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어느 해외 이민자의 코로나 시대 퇴사결심 100일 카운트다운의 기록
04.02.2021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

 

- 에페소서 3장 19-20절 -


 

대체로 고요한 하루다.


프로젝트매니저가 예산관리 스프레드시트에 대해 물었고 내일 오후에 함께 리뷰 하자고 제안하였다.
도저히 오늘은 정신 맑게 차리고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갈수록 야행성이 강해져서 밤 늦도록 깨어있고 자연히 그 다음날에는 오전 나절을 헤롱거린다.

느즈막히 점심을 챙겨먹으면서 든 생각이다.
줄곧 해왔던 생각이지만 조금 더 선명해졌다고 해야할까?
지금껏 내가 내려왔던 모든 선택들, 내가 맺어왔던 인간관계 방식, 나의 태도, 나의 행동 모두.
내 선택이 개입되지 않은 것 없었으며 모든 것은 내가 해온 행위들의 결과라는 것.

내가 현재의 팀 내에서 업무를 하며 했던 방식들도.
내가 이전 팀을 떠난것도.
내가 그 이전 팀의 여자들을 거의 경멸하다시피 했던 것도.
내가 그 이전 직장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던 것도.
그 이전의 그 이전의 그 이전의 그 이전의 모든 인간관계들..
그 사이 사이 맺었던 스쳐지나갔던 사람들.
관계가 멀어진 사람들.
혹은 내가 알아서 떨어져나온 사람들.
장소들
일들.
모두.

결국 모든 것들은 나로부터 시작되어 나로부터 끝나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는 과거에 잘 되지 않았던 방식은 지양하고 괜찮았던 방식이 있었다면 조금 더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

매달리듯이 굴었던 적도 많았고, 속내를 오픈하면 다 친해질 줄 알고 상대의 의중도 묻지 않은채로 마구 달려들어 다 까뒤집어 보인 적도 많았고, 혼자 상상하고 투사하여 대책없이 밀어붙인 적도 많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인정 한 번 받아보려고 되도 않은 허세를 부렸던 적도 많았고, 상대를 위해주는 척 하면서 결국은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고싶어서 은연중에 드러냈던 이기심도 컸다.

순간의 알량한 잔꾀같은 머리를 굴려서 어떻게 한 번 타진해 보려고 했던 일들, 얄팍한 정보만을 믿고 첨벙 뛰어들었던 일들 모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모든 것들이 다 선명해지는데 얼굴이 화끈거리고 대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을 정도다. 앞으로는 조금이라도 달라진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러면 과거에 있었던 그 모든 일들은 다 상쇄 될 수 있는걸까?

과거를 지울 수 없다면, 최소 과거를 인정하고 그 과거를 살 당시의 나를 용서할 수는 있겠는가?

 

그런 과거의 모든 기억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서 퇴사를 해왔던 걸까?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걸까?
하지만 음식물을 집어넣고 꾸역꾸역 저작작용을 하는 동안에도 내 마음은 꽤 완고했다.
나는 정말로 여름까지 하여 일을 정리하고 싶은 강렬한 마음에 사로잡혀있다.

아무리 매일매일 다르게 생각해보려고 해도 결국 같은지점으로 돌아오고 있을 뿐이다.

 


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하고

너의 예지에는 의지하지 마라.

어떠한 길을 걷든 그분을 알아 모셔라.

그분께서는 네 앞길을 곧게 해 주시리라.

 

- 잠언 3장 5-6절 -

 


 

더이상 내 알량한 믿음에 의거하여, 내 일천한 지식을 내세우며 그것을 밑천삼아 살면 안 될 것 같다. 그동안 그렇게 스스로의 한미한 일개 허영심을 바탕으로 내렸던 많은 선택들은 결과적으로 나에게 괴로움을 안겨주었다. 이런 일들을 하면 나는 좀 더 자신감이 생기겠지, 이런 일들이 비전이 좋다니, 이런게 좋다니, 이런 사람하고 친구하면 내가 더 가치있어지겠지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그때마다 별로 안좋은 결과들만이 자꾸만 생겨난 까닭은 순수한 마음으로 그것들 (그게 사람이 되었건 일이 되었건) 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혹은 이롭게 만들 것 만을 소망하며 했던 일이기에 잘 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졌고, 억지로 상황을 바꿔보려고 무리수를 두는 일들이 생겼고,인간관계적으로도 상대의 입장을 진정으로 헤아리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옳았다고 자기합리화만을 한 뒤 일방적으로 몰아쳤던 게 크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스스로의 과오만이 자꾸만 떠오른다.
눈을 감고 마음을 달래줘야한다. 아직 더 몇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아직 이번 주는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아직 하루 더 보내야한단 말이다.
흔들리는 마음으로는 주말이 오기 전까지 버텨 낼 수 없을 것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결국 마음을 곧게 지키는 일이다.
사실 이게 모든 일들을 겪어내면서도 쓰러지지 않을 수 있는 힘일테다.

 


내가 힘써야 할 것들:


내 의지, 명철, 예지, 지각에 기대지 않는 것.
인간적이고 유한한 세상의 것에 목매달지 않는 것.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변치 않을 것에 믿음을 두는 것.
내 마음을 그 무엇보다 우선하여 지켜내는 것.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거기에서 생명의 샘이 흘러나온다.

 

- 잠언 4장 23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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