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19.01.2021

 


2021년이 밝았다.
해외 이민 생활을 시작 한지 햇수로 7년차에 접어들었다.

해가 바뀌어도,
세상은 여전히 코로나의 시대이다.

그리고
나는,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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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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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부끄러움 많은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을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돌이켜보면 나는 지금껏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서른 몇 해를 넘기며 살아오는 동안 대체로 하고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 온 것 같다. 언제나 더 많이 가졌더라면, 더 풍족한 환경이었더라면, 이러이러 했었더라면 하는 무수한 시나리오들을 차례로 나열 해 보며 현재를 축소시키는 고질적인 버릇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암만 생각해보아도, 결국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내 인생에 내 선택이 개입되지 않았던 순간은 거의 없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스스로 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살아왔었노라고 고백하며 말문을 연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껏 나 하고 싶은대로 살아오기는 했다만, 그 모든 선택들에 무조건 당당할 수만은 있는가 자문해보기로 했다. 그러자 조금씩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괜히 좀 부끄럽기도 해야 성찰적인 사람이 되는 것 마냥 스스로에게 일정량의 부끄러움을 슬쩍 강요해 보기로 하였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고 여러날이 더 지나는 동안, 암만 자문을 해 보아도, 역시 나는 부끄러운 인생을 살지는 않았다.

우선은 그걸로 되었다.

나는 나 자신을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을 것 같은 나날들을 무수히 지나왔고 자주 수치심 같은 감정들에 놀아나기도 했다만, 적어도 그 자체로 부끄러움 많은 삶은 아니었다고 확신을 갖기로 하였다.

이로써 지금껏 내가 내려왔던 모든 선택들을 징검다리 삼아 딛고 올라 선 지금의 자리에서, 앞으로 내리게 될 선택에 대한 확신에까지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국에서 살 때에도, 지금 이곳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온 곳에서도 역시 비주류이다.
그래서 이런 인생에서, 메이저한 남들이 보기에 혀를 찰 수도 있을 마이너한 선택을 내리려고 한다.


햇수로 7년에 접어드는 이민생활을 하는 동안 세상에는 크고작은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일들은 마구자비로 일어나더니 급기야는 온 세상이 창궐하는 전염병 앞에 문을 걸어잠그는 팬데믹의 시대까지 도래했다.

 때는 바야흐로, 코로나시대.
나는 맨땅에 헤딩하듯이 이민가방 두개 달랑 들고 단신 이민을 감행한 내 나름 잔뼈 굵은 이방인이다.
나는 그동안 더 낳은 일자리를 찾아 헤매이며 그래도 내가 내 자신을 부양해 온 이력이 붙은 근로자이다.

나는 자주 침울하고 예민해지는 우울불안장애를 앓고있기도 하다.
나는 문재가 제법 있는 줄로 착각하고 살았으나 알고보니 문제만 많은 꼴통이다.
나는 글을 짓는 예술가가 되고싶었지만 될 깜냥이 없어 슬픈, 한갓 예술가병 환자다.
나는 자기 손으로 생활비를 벌어내는 보통의 소시민적 삶을 유지하려는 생활인이다.

그래서 퇴사는 옵션이 되면 안되는 일이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정말로 하고싶다. 이제는 더는 안되겠다.
이직도 하고 싶지 않고, 이 주류의 삶의 방식에서 자발적으로 나가고 싶어 미칠 것만 같다.
나는 그래서 다음 할 일을 마련해 놓지 않은 채로

스스로에게 약 100일 간의 시간을 주기로 하였다.
그 시간동안 나는 퇴사를 통보할 마음의 준비를 다져보기로 하였다.

이 선택을 내리고자 하는 이유는, 남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남들 하듯이 살아보려고 했지만 그럴때마다 자꾸만 내 자신에게는 어딘지 내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것 같은 부끄러움이 고개를 드려고 하는 것 같은 패러독스를 끝내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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