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30.0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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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고민] | D-DAY | 이 시국에 외국에서 퇴사해보려고 합니다만

[BY Birkenwald]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30.04.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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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고민] | D-DAY | 이 시국에 외국에서 퇴사해보려고 합니다만

[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30.04.2021 휴대폰에 설정한 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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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에 설정한 디데이 카운팅 위젯은 오늘이 바로 그 디데이 임을 알려왔다.

그렇게 오늘로써 지금 포지션을 한 지 2년을 꽉 채우게 되었다. 남들은 그냥 별로 인지도 못하는 사이에 훌쩍 지나간다는 그 2년을, 나는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처음으로 달성해본다. 참 우습게도, 같은 포지션에서 최대로 머물러 본 최초의 경험이다.

사실 2년째를 마치게 되는 날 어떤 기분이 들까 굉장히 궁금했었다. 왠지 섭섭해져서 욕심을 부려 1년을 더 해서 3년차를 채우고싶어질까? 그런 생각이라도 들 줄 알았다.

 

 

지금으로부터 100일 전 찍었던 스크린샷이다.

그때는 디폴트로 세팅된 저 단풍 배경이 왠지 처량한 기분이 들어서 시간이 지나자 하늘 사진으로 바꾸었을 정도로 비참한 기분이 주를 이뤘더랬다.

현재는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것만해도 나는 굉장히 행복할 지경이다. 도대체 그때는 왜 그렇게 사방이 가로막힌 듯 갑갑하고 불안했는지, 조급해지고 슬퍼졌는지 다 지나고보니 지나가버릴 일들이었는데 말이다.

이런 심경의 변화를... 일종의 발전으로 여겨봐도 될까?

 

변화는 항상 일어나는 것, 변화 없는 것은 없다.

오후 2시, 부장이 셋업한 조직개편 관련 콜에 전 부서원들이 다들 들어왔다.

오랜만에 서로 얼굴들이나 보자고 하여 다들 카메라도 켰다. 그리고 부장은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띄워서 슬라이드를 넘겨가며 설명을 해 주었고 몇몇 사람들은 질문을 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평사원 급으로는 별로 뚜렷한 변화는 없을 것 같다. 그나마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와 리포팅 관련하여 담당자들이 바뀔 거 같아서 그것 관련해서 알아둬야 할 것 같고, 리포팅 프로세스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면 어떤 차이가 생길지 알아내서 프로젝트 매니저들에게 커뮤니케이션 하면 될 것 같다. 지금부터 7월까지 Phase 1을 가지고 8월부터 12월까지 Phase 2 로 해서 전체적인 Lift&Shift를 달성한다는 블루프린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12월 말이 되면 최종적으로 모든 토픽들이 다 개편된 조직으로 이전 완료 되는 것이 올해의 과제가 될 것이었다.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온 이래로 경험한 조직개편만해도 벌써 몇번째인가. 내가 직접 영향을 입었던 경우와 다른 이웃 부서들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한 경우들을 다 합친다면 꽤 여러번이다. 본인이 원했든 아니든, 오늘날의 기업에서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인사이동도 조직개편도 잦고 진행될 기미를 보이던 프로젝트가 엎어지거나 다른 프로젝트와 합병을 하게 되기도 하였고 그 외에도 별의 별 일들이 다양하게 일어났었다. 나만해도 이 조직에서 3번의 부서를 거치게 되었고 그때마다 옮겼다고 뭐라고 눈총을 주는 사람을 보기도 했고 응원해주는 사람을 보기도 했고 아무 관심도 갖지 않는 사람을 보기도 했다. 또한 변화를 겪을 때마다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게 되었고 새로운 일들을 거치면서 배우기도 많이 배웠고 많은 발전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은 사람에 따라서 다 다르기 마련이다.

딱 맞는 정답도 없고 오답도 없다. 자기 선택을 믿고 거기에 책임을 지고 주체적으로 부딪혀가보는 것이다.

오후 4시 반.

약속대로 나는 그 동료와의 콜에 들어갔다. 우리는 초반에는 이런저런 스몰토크를 나누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과거 그녀가 경험했던 애자일 프로젝트 팀의 경험들을 나누면서 시작했다. 그때 그녀는 Scrum 프레임워크상 개발자팀에 속해있었지만 따로 프로그래밍이나 테스팅 등의 활동을 하진 않았고 초반에 Sprint Planning을 하기 전에 모든 요구사항 (Business Requirements)들과 과제들을 문서화하고 그것들을 쪼개어 스토리, 즉 백로그 아이템으로 만드는 작업을 주로 하였다고 했다. 그게 그녀가 해왔던 Requirement Engineering/ Business Analyst 업무였다고 했다. 비즈니스쪽의 요구사항을 수렴하고 그것을 어플리케이션 개발에 실재 투입될 기술자들에게 전달해주고 비즈니스의 언어를 IT 언어로 전환해주면서 브릿지가 되는 역할이었다고 했다. 과연 시험 공부를 위해 들여다봤던 내용대로 실재 일이 이루어지는 경험을 전해들으니 더욱 실감이 났다.

또한 현재 옮겨간 그 부서에서도 한 프로젝트는 delivery method 를 Scrum 방식으로 해서 매일 Daily Scrum Meeting 을 15분간 가지며 각 팀원들이 그날 할 일에 대해서 그리고 혹시나 발생하는 이슈들에 대해서 의논하는 경험을 하며 일을 진행해가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커리어 초반에 원래는 프로그래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오라클 데이터베이스에서 SQL 명령어를 사용하여 당시 하고 있던 개발업무의 일환으로 쿼리들을 불러내어서 얻은 데이터들을 사용하는 등 그런식의 일들을 했고 테스트를 거치며 리포트 된 버그들을 수정하는 등의 완전 하드코어 테크 일이었다고 한다. 딱히 여성으로서 애로사항을 느끼고 그랬던 것은 없었지만, 자신은 개인적으로 성향상 프로젝트매니저가 되어서 여기저기 다 대표자로 최전선에서 싸우는 지휘자가 되고 싶지 않았고 개발업무를 할 당시 버그가 발생될때마다 쪼여짐(?) 당하던 개발팀들의 심적 부담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에 그 절충안으로서 현재의 비즈니스 애널리스트 포지션에 몸담게 되었고 지금 하는 일이 자기에게는 잘 맞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때당시 개발자 동료들 중에서 아직도 열정적으로 개발업무에 몰두하는 이들도 상당수 된다고 했고, 결국 그게 무슨 일이 되었든 개인과의 합이 얼마나 되냐에 따라, 개인차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100일간의 퇴사유예기간을 거치면서 하루하루 사람의 마음에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갈대같은 족속이 인간이라지만 참으로 사람의 마음처럼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것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그러니 무엇이 되었건 순간적으로 치미는 충동으로 무언가를 결정하기에는 바로 그 몇시간 뒤, 혹은 그 다음 날 아침 우리 마음이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알 수 없기에 조금 더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하는 여유를 배워둬야 할 것 같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았을때 든 생각은, 100일 전에도 여러번 숱하게 넘겨왔었고 100일을 지내오는 중간중간에도 다 갈아엎고 다 팽개치고싶은 나날들을 무수히 넘겨왔지만 그때 바로 그 당시에 정말로 퇴사하고 나오지 않고 오늘까지 이어올 수 있어서, 참 다행스럽다. 퇴사를 할 때 하더라도, 나는 조금 더 나날이 변화하는 내 마음을 살펴가면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힘을 비축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이 코로나 시국에 그것도 겨우 이제 좀 영주권도 받고 자리잡고 살라 칠 즈음해서 기어이 퇴사를 해보려고 궁리하고 있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100일 이전보다 무조건적인 자기 비하나 비난을 안하고 조금 더 개인적 감정을 배제하고 생각 해 볼 수 있었다.

1. 나는 욕심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2. 욕심에 비해 실재적으로 갖춘 것이 많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3. 그리고 치열하고 끈기있게 밀고나가는 실행력이 부족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4. 이상은 고매하게 높았고 현실은 거기에 안따라주었기 때문에 혼자서 화가 많이 나있었고 그것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 지 몰라서 지금껏 오래도록 괴로워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5. 자주 도망치고 싶어하는 이유는 불안정한 자존심, 즉 에고가 상황을 거부하고 수틀려할때마다 그 상황을 잠재우기 위한 방법으로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택해왔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6. 그동안 먹고사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근시안적으로 많은 일들을 선택해왔고 그 일을 하는 깊은 차원의 의미를 마련하지 못하여 일하면서 자주 좌절에 빠졌음도 알 수 있었다.

7. 사람에게는 누구나 취약한 점이 있기 마련인데 그 약점이 치명적인 흠이 될 수 있는 분야의 일들을 주로 찾아 해 왔었음도 알 수 있었다.

8. 취약한점을 마주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이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외면하려고 해왔음도 알 수 있었다.

9. 강박적인 자기만의 사고에 자주 갖혀있었던 것도 알 수 있었다.

10. 결국 남탓, 외부탓을 하지말고 문제를 직시하되 스스로를 벌주는 식으로 하지말고 새로운 전략을 세워서 스스로의 강점을 살릴 수 있고 스스로에게 솔직 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해 나가자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이제 이렇게 2021년도 4월이 지나가고, 내가 스스로 좀 악착스럽다라고 느낄정도로 집착했던 그 2년째 되는 기간도 지나갔다. 그렇게 고대하던 2020년도 업무평가에 따른 보너스도 수령했다.

보너스와 이번달 급여의 절반을 합한 금액은 고스란히 저축계좌로 이체시켰다. 이로써 벌써 생존자금으로 쓰일 계좌에 돈이 꽤 모였다. 앞으로 몇달간 더 하는 대로 더 해서 채워서 묶어두고 필요해질때 쪼개서 쓸 수 있는 financial cushion, 내 비자금 주머니 역할을 톡톡히 해 낼 것이다.


생각보다 크고 중요한 선택권이 바로 내 손 안에 놓여있다.

고방 열쇠는 그 집 안주인이 틀어쥐고 있는 법이다.

유예기간 및 숙려기간을 거쳤으니 앞으로는 조금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조금 더 담백한 마음으로 최종 퇴사를 통보하는 시점까지 업무를 업무로만 대하며, 개인적 감정 끄달리는 짓을 그만하고 싶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내 손에는 별다른 대안도 없고 그렇다고 억만금을 비상금으로 모으지도 못했지만 단 한가지 카드만은 확실히 들려있다. 그것은 바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내일이라도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퇴사 자유 이용권"이다. 이렇게 관점을 전환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제 어떤 일이 있어도 회사원이라는 을의 위치, 외국에서 해외노동자로 살아간다는 마이너리티 약자로서의 위치 등을 다 뛰어넘고서 당당하고 대등한 자세로 남은 나날들에 임하고 싶다.

역병의 시대.

이 시대는 많은 사망자들을 내고 많은 이들을 불편과 고통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으나, 동시에 정말이지 신의 한 수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시국이 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우리의 능력치의 한계를 이정도까지 시험 해 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속으로만 공상하던 각종 혁신적인 것들을 도입해보고 시험대에 올려 볼 수 있었고, 성찰도 할 수 있었고 통찰력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지금도 계속 얻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집에서 근무를 장기적으로 하게되면서 그동안 노래노래를 불렀던 홈오피스를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하지 않고서, 한시적으로나마 경험해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정말로 재택근무에 적합한지에 대해서 몸소 겪어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사람들과의 스트레스를 덜 받는 대신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지면서 각종 일들이 벌어지던 사무실을 물리적으로 벗어나서, 동료들에게서도 물리적으로 멀어져서 나의 일자리에 대해서, 이 회사에 대해서, 그리고 이 회사를 떠나는 것에 대해서까지 진지하게 고민 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아주 밑지는 기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여 다가올 나날들이 정말이지 기대가 될 정도이다.


 

앞으로 다가올 5월 중으로는 에필로그 형식으로 퇴사고민을 하며 보낸 100일 디데이가 지난 뒤 또 어떤 심경으로 어떻게 갈무리를 지어나갈지에 대해서도 포스팅을 해보고자 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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