력들이 하는 그런 몰두해서 계산하거나 분석하고 프로그래밍을 하는 일들이었다. 물론 그런 일들이라고 해서 왜 사람과의 협업이 없고 스트레스가 없겠느냐마는, 적어도 내가 겪어왔던 차원의 그런식의 대인기술을 요구하지는 않는 일이다.

 불일치. 이 불일치를 학교 다닐때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사회에 나와 한국과 외국에서 모두 살아내며 온몸으로 부딪혀가면서 깨지고 오열을 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가며 겨우 깨우치게 된 것이었다.

자신이 흥미와 적성이 있고 좋아하는 것을 전공으로 택해 공부했다 할지라도 그 좋아해 마지않는 전공적 지식 및 소양으로 얻을 수 있는 직업이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이 말도 안되게 들리는 말을 나는 이제는 온몸으로 겪어내었기에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해도 노동력을 제공하고 보수를 받는 임노동을 통한 제화의 획득 이외의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가진것도 없고 원천기술도 없으면 이것 하나만은 반드시 있었어야 했다.

그것은 바로 둥글고 긍정적이고 그러다못해 심지어 “까라면 까”일줄 아는 멘탈, 안정된 정신건강이다. 나같이 쥐뿔도 없는 사람에겐 이게 가장 큰 자산이 되어줄 수 있었을텐데.

내겐 이게 가장 심각하게 부재했다.


추신:

언젠가 나에게 힘이 되어준, 나를 살린 유튜브 및 팟캐스트 채널들을 언급하고 싶어서 따로 다른 날 작정하고 관련 내용을 다루고 싶지만. 끝으로 오늘은 내가 최근에 걸크러쉬를 느끼고 반해버린 촌철살인 유튜버 "김알파카"님의 채널<썩은 인생> 에서, 위에 언급한 흙수저 정의를 주제로 한 에피소드 영상을 나누고 싶다.

 

 

https://youtu.be/vy2qkP1HEns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22.01.2021

 


 

마치, 헛된 희망 같다고 할까요?
.....
헛될수록 비싸고 달콤하지요.
그 찰나의 희망에 사람들은 돈을 많이 쓴답니다.

 -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中 쿠도 히나의 대사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9회 속 장면: 쿠도 히나는 마주한 박애신과 가배(커피)를 들며 "헛된 희망"에 대해 읊조린다.

 


 

헛된 희망.
헛됨의 기준은 어떤 것일까? 덧 없는 것? 현실성이 없는 것?

이 이민생활은 나에게 헛된 꿈이었을까 아니면 아직도 지속 가능한 현실일까?

희망을 가지는 것.
그리고 걸었던 희망을 잃는 것.
실망하는 것. 모든 희망을 잃고 금새 좌절하는 나라는 사람.
나는 무엇을 위한 무슨 희망을 걸어왔던 것일까?

 

오늘은 어제 있었던 상사와의 콜의 연장선상으로 매월 1회 포트폴리오 현황 보고하는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상사와, 그 상사 아래 하나의 팀을 맡고있는 팀장 한명, 그리고 자기 관할 주요 프로젝트가 많은 부서 내 프로젝트매니저 한명, 그리고 나.

올해 들어 처음 하는 보고미팅이었고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 한 가운데 내용은 별 무리 없이 진행 해 나갈 수 있었다. 어제까지 시안 준비해오던 포트폴리오 컨셉관련 슬라이드는 몇몇 개선점들 피드백도 받았다. 생각보다 내가 아직 아주 완벽하게 흠잡을데없이, 매끄럽게 진행하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막상 스스로가 노래노래 불렀던 컨셉 제안하는것도 본인이 상상하고 기대했던 것 보다 실재에서 그에 미치지 못하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좌절감을 빨리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고개를 든다.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종류의 업무도 사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과연 잘 할 수 있는 업무가 있기는 한걸까?
이것은 순전히 나 자신때문인걸까? 아니면 조금 다른 셋팅, 조금 다른 식의 조직이었다면 충분히 차이가 있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내 마음 깊은 곳에다 대고 나는 사실은 이렇게 묻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이 업무를, 이 조직 내에서 이 부서내에서 이런 세팅 속에서 열과 성을 다 바쳐서까지 스스로를 개선시켜내고 어떤 한 획을 긋고 싶기는 한거야? 아니면 이 일이라도 한 번 어떻게 발전시켜서, 기존의 하기싫은 다른 종류의 일을 할때 드는 우울감을 상쇄시켜보려고 개중에 이게 제일 나아 보이니 여기에 빨대라도 한 번 꽂아보려고 하는거야?
정말로 이쪽 계통으로, 이쪽 분야로 나가고 싶어? 네가 그동안 그렇게 집착해왔던 이민자로서 현지 직업시장에서 각광받을 수 있을 분야로 스스로의 적성을 애써 맞추면서 그렇게 억지로 단련하고 있는거 아니야?


내가 걸었던 희망들, 그래 컨셉잡는 일을 하면 내 아이디어를 사람들이 다 좋아해줄거야, 나는 내 아이디어를 잘 전달 할 수 있는 재능을 가졌어, 나는 창의적이야, 나는 똑똑하고 야무져, 나는 철두철미한 일을 해 내는 사람.. 기타등등, 기타등등, 기타등등..

그런것들은 쿠도 히나의 말처럼, 개화기 시절 허영의 상징이었다던 가배같이 그런 허황되고 과장된, 겉보기에는 그럴듯하게 포장되어보이지만 실속은 없을지도 모를, 그렇고 그런 헛된 희망들이었을까?

나는 이런 일들 (사람들 대하고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일들) 하기싫어하고, 늘 그런 것들에 불안감과 부담감을 느끼니까- 그에비해 천만다행으로 혼자서 생각해서 아이디어 짜내는 일, 기존에 없거나 정립이 미흡한 상태인 프로세스들 한데 모아서 엮는 일들을 좋아하니 그런 일을 할 기회를 얻게되면 나는 날개를 단 것 같을 거라고 상상하면서..

 그렇게 나의 못하는 부분들을 늘 요구받아야했던 업무들만을 대체로 해오던 나의 상처입고 억눌린 내적 자존심의 회복을 꾀하기 위해 나는 그런 희망들을 부풀려 생각해왔던 것일까?

애초부터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목적의식에 입각한 희망, 전망, 기대가 아니었기에 조그마한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사정없이 희망들은 부서진다. 되려 그렇게 부서진 희망이라는 껍질이 조각조각 떨어져내리고 나면 남는 내 빈곤한 마음, 상처입고 불안정하고 어떻든 어떻게 해서든 내 허영기를 채워줄 좀 더 고상하고 품격 높은 일을 해 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을까봐 벌벌 떠는 자의식만이 드러난다.

 

 

 

처음엔 쓴맛만 나던 것 어느 순간 시고 고소하고 달콤해지다가 점차로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밤에 잠까지 설치게 만든다는 헛된 희망 같은 것.



 

나는 부여잡을 것이 필요했다.
붙들 것이 필요했단 말이다. 지금 현실이 이러하니, 그래도 주어진 것들 중에서 이게 제일 나아 보이니까 이런 정도 쥐고 있으면 나쁜 패는 아닐 거 같으니까. 기왕이면 그냥 '나쁜 패는 아닐거 같으니까' 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좋은 패이기를 바라고 그 패로 어떻든 한 몫 잘 챙기면서 이 판에서 한 번 이겨보자는.. 이를테면 그런 심보 말이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일까?
나에게 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일을 하고 싶기는 한 걸까?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왜" 그것을 하고싶어하는 걸까?



헛된 희망을 들이키려 하는 나를, 내가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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